아이들에게 휘두르는 어른의 초라한 권력
2014/06/26 11:1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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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입에 교사와 학부모가 얼마나 험하게 오르내리는지 익히 알고 있다. 입에 옮길 수조차 없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어른들은 혀를 찬다.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되돌려 생각해보면, 표현의 수위야 다르겠지만 역지사지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글_유레카논술 김지나 편집인

지금,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 전 일이다. 여고 1학년인 딸아이가 비분강개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팀을 이뤄 수행평가를 한 친구들에 대한 얘기였다. 아이의 친구들은 빅데이터가 공공부문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 문항을 만들었는데, 정말로 열심히 논의하고 자료를 모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설문조사를 할 요량으로 질문지를 들고 교무실을 찾았을 때, 한 교사가 대뜸, “이거 너희들이 한 거 맞아?”하고 물었단다. 순간 다른 선생님들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보았고, 당연히 조사에 제대로 응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었다. 담당 교사는 내용이 부실하다며 면박을 주었고, 교사의 면박에도 아이들이 다시 해올 테니 검토해 주십사 청하자, 그걸 내가 왜 하냐며 돌려보냈더란다.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았고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더라고 했다. 
나 역시 아들아이가 중학생일 때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학교과제로 제출한 아들아이의 글을 보더니,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라며 아이를 추궁했고, 아이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일로 담임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기억이 난다. 
그날 딸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설문에 응해달라며 문제의 질문지를 내밀었다. 설문 내용은 공공부문에서의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찬반과 효과 등에 관한 거였다. 문항 중에는, 환자들의 병력과 관련된 데이터를 병원들이 공유한다면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를 묻는 물음도 있었다. 물론 이 문항의 경우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전제돼 있어야 한다.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인 병력이 노출될 경우 환자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적이고 평범한 질병에 한해야 한다는 조건 같은 게 필요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아이들의 문제의식은 날카로웠고, 전문가의 견해로 보면 불충한 점이 있지만, 충분히 진지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 주제를 다루려고 했는지 기특하기까지 했다. 

물론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와 유사한 고약한 ‘정황’들을 숱하게 겪었을 것이고, 이 경험의 축적이 이와 같은 판단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할 때는 판단이 백배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한다. 하물며 중고등학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행동의 성숙은 없지만 사고는 성숙한 시기다. 그 성숙한 사고가 입시의 중압감과 자유롭지 않은 교육과 지나친 부모의 기대 때문에 심연 아래에 숨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자존심과 아이들의 열의를 교사가, 학부모가 무참하게 밟고, 아이들의 모욕에 둔감할 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어른들을 대화의 상대에서 아웃시켜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예닐곱 살 꼬마일 적에 시장을 데려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좁은 시장골목으로는 어른들이 분주히 오갔고,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들의 가방에, 어른들의 팔에 부딪쳐 휘청 넘어질 뻔 했었다. 바쁜 어른들에게는 작은 아이들이 성가신 존재이거나 대수롭게 눈에 뜨이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해서 내가 예닐곱 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고 위압적인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대한 어른들의 숲에서 불안정하게 걷고 있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른들의 작은 행동들이 두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어른들은 신체적으로도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관해서는 경제력과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며칠 동안 마음에 밟혔다. 안산에 사는, 학교는 다르지만 어울려 다니던 절친 스물한 명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세 친구의 영정사진을 들고 찍은 우정의 사진이 그것이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슬픔도, 환함도 아니었다. 그 복잡한 심경들이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게 아이들이며, 이것이 아이들의 힘이다. 이 순수한 힘을 모른 체하고, 교사와 학부모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향해 그 초라한 권력을 휘두를 때 아이의 미래도, 우리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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