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2014/07/25 10:5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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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 고사가 얼마 전 끝났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다. 지치고 예민한 아이들을 대하는 게 영 편치 않고 참아야 할 것도 많아서 아이들이 느끼는 해방감 못지않게 부모님들이 느끼는 해방감도 크다.

글_유레카논술 김지나 편집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에 있다

고1 딸아이는 중학교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시험기간을 보냈다. 짜증도 덜하고 예민함도 덜하고. 하지만 애초의 목표만큼 매진하는 것 같지 않았고, 시종일관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 역시 시험기간 동안 딸아이에게 주문한 것은 한 가지였다.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멘탈 관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시험이 인생의 전부도 아닌데 과도한 히스테리 보이기 없기.

그리고 며칠 후, 시험을 치른 딸아이가 내게 쿨하게 통보해왔다. “이번 학기말 성적표는 보여주지 않을 거야.”
나는 딸아이의 통보에 역시 ‘쿨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다음 시험 결과만큼은 꼭 보여 달라는 말만 덧붙였다. 아니 오히려 아이의 통보가 마음에 들었다. 이 통보는 중요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시험결과가 제 보기에도 신통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다음 시험에는 더 열심히 해서 내게 성적표를 보여줄 만하게 만들겠다는 본인의 각오가 섞여 있는 것이다. 딸 아이는 자신의 시험결과에 대해 ‘평가’(생각)한 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생각과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에 있다.” 미국의 사상가요 시인인 에머슨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숱한 활동 중에는 사고(생각)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지, 거부할지,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누가 친구이고 적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고,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는지…. 따라서 사고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얼마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며 경희대 명예교수인 도정일 교수가 일간지에 쓴 칼럼을 읽었다. 칼럼 내용은 강의가 끝나고 강의보고서를 요구한 동료 교수에 대한 얘기였다. 이 교수가 요구한 강의보고서는 자신이 한 학기 동안 했던 강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지식)에 대해 쓰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 강의를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었다.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니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했고, ‘생각하기’를 처음 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고 한다. 학생들은 초중고 12년 동안 “우리는 어떤 문제를 우리 머리로 찾아내본 일이 없고,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이나 응답을 우리 머리로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단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새삼 놀랐다. 지식의 지위가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굳이 자기 머릿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을뿐더러 이미 그 양이 무한한 까닭에 숙지하려고 해도 숙지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정보의 숙지만을 강요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점수와 스펙을 따려면 생각 따위는 뒤로 미루고 오로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고의 질이란 주어진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목표,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의 사고를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고의 질을 높이는 것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육체적인 건강을 얻기 위한 단련을 생각해보자. 땀을 흘릴 만큼, 숨이 턱에 찰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오지 않으면 성취도, 단련도 없다. 대부분 육체적 단련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고기량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고통을 참아낼 의지가 없으면 사고의 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주어진 대로 사고하지 않고 제 힘으로 생각해보는 일은 의외로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생각하기’를 가르치는 교육은,  진보적인 교육도 아니요 보수적인 교육도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힘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학생들의 고백을 들으며 교육의 틀을 바꿔내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일보도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각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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