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에세이 : 9시 등교
2014/08/29 10: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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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도 잘 안 자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법도 거의 없었는데 요즘 주말 중에 하루는 잠에 취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야근이다 마감이다 분주한 일주일을 보낸 탓이겠지만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_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김지나 편집인

아이들의 성장에 보약보다 더 좋은 ‘잠’을 위하여

어느 토요일, 종일 잠에 취해 있다 딸아이한테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얘, 엄마가 늙었나 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잠이 쏟아진다.”
그러자 딸이 대답했다.
“엄마, ‘수면빚’이라는 말이 있대.”
“응? 그게 뭐야?”
단어의 조합이 낯설어서인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딸아이가 찬찬이 설명을 하는데,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걸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며칠 후 자료를 찾다가 <수면의 약속>이라는 책의 서평을 보았더니 개념을 정확하게 정리해주었다. ‘수면빚’은 수면부족이 계속 되면 마치 빚이 쌓이듯 ‘자야 할 잠’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또 ‘빚’이므로 언젠가 꼭 갚아야 하는 성질도 있다. 뇌는 2주까지 수면빚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주말에 잠에 취해 있던 것은 내가 게을러서거나 나이 탓이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업무가 늘어서 잠이 부족하다는 과학적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요일 11시 무렵에야 일어나 아침 같은 점심을 먹는 우리집 식구들도 모두 ‘수면빚’을 갚느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또 종종 학교에서 돌아와서 자느라 학원을 못가는 딸아이도 이 ‘수면빚’때문일 수도 있다. 

내 휴대전화 알람은 몇 단계로 설정돼 있다. 이유는 잠에서 깨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이 몇 단계 알람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학교가 지척이라 8시 등교니 7시쯤 깨서 씻고 먹고 가면 될 것도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라 몸치장에 걸리는 시간이 꽤 길다. 그래서 6시에는 꼭 깨워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막상 깨우러 가면 혼수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야자를 하거나 학원수업을 하고 오면 거의 11시 무렵에야 집에 온다. 늦은 야식을 챙겨 먹고, 씻고, 잠깐 수다 떨면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거기에 수행평가를 비롯한 학교 과제가 겹치는 날에는 두세 시에 자는 경우도 제법 있고,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고 네 시경에 쪽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깨우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른들은 회사를 9시까지 가면서 왜 자기들은  8시까지 학교를 가야 하냐고 투덜거린 적도 많았다. 

최근 미국에서 고교생들이 푹 잘 수 있도록 등교 시간을 늦추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등교 시간을 늦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고, 폭력 등 각종 사고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카페인, 알코올 섭취는 물론 마약 사용률 등이 잠을 덜 잔 학생들이 잠을 많이 잔 학생들보다 높게 나왔다고 한다. 수업을 늦게 시작한 미네소타 한 학군에서는 아침 수업의 평균 성취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소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들린다. 아이들의 꿀 같은 아침잠을 위해 경기도는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를 9시로 늦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들 100%가 9시 등교를 원하고 있으며, 제대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해서 9시 등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등교 시간이 늦춰지면 수업태도도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엎어져서 자는 학생이 태반이 교실 풍경도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새롭게 배운 지식이 숙면을 취해야 뇌에 제대로 분류되고 저장되기 때문에 청소년의 학업성취도에 수면의 질과 양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잠이 많아서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이나 학부모님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소탐하다 대실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학교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출근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9시 등교가 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험에서 한 아이가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등교시간에 오지 못해서 결시를 했단 말을 전해들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수면빚’을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9시 등교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시스템을 늦출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시스템일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문제점으로 떠오를 것들도 태반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과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성싶다. 더구나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인체의 놀라운 섭리가 이를 다 받아들여줄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9시 등교,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 찬성한다. 보다 중요한 원칙과 가치들이 더 견고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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