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지를 구매한다
2015/01/09 14:5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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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분당에 이사 왔을 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어렸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자잘한 일로 병원에 갈 일이 많다. 주로 내과, 이비인후과 같은 곳이다. 병원이 여기저기 있으니 선택해야 한다. 자연스레 우리가 가는 동네병원이 정해진다. ‘행복한 내과’. 우리가 가까운 곳을 두고 길을 건너서 가는 병원이다. 병원의 결정은 아내 몫. ‘그 병원이 왜 좋은데?’라는 질문에 아내는 스스럼없이 ‘거기가 잘 보는 것 같아, 또 친절하고...’라고 답한다. 나는 대학에서 광고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설득에는 근거를!’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아내의 선택에는 무슨 근거가 있는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소비자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또 선택해야 하는 것이 있다. 카센터이다. 이것 역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바가지 씌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기적으로 가는 엔진오일 정도는 아무데나 가도 된다. 그것은 가격만 보면 되니까. 그러나 문짝이 긁히거나 좀 더 복잡한 수리를 요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고치는 사람의 눈치만 보게 된다. 종종 고치다가 다른 부분도 함께 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중간에 서거나 수리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겁도 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수리비가 얼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금액을 들어봤자 싼지 비싼지 알 수가 없다. 결국은 병원처럼 ‘여기가 괜찮은 것 같애, 사람들도 믿을 만하고...’라는 식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매동 근처의 카센터를 두고 누가 일러준 분당동까지 간다.
 
우리의 상품구매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결국 판매자의 정보를 구매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정보 불균형(Information Asymmetry)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공급자와 소비자와의 불균형은 심해진다. TV 매장을 보라. 모든 제품이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이 선명한 화면을 보여줄 제품을 우리는 구별할 수 없다. 제품을 뜯어본들 알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곳은 바로 정치시장(선거)이다. 후보자는 공약, 정책, 인품 등을 판매하고 유권자는 투표로 구매한다. 여기는 상품시장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것은 보름도 채 안 되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과 만회가 허용되지 않는 일회성 경쟁, 그리고 2등을 인정하지 않는 승자독식 때문이다. 가히 전쟁(選擧戰)이다. 이 속에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고, 현란한 미사여구, 때로는 비방의 총격전도 이루어진다. 이 전쟁을 더 가열시키는 것이 불안정한 정치시장 시스템이다. 자동차나 보험상품 같은 일반 상품은 구매자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받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선거시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상품내용인 공약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유권자 피해에는 아무런 법적 처벌조항이 없다.  
 
특히 구매자는 제품(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잘 알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 서울시장 선거는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다소의 판단근거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외의 모든 선거는 투표일에 당면해서 보내오는 홍보물 몇 개에 의존해야 한다. 그 홍보물도 학력, 재산 등 몇 가지 신상관련 조항 외에는 사실여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내용은 주로 호감 있게 보일 수 있는 인물촬영, 감각적인 슬로건, 유권자의 이익에 아부하는 선심성 개발 공약 등으로 채워진다. 이런 소비자(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 정치시장 환경은 정치적 무관심층을 양산하고, 보다 넓은 부동층을 만들어낸다. 이름 ‘가, 나, 다’ 순으로 복수 공천한 2006년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이름이 빠른 ‘가’번이 무더기로 당선되었고, 2010년 기호를 없앤 교육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맨 앞의 후보가 많이 당선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얼마나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면 단순한 시장관행에 의존해서 구매가 이루어졌겠는가?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비난받을 이런 규칙을 국가 대사에 만든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일반시장의 규칙은 시장사람들이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시장은 이해관계자가 규칙을 만든다. 여야가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다정한 친구가 된다. 규제받지 않는 독과점 행위이다. 이런 담합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그들의 안녕을 보장한다. 
 
앞에서 말한 의사의 진료, 자동차 정비 외에 우리 동네 설렁탕 재료, 소주 첨가물, 화장품의 성분, 비듬샴푸의 효능 등 우리가 구매하는 것들 중 우리가 그 내용물을 잘 아는 것은 드물다. 대부분 이미지에 의존해 구매한다. 그러므로 판매자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정치인들처럼. 130년이나 된 코카콜라는 여전히 젊고, 에이스침대는 이제 가구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정작 필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내용(정보)이다. 기업이든 정치인이든 소비자를 위한다면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가 된다. 더 이상 ‘사랑해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유권자 여러분!’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같은 눈높이에 있어야 하니까.
 
새해에는 정치권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정보 통로가 넓어졌으면 한다. 서로를 잘 아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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