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과 상식에 대한 인식차
2015/01/19 14: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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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온 새해도 벌써 한 달이 다 되갑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그 세월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어린 영혼들을 차가운 바다에 묻은 일도 지난 일처럼 묻혀져만 갑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기만 바라던 마음이 시신이라도 모두 수습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염원으로 바뀌어가면서, 우리는 절망이라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사람이나 기다리라는 말만 철썩 같이 믿었던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제 혼자 살길 찾아나서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하는 회한과 자성의 탄식이 나왔습니다. 선박의 구조와 운행이 안전한지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정부기관이나 대형 참사를 지휘해야할 중앙부처나 눈뜬 까막 장님이었다는 사실은, 중진을 넘어 선진 경제대국으로 나아가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지난해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에서 치러진 선거가 ‘안전’ 경연대회였던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해양청을 폐지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한다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생각도 별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온 나라가 다시는 그러한 대형 사고를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였건만, 그러나, 해를 넘기면서 주변에서는 언제였냐는 듯이 크고 작은 사고가 또다시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 달에만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 이어 경기 양주 아파트, 서울 지구촌교회 화재, 서울 도곡시장 화재 등 대형 화재사고에, 급기야 국내 최대의 부탄가스 제조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니 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비새면 지붕을 고치듯, 시민의 행복과 안전은 정치와 종교를 떠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입니다. 
 
이러한 때에 정부여당을 대표하는 김무성 대표가 올해의 메시지로 정본청원(正本淸原)의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준비하자고 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정본청원이란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근본의 근본이니 그리만 된다면 대가로 사라져간 어린 영혼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자는 취임 초 대통령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말하는 뜻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한 말을 꿰어 보건대, 선거도 없고 하니 정본청원 정신으로 올해 보수혁신을 완수하자는 것, 즉, 이른바 경제살리기란 이름으로 공무원연금개혁과 같은 일을 끝내자는 뜻으로 보입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릴 때가 지금 뿐이라는 게 정부여당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증가하자는 게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경제살리기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문제는 방법과 시기입니다. 성장의 둔화라는 고민은 사실 현 정부만의 잘못도 아니고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세계경제가 범지구적으로 하나의 경제권에 묶이다 보니 불황마저 동조화하는 현상이 작금의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불황을 먼저 겪은 이웃나라 일본이 돈을 쏟아 붇는 정책을 오랫동안 해 왔음에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부여당은 집권 초,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그리고 규제개혁을 경제정책의 선두에 두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 정부에게 너무 어렵거나 오래 걸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나봅니다. 마치 일본의 아베정권처럼 우리정부도 지난 해 돈을 풀어 주택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확장적 거시 경제정책을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구조개혁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해 적폐라고 규정하고는 노동, 교육, 공공, 금융 개혁을 최대의 역점 사업으로 꼽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산업현장과 유리된 교육,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돈맥이 경화된 금융을 비정상으로 보고 이를 집권 3년차인 올해 안에 이루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 최우선 조치로 공무원의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사회적 합의나 형평성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OECD 국가에 비해 유난히 경직적이라는 증거도, 교육이 직업교육으로 일원화되는 것이 옳다는 증거도, 공공부분이나 금융이 관치 없이 비효율적이 되었다는 증거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선거가 없는 해라는 기회 정책적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집안의 경제도 나라경제와 같아서, 사정이 어려워지면 남은 돈 끌어 모아 크게 한판 하기보다는 형제들이 의지하고 나누어 쓰면서 때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한 것입니다.
 
본래, 정본청원, 이 말은 대학교수 265명이 선택한 올해의 경구로서,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전했던 바라고 하니, 근본과 상식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큰 셈입니다. 
 
이한주 가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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