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여수동 평양조씨 ‘三世三忠’
2015/03/23 15: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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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여수동 산30번지에는 성남시향토유적 제3호인 고려 말의 충신 송산 조견의 묘역이 있고, 그 맞은편 언덕에는 둘째 아들인 조철산의 묘역이 자리한다. 고려왕조의 역사가 기울고 조선이 건국하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변혁기였다. 고려 말 100여 년 동안 무신들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다가 몽고의 침입으로 간섭을 받게 되는 이 시기에 조인규(趙仁規)라는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일가를 이루게 된다. 조인규는 몽고어 통역관 출신으로 최고의 관직에 오르며 고려와 몽고 사이의 어려운 외교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에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그의 증손 조준(趙浚)은 이성계 등의 신흥 무장 세력과 지식계층인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고려 말의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정도전이 주축세력이 되어 이성계를 추대하여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조준은 전제개혁을 입안하여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도록 하므로 조선왕조 건국을 이끌게 된다. 정도전은 야심이 많고 세자책봉에 방석을 지지함으로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다. 조준은 합리적으로 정세를 파악하였고, 이방원을 지지하여 큰 버팀목이 되었다. 조선왕조를 개창하는 데는 정도전이 앞섰을지라도 왕조를 튼튼히 다지는 데는 조준이 1등 공신이었다.
 
형과는 다른 길은 간 ‘조견’
 
조견(趙狷)은 조준의 아우였지만 형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는 고려와 조선의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연려실기술』 같은 기록에는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고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조견은 아들들의 이름을 석산(石山)·철산(鐵山)·수산(壽山)으로 지어 고려에 대한 충절심을 버리지 않고 돌과 쇠처럼 굳은 절개를 지키라는 뜻을 담았다. 또한 후손들에게 조선의 벼슬을 하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둘째 아들 철산은 태종·세종 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철산과 큰 아들 석산의 아들들이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죽거나 유배되었을지라도 왕자나 공주와 혼인관계를 맺은 연고로 부인들에게는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철산의 아들은 별좌공파인 인(軔)과 승지공파인 식(軾)이 있다. 석산의 세 아들, 청로‧충로‧정로가 소윤공파‧판관공파‧현령공파를 형성하여 평양조씨 5개 파의 시조가 되어 문중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왕조교체기에 조견은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 후손인 아들 철산과 손자 청로가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충절을 중시하는 가문의 가풍으로 삼았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조견의 사실이 세인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고려의 충신으로 기록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조준이 개국공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중에 비해 평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왕조시대에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송산 조견의 유훈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에 갈수록 조준의 공훈보다는 조견의 불사이군의 충절이 칭송의 대상이 되었음은 『전고대방』 등의 문헌에 두문동 72현으로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조견과 조철산은 고려의 충신으로 남기를 원했고, 그 후손들도 높은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고, 단종 복위운동 등에 참여하여 불의를 원치 않는 가문의 전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철산과 부인 이씨의 묘역, 간직해야할 ‘문화유산’
 
조철산과 부인 이씨의 묘역에는 1468년과 1474년에 조성된 묘비, 문인석, 장명등 등이 세워져있다. 그 중에서도 묘비는 조성연도가 확실한 가장 이른 시기의 석비이다. 석비의 서법은 당시에 관에서 문서작성에 유행된 관체(官體)로 기록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신흥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조맹부체가 유행하고 있었고, 조선의 왕족들은 왕희지체를 바탕으로 한 조맹부체에 익숙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려의 이암과 조선의 안평대군 이용이다. 이런 점은 조철산 묘역 금석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철산 묘역의 석물들은 15세기 전반ㆍ중반에 나타나는 양식을 보여주는 석물들로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조철산 묘역은 크게 2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상계에는 용미와 사성을 갖춘 원형의 쌍분이 있는데 좌측(동쪽)이 조철산의 묘이고, 우측(서쪽)이 정경부인 이씨의 묘이다. 조철산의 묘표 전면에는 ‘進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行 通政大夫僉知中樞院事趙鐵山墓(진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행 통정대부첨지중추원사조철산묘)’라 새겼고, 건립연월은 성화4년(成化4年, 1468, 세조 14)으로 현재 성남 지역에서 건립연월이 뚜렷한 묘비 중 가장 오래된 묘표이다. 정경부인 이씨의 묘표의 비문은 전후 2면에 있는데, 전면에는 ‘貞敬夫人李氏之墓(정경부인이씨지묘)’의 비문과, 후면에는 ‘成化十年二月十七日(성화십년이월십칠일)’의 비문이 있다. 건립연대는 1474년이다.
석실 조철산 묘역에 있는 석물은 하엽방부형 묘표 2기ㆍ사각형태의 장명등ㆍ복두공복형 문인석 한 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시기적으로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 전반·중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15세기의 석조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보존되어야할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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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성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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