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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성남시의회 8대 후반기 원구성과 ‘감투놀이’
    [아이디위클리]성남시의회 8대 후반기 원구성이 늦어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7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만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6월까지 원구성을 마쳐야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때맞춰 원구성을 마무리한 예는 손에 꼽힌다. 성남시의회는 원구성을 위해 6월 26일, 29일, 30일 3일 일정으로 255회 임시회를 열었다. 이틀을 그냥 보낸 후 30일 오전 첫 본회의를 열고 윤창근 신임 의장만 선출하고 회기를 연장했다. 앞으로 부의장 1명과 상임위원장 5명(의회운영위원회, 행정교육체육위원회, 경제환경위원회, 문화복지위원회, 도시건설위원회), 특별위원장(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2명 총 8명을 선출하고 위원회 의석배분 및 위원회별 부위원장(옛 간사)을 정해야 한다. 우선, 전반기와 같은 교섭단체 배분이 이뤄질지가 관심이다. 전반기에는 의장과 부의장, 행정교육체육위원장, 문화복지위원장, 도시건설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몫이었고, 의회운영위원장, 경제환경위원장, 윤리특별위원장이 미래통합당의 몫이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20명 중 13명은 초선이다. 재선 이상 7명은 모두 전반기에 의장부터 부의장,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당대표까지 하나씩 감투를 썼다. 박문석 전반기 의장, 윤창근 후반기 의장 그리고 후반기 당대표에 선출된 마선식 의원을 제외하고 3선 강상태 의원, 재선 김선임 의원, 조정식 의원, 박호근 의원이 부의장과 3개 상임위, 1개 특위 위원장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다섯 자리 중에 한 자리가 남는다. 2년 남짓 의정활동을 한 초선에 대한 위원장직 배려가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미래통합당은 13명 중 8명이 재선 이상이다. 전반기에 당대표, 의회운영위원장, 경제환경위원장, 윤리특별위원장을 한 4명을 빼면 4선의 이상호 의원(수정구), 3선의 박영애 의원, 재선의 박광순, 이기인 의원이 남는다. 이상호 의원은 이미 후반기 당대표에 선출됐다. 산술적으론 나머지 3명의 의원이 한 자리씩 하면 된다. 과거 박영애 의원은 경제환경위원장, 박광순 의원은 의회운영위원장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전반기와 같은 교섭단체 배분에 합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여당은 과거 전례를 되살려 부의장을 야당 몫으로 넘기고 경제환경위원장 자리를 하나 더 꿰차려 할 수도 있다. 미래통합당은 의원수 비례 논리를 들이댈 수 있다. 전통적인 자리 나누기의 기본공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5석 중 20석으로 57%, 미래통합당은 35석 중 13석으로 37%의 비율을 점하고 있다. 6대 4의 비율이다. 의장을 포함한 9석으로 계산하면, 5.4와 3.6으로 5명과 4명이다. 전반기에 1석을 더해 요구할 수 있는 논리다. 의장은 다수당이 차지하는 전례에 따라 의장을 제외하고 8석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5명과 3명으로 전반기와 같아진다. 후반기가 달라진 점은 전반기 원구성 당시에는 민주당 21명, 한국당 12명, 바른미래당 2명이었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20명, 미래통합당 13명, 민생당 1명, 깨어있는시민연대당 1명이다. 민주당 유재호 의원이 깨어있는시민연대당으로 나갔고, 미래통합당은 통합작업으로 이기인 의원이 합류해 1석이 늘었다. 한편, 행정교육체육위원회 위원장에는 3선의 강상태 의원(수정구)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당대표와 부의장을 지냈지만, 위원장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도시건설위원회 위원장에는 재선의 박호근 의원(중원구)이 회자되고 있다. 전반기 당대표 외 별다른 감투 이력이 없다. 전반기 행정교육체육위원장을 맡았던 재선의 조정식 의원(분당을)은 부의장, 문화복지위원장을 했던 김선임 의원(수정구)은 경제환경위원장 등으로 거론된다. 현재 성남시의회는 35명 중 20명이 초선이다. 성남시의회가 거듭될수록 구조적으로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에는 초선의 최종성 의원(분당을)이 도전장을 내 3선의 마선식 의원과 자웅을 겨뤘다. 수정구, 중원구, 분당갑구, 분당을구 등 지역구 안배 측면과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하더라도 후반기 원구성의 헤게모니는 초선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닌지 7월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사람들
    • 칼럼
    2020-06-30
  • 우리는 보수가 아니다
    이념의 정의“이념을 떠나 민생에 집중하자”라는 슬로건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념이 나쁜 것이고 민생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념이 뭐길래 계속 거부하려는 걸까요? 이념은 사상, 이데올로기라고도 불립니다. 역시 듣기에 어려워 보이고 거부감 들긴 하네요. 그래도 알아봅시다. 이념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김밥 먹고 싶다’ 라는 것도 이념일까요? 아니겠죠. 이념은 어떤 공동체, 정당, 국가 등의 집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념을 떠나면 그 결정을 할 수 없겠죠? 그럼 다시, “이념을 떠나 민생에 집중하자”라는 슬로건은 옳은 명제일까요? 결론은 옳다 그르다 이전에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민생은 국민의 삶, 좁게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소리인데 이념을 떠나는 순간 국민의 삶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생각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을 올릴지, 내릴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할지, 풀지 정하는 것 하나하나 모두 이념이 개입되고 이념단체들이 개입됩니다. 결국 이렇게 이념이 개입되는 정책에서 하나하나 도피하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연탄배달밖에 없겠죠. 수년 전 야당대표가 “이념이냐 경제냐 선택하십시오” 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 또한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경제를 망치는 이념을 거부하고 경제를 살리는 이념을 행하는 것 뿐입니다. 이념의 중요성이렇듯 이념은 작은 공동체부터 크게는 국가, 인류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하냐, 3번째로 중요합니다. 자연계에서 운석이 충돌하거나 지구 근처에서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하는 것, 둘째로 각 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가 재림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 그 다음으로 인간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이념문제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만 어쨌든 이 이념이 잘못 정하면 수천만명이 학살당하고, 잘되면 국가, 인류전체가 수백년간 번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광화문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양 진영 극단에 서서 악쓰고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다만 이런 폭력성 은 이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시민들이 몰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지, 이념의 본질이 아닙니다. 물론 이념을 가지되 확장성을 위해 이념을 숨기는 것은 좋은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심까지 이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옳은 이념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보, 보수, 좌익, 우익 중 어떤 이념이 옳을까요?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현재 진보/보수, 좌파/우파로 이념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진보 구분의 문제점먼저 보수라는 단어의 문제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수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표가 기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보수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와, 실제 보수에 담긴 뜻이 판이하게 달라 왜곡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지킨다는 뜻입니다. 무얼 지킬까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성서와 복음을 기반으로 정립된 정치이념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 보수진영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은 지키기만 하고 발전, 개혁, 혁신은 없는 걸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보수진영 사람들은 ‘보수’는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는 옳은 가치들을 지키고, 급진적,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개혁해 나가겠다는 이념도 담고 있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 의미로 ‘보수 = 지킨다’ 라고 인식하고 그 이상 알아보려 하지를 않습니다. 정치투쟁의 장에서는 최대한 짧고 자극적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기본입니다. 진영을 대표하는 이름에서부터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면, 게다가 그 설명이 정 반대되는 뜻이 함께 담겨있다는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 것이라면, 이들의 미래는 매우 험난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이 발전, 개혁도 했다는데 얼마나 했는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보수진영을 이승만 대통령부터라고 규정한다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인권의 개념을 전파하고, 여성해방을 이루고 인신분제의 잔재를 완전히 폐지하고, 미신, 악습을 타파하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이루고, 근대문명을 이식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수천년간 중국에 종속된 세계관을 세계로 확장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사실 지키는 것보다 개혁한 것의 무게감이 더 크고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개혁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왜 보수일까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기성보수진영 내에서 종종 ‘박정희는 건강보험 같은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수 뿐 아니라 진보라고 말할 수 있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거기서 멈출 것이 아니라, 보수/진보로 진영을 규정하는 것이 혼란과 왜곡을 가져오며, 필연적으로 보수진영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명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치열한 정치투쟁의 장에서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포장해도 이기기 어려운데, 한 것도 안했다고 말하니 늘 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보수라는 이름은 이미 많은 훼손을 당했기 때문에 금방 ‘수구’라는 단어가 연상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름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특히 젊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진보’라는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훨씬 큰 선호도를 보이기에 더욱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보수, 진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킨다, 발전한다’ 이렇게 인식되기에 상황마다, 시대마다, 장소에 따라 계속 혼동될 수 밖에 없으므로 특정 이념집단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인다면 계속해서 혼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념을 세일즈 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투쟁의 장에서 이렇게 많은 진보적 업적과, 좋은 뜻을 내포한 집단이 스스로를 ‘보수’라는 부정확하고 소극적이고 필연적으로 혼란을 줄 수밖에 없는 단어를 선택해놓고 생계에 바쁜 유권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남 탓하니 늘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너는 보수가 부끄럽냐?’ 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진보라는 이름은 어떨까요. 진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보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욱 잘못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집단은 집권여당, 민중당, 정의당, 친문세력, 운동권 세력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정당성을 얻었으나 집권 이후로 보여준 행보는 반민주, 반자유, 반인권, 반진실, 반문명, 반헌법, 반국가, 반이성, 전근대, 친중 행태, 즉 퇴보뿐이었습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했으며, 3대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시키고자 노력하며 북한인권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3권 분립을 훼손하고 민주노총 등 지지층 기득권을 위해 자유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윤미향 조국 등을 옹호하며 법치를 무너뜨리고 공정, 정의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진보입니다. 진보는 당연히 발전한다는 의미로 인식됩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문명이 발전한다는 개념보다 순환한다는 개념을 가졌지만 근대화 이후로 모든 사람은 인류문명은 진보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반자유, 반민주세력은 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했습니다. 일반유권자들은 진보라고 하면, 아무리 정치적의미의 급진세력을 뜻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해도, 무의식적으로 필연적 문명의 진보라는 개념을 연상하기에 정치투쟁에서 엄청난 우위에 서게 됩니다. 진보라는 이름은 직관적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원론적으로도 잘못되었습니다. 현재 소위 진보진영이 진보라는 단어를 쓰게된 계기는 마르크시즘 역사관에 있습니다. 해당 역사관에서 규정한 인류 문명이 ‘원시공산사회 ->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산업사회 -> 프롤레타리아혁명 -> 공산주의유토피아’로 필연적으로 이행하게 되어있고 이것만이 진보라고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해당 역사관은 역사 속에서 잘못되었음이 이미 입증되었지요. 물론 본인들이야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던 말던 자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성보수진영의 태도입니다. 수십년간 수천명의 전직 국회의원, 전직 고위공무원, 보수진영으로 규정된 거대족벌언론, 시민단체장, 교수들이 이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스스로를 보수, 상대를 진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이론과 주장이 맞다고 인정해 주는 꼴입니다. 상대방의 주장이 맞고 진보가 맞다면 왜 보수진영에 있습니까. 전향을 하던, 귀가를 하던 해야지 보수 정당은 왜 하고, 선거에는 왜 출마하며, 기사는 왜 쓰고, 집회 시위는 왜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다행히도 2017년부터 기성보수진영의 정당에서 진보라는 말을 지양하고 있긴 합니다. 다만 스스로를 보수 혹은 우파라고 부르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절반이라도 했으니 다행이긴 하나, 문제는 상대를 진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상대는 진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원론적 세계관에 매우 익숙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남성이 있으면 여성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을 것 같고 보수가 있으면 그 상대인 진보가 있을 것으로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좌우 구분의 문제점공산주의자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패러다임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리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이해됩니다. 당연히 정치권에는 여야가 있고 서로 상호 견제하는 것이 옳다고 교과서에서 까지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뒤집기 거의 불가능한 패러다임입니다. 일단 좌익 우익 구분은 프랑스 혁명 당시 테니스코트에서 우익에 왕당파가 앉고 좌익에 공화파가 앉은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원으로 따지면 현재 대한민국의 좌우 구분과 전혀 대치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다만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이고 현재 의미가 통용되는 것은 사실이니 백번 양보하여 언어의 유래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치구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큰 왜곡이 발생하기에 이 또한 개선되어야 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적 틀이 유지되는 선에서 원론적으로 단순화하자면 평등을 추구하는 진영이 좌익, 성장을 추구하는 진영이 우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상기 언급했듯,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고 반민주, 반자유, 독재를 추구하는 진영이 좌익이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진영이 우익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집단과, 이를 수호하려는 집단이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잘못된 명제가 성립됩니다. 또한 새의 양 날개 패러다임을 견지하면 굳이 좌, 우 한쪽에 가서 균형을 유지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중도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념기피현상으로 이어지며 어떤 정책도 대안도 없이 미사여구로 득표만을 추구하는 세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이념기피집단은 반드시 중도가 아니라 실용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답변하기 마련입니다. 실용은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대부분 이념갈등이 극단화 되고 겉으로 실생활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안보정책이나 역사논쟁을 기피하고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마련인데, 발제 초반에 언급했듯 결국 이념없이 실용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를 아는 유권자가 매우 소수이기 때문에 국가는 또 다시 많은 재원의 낭비와 정치적 실패를 겪고 먼 길을 돌아 또다시 제자리로 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 국민의 두뇌에 각인 된 단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영 내부에서 조차 혼동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좌,우 라는 단어까지는 어느 정도 용인하되 진보, 보수의 구분은 혼란과 해악이 너무나 크므로 점진적으로 퇴출시키고, 보수라는 단어는 절반은 맞을지 몰라도 특히 진보라는 단어는 단 하나도 옳은 측면이 없기에 사용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 드립니다. 우리의 진짜 이름보수/진보도 안 되고, 좌익, 우익도 안 된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규정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진짜이름은 자유민주진영입니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진영이라고 불리워야 하는 지 역사를 통해 입증하겠습니다. 전근대 시절, 절대왕권과 귀족계층, 가톨릭 사제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의 지배를 받는 백성, 평민, 노예상태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것이 흑사병이 퍼지고, 봉건제가 무너지고, 과학혁명,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인류의 지혜가 계몽시대에 폭발하고, 그것을 시민혁명을 통해 피로써 쟁취하여 절대왕권과 가톨릭으로 부터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이고, 민주는 백성 민, 주인 주, 즉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로서 인류문명 이래 5000년간 존속되었던 신분제가 사라지고 백성과 노예였던 사람들이 근대적 자유민주시민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대왕권과 가톨릭의 폭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내고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 영역이 혁신되고 새로운 제도가 완비되자 물질적 영역에서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민주를 얻게 된 시민들은 그것을 누릴 준비가 되지 않았고 자유는 변질되어 무질서와 방종으로, 민주는 변질되어 중우정치, 인민재판,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사례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공동체의 질서와 법치를 강조하는 공화주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유의 변질을 제어하기 위해 민주와 공화가 작용하고, 민주의 변질을 제어하기 위해 자유와 공화가 작용하고, 공화가 변질되어 독재로 치닫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자유와 민주가 작용하는 정치의 황금률이 발견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류는 이를 능가하는 정치체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 민주, 공화의 균형과 조화를 정치영역에서의 선이라고 칭하고 이것이 훼손되고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악화’된다고 규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영원한 기준은 아닙니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적 특이점 등 이를 능가하는 체제가 얼마든지 고안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선’이 지켜진다고 해도 지상에 천국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나마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은 자유, 민주, 공화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시민입니다. 자유민주시민이 모인 진영은 자유민주진영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여기서 민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특별히 민주를 따로 다루는 이유는 민주가 자유, 민주, 공화 중에 가장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진영으로 거듭나야 할 기성보수진영이 가장 오해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앞서 설명했듯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민주적 절차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절차, 뜻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타협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이나, 민주적 의사결정은 선택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빠른 의사결정이나 전문성 확보를 위해 민주적절차가 아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예시로 사법부를 들 수 있습니다. 법률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판은 판사가 하지 군중이 하지 않습니다. 이 재판을 군중이 했던 사례가 인민재판입니다. 자 이 사실을 이해했다면 현재 한국정치, 이념상황에 대입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민주라는 가치를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우기고 있는 현 정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반자유, 반민주 진영은 어디든 민주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군중을 선동하여 질서를 무너뜨리고 소수를 탄압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언제든 상황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민주적 절차’ 즉, 다수결의 절차까지도 지상최고의 가치인 양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업경영, 재판부같이 전문성, 지성, 빠른 의사결정이 더욱 중시되는 영역까지 민주적 절차가 지상 최대의 선이라 우기며, 의사결정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닥치는 대로 ‘민주’라는 이름을 마구 들이대어 중우정치, 포퓰리즘, 인민재판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행위야말로 겉으로는 민주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반민주적이며 반자유, 반법치적 행태인 것입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성보수진영 내에서는 좌익진영의 포퓰리즘, 중우정치에 대한 트라우마가 큰 상황이고 반민주, 반자유진영이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까지 외면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자유민주시민과 자유민주진영은 민주주의와 민주적절차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작용, 이렇게 세 가지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전문성이나 빠른 의사결정보다는 다수가 만족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할 경우 ‘민주적 절차’를 수단적으로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대한민국이 이씨 조선, 김씨 조선과 같이 다시는 특정 가문,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거나 신분제 노예제 혹은 그와 비슷한 형태의 어떤 사악한 제도가 부활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작용은 자유와 공화의 이름으로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역행할 수 없는 시대적 가치이자 헌법적 가치입니다. 기성보수진영이 민주주의를 포용하지 않는 이상 더욱 고립되고 유권자들로부터 외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유진영이라고 불러도 충분히 진영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민주’라는 가치를 넣어 우리의 이름을 ‘자유민주진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자유민주진영이 민주라는 이름을 참칭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민주라는 가치를 되찾아 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자유민주진영의 사명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의 사람들은 전근대사회에서 고려백성, 조선백성으로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황국신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60대 이상인 산업화 1세대는 반공보수로 살았습니다. 물론 반공으로 대한민국을 지켜 낸 사실은 지극히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시민이 아니라 반공보수였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산업화 된 조국은 물려주셨지만 다음세대에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강제적이고 권위적 반공주의에 염증을 느껴 공산주의, 주체사상, 변질된 민족주의 등을 선별하지 못하고 모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젊은 세대 또한 윗세대 어디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기 어렵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의 망령에 따라 반으로 갈라져 이념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을 똑같이 계승, 반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이념구도는 양자 패러다임이 아니라 3자 패러다임으로 교체됩니다.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대립이 아니라 제 1세력인 집권여당과 반민주/반자유진영, 제 2세력인 기성보수진영,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제 3세력인 자유민주진영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제관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현재 세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진영과 전세계 자유민주진영의 새로운 냉전을 겪고 있습니다. 만약 역사의 물줄기가 역행하지 않는다면 국내의 반민주/반자유진영은 중국의 몰락과 동시에 역사의 심판을 받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기성보수진영은 일부는 자유민주진영으로 발전할 것이고 나머지는 자연도태 될 것입니다. 이후 자유민주진영만이 이 땅에 남아 헌법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틀을 지키는 선 안에서 자유를 중시하는 세력, 민주를 중시하는 세력, 공화를 중시하는 세력 크게 셋으로 나뉘어 발전적 상호 견제를 통해 역사를 견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물줄기가 역행하여 중국과 전체주의 진영이 전세계 자유진영과의 체제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반자유/반민주진영의 완전한 독재체제로 이행하게 되고 이후 남조선은 절망과 비명이 가득한 지옥이 될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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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6-23
  • 가십Gossip]청사내 흡연? 몰상식한 의원에 대한 ‘분노게이지’와 ‘속앓이’
      [아이디위클리]성남시의회 청사 내에서 담배 피우는 몰상식한 의원들에 대한 분노게이지가 폭발 직전. 10일 열린 제254회 제1차 정례회 예결특위에서 안광림 의원(초선, 미래통합당)은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며, 의원실 등에서 흡연하는 일부 의원들의 안하무인격 행태에 철퇴를 주문. 안 의원은 “여러 의원들이 요청을 해 책임지고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의원들의 속앓이를 대변. 의원들이 고통을 받으며 더운데도 창문을 못 열고, 같이 피우는 민원인들까지도 놀란다고 전해. 민원인 - “의원님~ 여기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데야??” (갸우뚱) 안 의원은 “성남시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청사)”이라며 이참에 뿌리 뽑을 기세로 의회사무국장을 압박. 하지만, “의회청사에서 흡연은 하루 이틀 지적받은 것도 아닌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번에도 잠깐 안 피우는 척하다 그냥 넘어 갈 것”이라는 반응이 대세. 그럼에도 의원들의 분노게이지와 속앓이 수준을 봤을 때, 이제는 “몰상식한 의원들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의원실을 코로나19 자가격리시설로 쓰자”는 공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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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임채철 경기도의원 “정치는 삶 그리고 밥”
      [아이디위클리]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를 무대로 의정활동을 펼치는 경기도의원. 기초의원과 달리 도내 31개 시·군을 아우르며 굵직굵직한 예산과 조례 등을 심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체 142명 중 성남에는 8명이 있다. 그중에서 분당구 야탑동과 이매동, 삼평동에는 10대 의회 유일한 세무사인 임채철 의원이 있다. 임 의원은 성남 토박이로 성남에서 잔뼈가 굵은 그야말로 성남사람이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오롯이 의지만으로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고, 예산경제 전문가로 활동하며 정치인의 길도 무난히 개척했다. 예산경제 전문가로서 임채철 세무사의 삶 그리고 더 큰 도약을 꿈꾸는 임채철 도의원의 정치적 삶을 조명해봤다. “청계천 판자촌 철거민 도시 ‘성남’은 나의 큰 고향”40대 후반인 임 의원이 성남에서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은 청계천 판자촌 사람들의 집단이주라는 기억이 생생하던 80년대다. 모란에서 남한산성을 향해 뻗은 산성대로에는 개천이 흘렀고, 그 밑으로 지하철이 다니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중앙동 개천 양편에는 포장마차와 노점상이 즐비했고, 남한산성 입구에는 닭백숙집이 평상을 깔던 시절. 임 의원은 수정구 태평동 언덕배기 위 성남서초(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다. 윗동네에선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와야 했고, 아랫동네에선 가파른 비탈을 느릿느릿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학교다. 그나마 이 학교가 그리울 줄이야! 중학교는 분당 송림중에 배정됐다. 지금이야 ‘천당 아래 분당’이지만 당시에는 버스 몇 대 없는 오지(?) 중에 오지로 사방에는 논과 밭, 산이 전부였다. 임 의원이 졸업하고도 2년 쯤 지나 분당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됐다. “지금은 분당이 생겨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삽미다만, 당시에는 2번과 2-1번 버스밖에 없었습니다. 송림고는 1시간 먼저 등교하고, 송림중은 1시간 늦게 등교해도 지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등학교는 시내에 있는 성일고로 배정됐다. 분당신도시 공사 소음과 분진에 시달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임 의원은 학교보다는 교회 활동에 더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구대 경영학과를 나온 임 의원은 안양에 있는 제법 큰 병원에서 세무행정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공부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방송통신대 경영학과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이어갔다. 드디어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에 편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무사 시험에 전력투구한 임 의원. 4학년을 휴학하고 마침내 2004년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다. 꼬박 3년이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처가에서, 임 의원은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2차 시험을 마치고 시험이 어려웠기에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마침 좋은 자리가 있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내고 일을 시작했는데 발표날 보니 합격을 했더군요. 꿈만 같았습니다. 아내도 소름 돋아 했습니다. 실망할까봐 미리 안 될 거라고 강하게 얘기해놨거든요.^^”  임 의원은 세무사가 되고도 역량을 더욱 키워갔다. 연세대 법무대학원 법학 석사에서 가천대 경영학 박사까지. 또한 가천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경기도 결산검사위원회 대표위원, 납세자보호위원, 대학교 등록금 심의위원 등 세무경제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곤고히 해나갔다. “노사모 창립멤버, 개혁당 발기인, 정치 꿈 키워”그러던 임 의원에게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구대 노동문제연구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할 만큼 노동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었고, 2000년 6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창립멤버, 2002년 개혁당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던 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좋았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기득권층만이 아닌 노동자, 일반인들의 정치, 세상을 바꾸는 정치가 마음에 와 닿았다. 2007~2008년경 국민참여당 성남시 사무국장을 맡은 바 있는 임 의원은 2010년 국민참여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4번을 받는다. 당선가능성은 없었지만, 후보를 최대한 내자는 취지에 동참한 것이었다. 1번만 당선되고 만다. 2012년엔 수정구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4.11 총선에 도전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김태년 의원, 정기남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실장, 이상호 전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 장영하 변호사, 전석원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비서실 국장 등 총 8명이 경합했다. 김태년, 정기남, 전석원과 함께 1차 컷오프는 통과했지만, 2차에서 밀려 친노인 김태년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뒤로 물러났다.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경선을 통해 얻은 점도 많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경기도의원이 되는 밑거름이 됐으리라. 2014년에도 경기도의원 성남시 6선거구에 출마를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보수세가 워낙 강해 당선가능성은 적었지만, 광역의원으로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천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선가능성이 없어도 당이 어려울 때 험지에 나가달라는 제안을 기꺼이 수용해왔습니다. 그게 선당후사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임 의원은 야탑동과 이매동, 삼평동에서 차근차근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들 그러나 중요한 일들을 찾아 주민들과 호흡했다. 그러다보니 2018년 6.13 지방선거에 본선을 뛸 수 있었다. 5선거구 경기도의원에 나가게 된 것이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어색함으로 시작해 자신감으로 마무리했다고나 할까요.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어색하게 시작했고, 그러다보면 또 많은 분들이 호응해줘 자신감을 얻어갔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 거 같습니다.”  임 의원은 10대 의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예산경제 전문가로 경기도 재정을 다루는 상임위가 알맞았기 때문이다. 후반기에는 제1교육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분당구는 어느 지역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학교시설 노후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임 의원은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을 해왔다. ‘경기도 납세자보호에 관한 사무처리 조례’ 개정을 통해 유명무실한 납세자보호관제도를 활성화시켰다. 이를 통해 경기도는 납세자보호관 사례발표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뒀다. 공무 해외출장에도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출장계획을 검토하는 심사위원회에 도의원 2명을 참여토록 했다. 광역자치단체 최초다. 한창 공사 중인 탄천종합운동장 앞 보도교도 임 의원 작품이다. 시민단체의 비판 의견이 없지는 않지만, 폭우와 폭설에 무용지물인 징검다리에 대한 주민들의 오랜 민원을 해결한 것이다.임 의원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이제 겨우 더 나은 세상, 원칙 있는 세상, 노무현이 꿈꾼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주춧돌을 놓았을 뿐이다. 주춧돌 위에 어떤 기둥이 세워질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임채철 Mini Q & A  Q. 정치의 역할은?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 매순간 고민하고 있고,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정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더욱 실감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다.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Q. 정치인의 자질은?조용한 성격이라 주변에서 정치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는 목소리 큰 선동가만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시간 제약이 적고 전반적인 정치, 행정제도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무 전문가로서 일정부분 정치와 어울리는 것 같다. Q. 예산경제 전문가로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아주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였다. 그동안 적립돼 있던 기금 등으로 큰 재정상의 부담 없이 잘 활용했다. 향후에는 재정안정성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Q. 경기도의원 2년 소감은?주민들 민원이 개선됐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정치인이 되기 전과 후, 정치인을 바라보던 시각에 큰 간극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말 한마디로 주민들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진짜 성심을 다해 열심히 해야지만 그 마음이 전해진다. 성남시 예산 부분에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성남시는 부자 도시로 인식돼 있어 예산 배정이 쉽지 않다.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설득 과정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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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0
  • [탐방]성남시 상권활성화팀, “소상공인 여러분 모두 모두 힘내세요!”
    [아이디위클리]‘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매출 감소 등 지역경제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남시가 소상공인에 대한 발 빠른 지원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성남시 재난연대안전자금,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등 다양한 지원 속에서도 소상공인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건 ‘소상공인 경영안정비’다. 접수 첫날인 지난달 9일 3,080명이 몰릴 정도로 소상공인들은 앞 다퉈 3개 구청 접수처와 컴퓨터 앞을 찾았다. 소상공인들이 손에 쥔 100만원은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예고 없이 닥친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희망의 상징이다. 이러한 소상공인 지원업무의 중심에는 ‘상권활성화팀’이 있었다. 처음 진행되는 지원업무인 만큼 신중을 기해 지원대상과 범위를 결정했다. 대공항 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라는 평가 속에 모든 소상공인들을 차별 없이 아우르겠다는 성남시의 의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유흥, 도박, 사행성 업종 등은 제외하고 총망라했다. ‘코로나19’가 정점에서 기승을 부릴 무렵, 경영안정비를 준다는 소식이 시 전역으로 퍼지면서 상권활성화팀의 전화기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잠시 짬 낼 틈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넘어에는 ‘코로나19’의 피해들을 속속들이 전하려는 듯, 소상공인들의 문의는 쌓여 갔고, 하소연은 늘어 갔다. 상권활성화팀 전 직원들은 야간은 물론 매주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에 매달렸다. 근무시간에 걸려오는 민원전화 폭주로 정작 처리해야 할 업무가 뒤로 밀리면서 취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공무원은 시민의 공복이라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고된 근무 속에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소상공인들의 축 늘어진 어깨와 ‘코로나19’가 사라질 날을 상상하며 2개월 여 힘겹게 버티고 또 버텼다. 성남시의 ‘소상공인 경영안정비’ 지원정책은 그 어떤 지자체에서도 볼 수 없는 여러 특징을 보여줬다. ‘코로나19’로 힘든 소상공인들의 편의를 위해 당초 신청인들에게 제출받으려고 했던 서류들을 모두 없앴다. 신청서 한 장, 동의서 한 장으로 끝냈다. 나머지는 세무서와의 유기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긴급 상황에 놓인 소상공인들의 수고를 한시름 덜어줄 수 있었다. 또, 소상공인의 거주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사업장 소재지가 성남시면 모두 가능하도록 지원 대상을 넓혔고 연매출 제한도 없었다. 아울러 소상공인 관련 조례 개정과 긴급 추경을 통해 신속히 추진한 점도 내세울만하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꼭 혜택을 봤으면 하는 이러한 바람은 당초 계획 인원 초과로 이어졌다. 5월 8일 최종 마감에 앞서, 5월 7일 자정 기준으로 당초 대상인원의 104.5%인 48,701건이 접수된 것이다. 2019년과 올해 사업체 증가에 따른 것이지만, 그 만큼 소상공인들이 목말라 한 것은 아닐는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어떻게 접수 하나요?” “언제 입금되나요?” 문의 쇄도에 파김치가 된 상권활성화팀은 피치 못하게 “신청부터 지급까지 3주가량 걸리니 전화문의를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문자를 발송해야 할 정도였다. 8일로 신청 접수는 끝났지만 상권활성화팀 이창근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여전히 소상공인 경영안정비 업무에 여념이 없다. 선정 작업과 이의 신청 절차 등 상권활성화팀이 있는 성남시청 8층 동관 한편 불빛은 이날도 어둠 속 달을 마주해야만 했다. ‘코로나19’로 마음 고생할 소상공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란 게 위안 아닌 위안이다.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성남 어느 곳, 인근 소상공인 한 분의 전화 한통. “너무 고맙다”라는 감사 전화 한통이 지금껏 쌓인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줄 만큼 심금을 울릴지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미처 몰랐다. 상권활성화팀 이창근 팀장은 “코로나로 지역 경제로 무너진 상황에 막중한 업무를 맡아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피곤에 지친 어깨를 활짝 폈다. 무엇보다 주말을 반납하고 묵묵히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성남시 상권활성화팀 모두 모두 힘네세요!!!”    “성남시 소상공인들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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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
    2020-05-08
  • 이제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이디위클리]코로나19 쓰나미가 지구 전체를 휩쓸고 있다. 정치지도자들 중 몇 사람이 코로나의 위력을 ‘그냥 감기’로 무시하려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보리스 존슨 총리는 중환자실에 치료중이고, 트럼프의 뜨악한 표정에서 읽혀지는 실패와 당혹감,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아베총리까지 긴급조치를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선언하면서 모두 고개를 떨궜다. 그놈 참 ‘센 놈’ 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주가가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모양인데, 정상으로 복귀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4.7일자)에서 중요한 것은 확진자 통계가 아니라, 질병이 정상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을 제시, 아직도 정상복귀로의 길이 멀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교수의 말처럼 “이번 싸움은 단거리 육상이 아니고 마라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상복귀의 의미가 이 시국에서는 달라 보인다. 단순한 복귀는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한 복귀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 국면에서 미국과 서구에서 보여준 ‘홉스의 늑대’들에 기반한 철저한 개인주의는 사회적 책임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서구근대철학이 내세웠던 이성적 개별주체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freedom for all)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화. 이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국에서 사회적 개인적 이성이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했던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았는가? 이런 철학과 사회시스템, 경제구조, 문화를 그냥 놔둔 채로의  단순한 복귀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부터의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과학적 합리적 근거는? 이 어마어마한 담론에 거기에다 앞으로 벌어질 미지의 사실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란 무의미한 것이고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키신저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내 생각에 그도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엄청난 담론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황당할 수 있는 얘기를 내놓는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환경교육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에 의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의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다. 믿어지시는가? 기후변화와 신종바이러스의 상관관계 메커니즘은 3가지 모델이 대표적이다. 먼저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이동이다. 예컨대 박쥐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인간과 생활영역이 겹치게 된다. 박쥐는 생리적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가진다. 과학자들은 박쥐의 몸속에 137여 종의 바이러스가 있고 그 중 61종은 인수공통바이러스로 쉽게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다. 사스나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도 박쥐를 통한 전염이 의심되고 있다. 두 번째 모델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모기 같은 절지동물의 확산과 관련된다. 지카바이러스 등의 매개체는 모기인데 온난화로 서식지가 확산되면서 2050년까지 5억 명, 2080년까지 10억 명이 모기 매개 바이러스에 노출될 것으로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발표했단다. 세 번째는 빙하가 녹으면서 갇혀있던 바이러스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델이다. 2002년 북대서양에서 바다표범을 집단 폐사시킨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소위 ‘좀비 바이러스’ 모델인 셈이다. 과학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기후위기 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후변화문제를 세계가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러스와의 공존.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철학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현대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근대철학의 기둥인 개인주체(공동체주체가 아니라)를 전제하고 있다. 이 주체는 모든 개별들이 스스로의 임무를 완성하면 사회는 조화롭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개별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부로부터의 자유!’, 사회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거기에 책임은 매우 옅다.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러면서도 환자의 치료나 관리에서 난맥상을 보인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의료보험체계와 공공의료의 후진성, 빈부격차와 치료격차가 그대로 이어진 사회구조(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감염병 관리를 위한 사회적 대응능력의 취약(감염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우리는 코로나19에서 이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감염병 대응방식마저 시장을 들이대는 천박한 경제구조 등등. 나는 미국의 이번 위기의 바탕에 이러한 철학의 위기, 시스템의 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결국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질병으로서의 감염병과 공존하려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정보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져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사회적 관리가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원칙적으로 코로나19의 생존능력은 14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계산이 선다. 그렇게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인권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중국이 가장 비슷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방향은 그곳을 향해야 한다. 비전을 공유하고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신뢰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단 올림픽문제와 엮이면서 풀기 힘든 함수관계로 문제가 꼬이기 시작 했다.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해서 매일 아사히와 야후 재팬의 뉴스를 살펴보았다. 검색창에 코로나바이러스+통계를 입력하면 일본질본의 공식 통계를 비롯하여 3개 정도의 뉴스가 나오고 나머지 거의 모두는 외국 현황과 관련된 것들만 뜬다. 검사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는 외국 미디어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했다. 검사를 매우 선별적으로(연속 4일 이상 37.5도 이상 유지, 정황증거가 확실, 의사의 요청이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의료체계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라고 했다.   정부의 전략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모든 통계보다 국민을 반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희극배우 시무라 켄(志村けん)이 코로나로 죽었다. 이제 코로나19는 통계의 문제에서 현실의 문제로 전회된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3인조 개그그룹의 구로자와 카즈코(黒沢かずこ)라는 배우가 감염되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극작가)가 검사를 받아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그리고 결국 검사를 받고 양성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투고한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통계나 정부발표에 대한 신뢰에 파열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얘기만 듣는 현상을 ‘확증편향’이라 하고 자신의 신념의 스키마에 끼어 넣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편향동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확증편향이 우리사회에서도 매우 심해져서 예컨대 좌파는 다음을, 우파는 네이버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진영논리’라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당과 야당 지지그룹의 영향력이 비슷해서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엔 야당의 진영논리 자체가 매우 취약해서 일국의 진영논리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뢰의 문제는 편향을 넘어서야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핵심엔 잘 준비된 방역기반시설과 메르스에서 학습한 노하우와 훈련,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대응이 절묘하게 맞아 돌아갔다는 것일 게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 대응에 작동할 새로운 기반과 시스템과 철학에 한국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잘 정리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열린 비전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2020.04 하동근 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사)환경교육센터 이사장
    • 사람들
    • 칼럼
    2020-04-08
  • 종교와 신념 그리고 정치(총선에 임하는 성남시 지역구의 후보자들과 시민들에게)
    [아이디위클리]일찍이 인류의 스승인 간디는 사회를 망치는 일곱 가지 악 중에 ‘원칙 없는 정치’를 거론했습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이 원칙과 기준 없이 명예와 눈치, 책임회피를 위해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법치를 무시한 제멋대로의 권모술수 정치와 공적인 약속(公約)을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서 정치인들에게 거는 일말의 기대마저 이미 사라진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금방 밝혀질 거짓말로 시민을 속여 표를 얻고 결국은 정치를 혐오하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도록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반복되는 허언과 거짓말로 시민들을 속이는 일들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보다 진전된 새로운 정치의 바람이 불게 해야 합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한 사람의 됨됨이는 먼저 그가 믿는 종교를 올바로 정확하게 표현하느냐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단 한 번의 선거를 위해 자신이 몸 담았던 당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이합집산을 반복해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정치인들처럼, 자신이 믿는 종교가 상황과 장소에 따라 이 종교도 되고 저 종교도 될 수 있는 그런 ‘박쥐 정치인’를이 ‘원칙이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최근 자신의 종교를 속이는 신천지 교인들의 행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겪었습니까?그리하여 우리 종교인들은 21대 총선에 나서는 후보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종교단체와 종교집회를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종교를 정확히 표현하십시오! 그저 표를 얻기 위해 이쪽에서는 이 종교 신도요, 저쪽에서는 저 종교의 신자로 행세하는 거짓말쟁이를 시민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다종교인이면 처음부터 분명히 다종교인이라고 표현하십시오! ‘정치를 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얄팍한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또한 신앙생활을 하는 시민들에게도 이렇게 호소합니다.그저, 혈연 지연 학연이 있다는 이유로 후보자를 선택하거나, 나와 같은 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우리 종교집단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을 막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후보자의 철학과 신념이 공유된 소속 정당이 몇 년간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그 활동이 이 사회의 발전을 가져왔는지, 후보자는 어떤 원칙이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투표해야 하겠습니다.한 사람에게는 그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살펴볼 수 있는 ‘개인 간의 신의(信義)’와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신용(信用)’과 종교적 신념인 신앙(信仰)이 있습니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여러 종교의 신도임을 사칭하는 사람에게서 어떤 신용과 신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서 어떤 ‘원칙이 있는 정치’가 나오겠습니까?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정확하게 밝히고, 말 바꾸기 하지 않는 믿음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후보자가 되기를, 또 그런 사람들을 골라낼 수 있는 유권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성남시의 종교인개신교 목사 : 김현의, 방인수, 서덕석, 성모, 이훈삼, 임승철천주교 신부 : 김유곤, 김정욱, 김하종, 박필범, 서진덕, 염지원, 조태구, 최재철, 표창연, 함문주(이상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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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7
  • 그날이 오고 있다. 너와 내가 만들어 가고 있다
        매일 전세계에서 17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탈리아 상황의 심각성은 익히 알고 있고, 스페인은 요양원에서 종사자들이 도망간 상태에서 노인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의료진 감염자는 4천명에 이른다. 청정국가로 알려진 이상적 국가 모델 가운데 하나인 인구 소국(865만) 스위스의 확진자와 사망자는 우리를 넘어섰다.   미국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그동안 코로나19를 배양했던 일본이 심각하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확진자가 적지만 더 위험성이 높은 곳이 있다. 의료체계가 갖추어지지 못하고 정보 전달 체계가 미비하며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남부아시아(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총 인구 20억), 동남아 인구 대국(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중남미(멕시코, 브라질),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콩고, 남아공, 에디오피아 등) 국가가 여기에 해당된다. 러시아, 터키, 이집트도 위험하다.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걱정스럽다. 제발 열악한 곳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기를,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확진자가 안 나오더라도 우리는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할 수 없다. 코로나와의 동거 상태는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물리적 거리 두기)’를 무한정 지속해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4월6일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방역 대책을 ‘생활 방역’으로 바꾸어서 지속 가능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전환하려고 한다. 방역 방침이 전환되면, 현재와 같은 물리적 거리 두기는 완화된다. 경제 활동과 사회 생활을 정상 수준으로 하면서 ‘마주보고 식사하지 않기’, ‘유증상자 출근 안하기’ 등 구체적인 ‘생활 방역’ 방침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환을 받아들여야 되고, 지킬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과정에서 곡절이 많았으나 국민 다수는 정부를 신뢰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 모델이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WHO가 사태 종식을 선언할 때까지 정부와 방역 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생활 방역’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이 전제가 중요하다. 4월 6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지켜서 안정적 관리가 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상태는 하루 확진자 숫자가 적게 나오는 것도 의미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염규모의 숫자를 줄이고 전파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다.(한 요양원에서 100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감염규모는 1이다. 1인 확진자가 전국 10곳에서 발생하면 감염규모는 10이다. 후자가 전파확산의 측면에서 볼 때 훨씬 위험하다) 따라서 4월 6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유채꽃과 벚꽃을 왜 보고 싶지 않겠는가.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즐거움을 왜 바라지 않겠는가. PC방에서의 오락이 주는 기쁨, 콜라텍의 무료함 달래기, 헬스장에서 몸의 짜릿함을 느끼는 시간을 잠시 유보하자. 그래야 우리는 그 행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대책 없이 집합예배를 강행하는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말자. 멈춘 듯 흐르는 이 시간이 지나면 너와 나는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상생의 바다로 한 발 다가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품격있는 문화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에 함께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날이 오고 있다. 그날을 우리가 만들고 있다. 김구 선생님의 소원인 문화 강국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부강하고 번영하는 한반도의 꿈도 함께 오기를.  한덕승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성남시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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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코로나19 대응하기, 두 가지가 아쉽다
      [아이디위클리]코로나19 상황, 앞으로 1~2주가 고비일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오늘도 검사 중인 의심환자가 3만 5천명인 걸 감안하면 당분간 확진자는 현저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섭다. 그러나 이 사태가 잘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아마 내년 이맘때면 ‘코로나19 감기’처럼 또 하나의 감기 인플루엔자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낙관인가? 그 근거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동안 사스나 메르스를 극복하면서 쌓아둔 우리 의료계의 노하우와 세계최고의 검진인프라, 투명하면서도 차분한 대응능력과 자신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극복한 나라라는 사실을 근거로 말하고 싶다. 물론 합리적 근거는 될 수 없을지라도 감각적 확신은 들지 않는가?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에서 우리 모두가 배웠으면 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사스, 메르스를 겪으면서 학습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에 가장 아쉬웠던 점이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이었다. 공공병실이 모자라 자가 격리 중인 환자가 진단이나 진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대구에서만 벌써 세 사람이 죽었다. 메르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민간병실도 공공의료에 투입될 수 있는 길이 트였다고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의료 인력과 물자도 모자랐다. 이건 감염병 관리에 관한 하드웨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때 대표적 대형민간병원에서 자신의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고 공공병원으로 옮겨 치료해야 했다. 감염병 관련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민간병원 입장에서 보면 감염병 관련시설은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면서 유지비도 비싸다. 거기다 활용도나 특히 경제성이 떨어지는 시설인 것이다. 운영하기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어떤 민간의료기관도 그 처지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민간의료가 감염병 시설을 기피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負의 외부효과’라고 하는 모양이다. 모두 기피하면 공공이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시장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시장실패. 정보의 비대칭 등의 몇 가지 요인이 더해지는 것이지만 아무튼 의료에 관한한 시장은 제한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의료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나는 공공의료의 반대말은 경제학 논리를 따르면 시장의료가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시장으로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공의료는 어떤가? 공공병상 비중은 13%가 안 된다. 공공병원 수는 10%도 안 된다. GDP대비 보건부문 공공지출액 비중은 2.5%로 OECD 최하위이다. 참고로 OECD 평균비중은 5.89%이다(2016년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스 때 활약했던 진주의료원을 폐쇄했고, 10여개의 적십자병원이 문을 닫았다. 대한적십자사는 공공의료의 한계에 따른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스건 메르스건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코로나19에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대응의 아쉬움이다. 감염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같은 바이러스라도 감염병이 발생한 지역의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그 위험의 크기와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의료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회적 질병이라는 말을 ‘질병의 당사자가 사회’라는 의미로, 또한 ‘질병의 치료를 사회가 담당한다’라는 의미로 보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치료의 대상이면서 치료를 담당하는 주체가 된다. 질병대응을 매개로 사회가 공동운명체로 묶일 수도 있고, 감염병의 공공성을 분명하게 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대구의 환자를 광주에서 치료하는 감동적인 예에서 감염병이 사회적 질병임이 잘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염병의 위험은 두 측면에서 봐야한다고 얘기한다. 하나는 질병이 갖는 객관적 위험과 또 하나는 대중이 느끼는 위험이다. 그런데 객관적 위험의 크기와 대중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객관적 위험의 크기보다 대중이 느끼는 위험의 크기가 컷을 때 문제가 오히려 심각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는 위험관리의 측면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대중이 느끼는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는 주로 정치와 행정, 그리고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감염병관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객관적 위험과 대중이 느끼는 위험을 같은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그런데 어떤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위험을 필요이상으로 과장하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모든 정보공개가 선인 것처럼 몰고 가는 기초단체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성남에서도 필요 이상의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는데 자제하길 바란다. 코로나19가 사회적 질병이라면 우리는 지금 사회적 질병의 관리방법을 고민하지 못했고 따라서 매우 서툴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감염병 사태 한가운데에서 ‘정치과잉’은 우스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가 이상한 종교를 닮아가고 또 그런 종교는 정치를 찾아다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교주 코스프레를 하고 교주는 정치인 흉내를 내는 듯하다. 이런 사회적 대응으로 사회적 질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바보야 사람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의료야!   만약에 앞으로 또 이러한 감염증이 유행한다면 이 두 가지 학습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동근성남시의료원 이사전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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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성남문화재단은 왜 노재천을 소환하는가?
      [아이디위클리]노재천 대표가 6기 성남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했다. 상당히 치열했던 경합 속에서 재단은 노재천을 선택했다. 나에게는 그 선택이 반갑고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재천에게 두 가지 강점이 두드러진다. 우선 문화재단 경영 경험이 풍부하다. 우리나라 문화재단의 역사는 짧지만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속내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체화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손가락으로 쉽게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이다. 문화재단에 대한 정의는 짧은 역사에도 다양한 편인데, 거칠게 지역 문화재단은 공연장 등의 경영과 지역문화정책의 생산과 수행에 연결 된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어서 상당한 노하우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전문성이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되면서 문화재단 운영이 꼬이기 시작했던 현실을 우리는 너무도 자주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성남사회를 잘 안다. 성남 출신은 아니지만 지역과 10여년 스킨십을 가져온 경험이 있다. 지역문화정책을 경영하려면 지역에 대한 정보를 넘어서는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지역의 문화정책은 지역과의 끝없는 소통을 통하여 수렴되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어서 그것을 외부에서 쇼핑해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 동안 중앙에서 내려온 대표들이 지역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다. 어떤 이는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이해에 지역을 뜯어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거기에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이어서 그들의 2년 임기 중 절반을 여기에 투자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화재단 대표에게 요구되는 필요조건은 훨씬 다양한 것이어서 가시적 강점을 내세우는 내가 너무 속물적이다. 그는 어떤 성남문화재단을 꿈꾸는가? 문화로 만드는 도시 성남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나? 도시가 추진하는 행정을 꿰뚫고 있는 가치 중에서 문화는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그의 문화예술경영 철학을 우리는 물어야하고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의 철학이 흔들리면 재단의 사업이나 모든 지표들이 심각하게 뒤틀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예컨대 성남문화재단의 브랜드는 ‘사랑방 문화클럽’이었다. 이 정책은 지역문화정책의 모델이 되었고 국가가 이 정책을 국가화 하였다. 이 사업은 많은 진화를 거치면서 비전과 목표, 전략을 수정한다. 그 중 ‘사회적 자본’이라는 공공재를 생산한다는 목표가 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만들어지고 정책생산의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인데 결국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 성남이라는 도시의 특징은 인공도시, 신흥도시, 인구의 합중성 등으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특성을 하나로 묶으면 ‘믿기 어려움’, 신뢰관계가 엷은 사회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다는 얘기. 그래서 행정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오래된 도시 수원과 비교하면 그 지표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민원이 행정으로만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브라질의 꾸리찌바가 물적 인적 자본이 취약함을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통해 극복하지 않는가? 사랑방의 목표 중에 이 사회적 자본을 길러내자는 철학이 있다. 그런데 이 철학을 잊거나 모르면 이 사업은 단순한 ‘동아리 지원 사업’으로 전락한다. 노 대표의 철학이 깎고 다듬어야할 문화정책이 녹녹하지 않다. 성남의 산업은 ICT로 대표된다. 이 산업은 미디어 아트나 디지털이라는 문화예술매체이기도 하다. 발터 벤야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예술매체가 예술의 형식이나 대상, 수용방식을 얼마나 매력적이고 혁신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지 모두가 안다. 이 조건을 성남은 가지고 있고 이 사업은 성남문화재단만이 엮어낼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성남의 축제를 유추할 수 있고 그 모델이랄 수 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벤치마킹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나는 노재천이 연주하는 ‘성남 판타지’를 듣고 싶다. 그 교향곡 안에 성남의 기쁨과 슬픔, 꿈과 좌절, 현재와 미래가 녹아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는 매우 훌륭하게 그 일을 해낼 것이다. 그를 응원한다.   하동근경기문화재단 이사전 성남문화재단 문화진흥국장광주대단지사건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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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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