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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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남시의회 기후위기대응 녹색전환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아이디위클리]스웨덴의 17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후위기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호소했다. 기후악당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세계 7위 배출국가로 OECD국가 1인당 탄소배출량이 전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100년간 지구 온도는 1℃가 상승하여, 남북극과 동토들이 녹고 있으며, 지구온난화가 가져오는 기후변화는 가뭄, 산불, 장마, 홍수, 폭염 등의 이상기후로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지구의 온도를 2050년까지 1.5℃를 유지하는 목표로 탄소중립국가, 즉 넷제로를 선언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대한민국의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이에, 95만의 인구의 대도시인 성남시도 2030년까지 50%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기후위기대응’과 ‘녹색전환도시’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대응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저감하기 위해서는 건축물, 교통, 수송체계, 생물다양성, 에너지전환, 도시농업, 도시숲, 물순환, 고용 안전, 사회적 불평등, 폐기물 대책 등 성남시 전반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목재 난방 등의 신재생에너지의 신속한 보급 등이 요구된다. 지구의 제7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는 기후위기의 비상 대응은 성남시, 대한민국의 그 어느 정책보다도 가장 우선해야 하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그 어떤 수사보다 강조돼야 한다. 즉, 성남시, 성남시의회, 성남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즉각적인 기후위기 비상대응 선언이 필요하다. 이에 성남시의회가 기후위기대응에 앞장서 녹색전환도시 성남시를 만들기 위해 성남시와 성남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여야 합의로 ‘성남시의회 기후위기대응 녹색전환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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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3
  • “8.10 성남(광주대단지)항쟁”을 호명하다
    [아이디위클리]지금으로부터 49년 전 성남초등학교 뒤편 공터에 5만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양택식 서울시장으로부터 단지문제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단지문제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는 극한의 생존상황(전성천의 회고록에는 1주일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과 정부-서울시가 부과한 무리한 땅값과 세금문제 두 가지와 관련된다. 이런 문제 상황은 정부-서울시의 신도시 건설정책에서 비롯된다. “선입주 후건설”이라는 카피가 그 정책의 전략을 요약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먼저 입주시키고 개발지의 땅값을 올려 그 수익금으로 도시기반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기막힌 기획인 것이다. 요컨대 정부가 땅장사해서 번 돈으로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넘쳐나는 사람들이 필요했었다. 그러면 입주와 건설 사이의 기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10만 명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뜯어 먹고 산다.”라는 시장에나 떠돌아다니는 말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철학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서울시에 해결책을 요구했고 그 시장은 직접 얘기를 나눠보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됐든 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게는 1년 반 이상을 목숨 걸고 참아왔던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한계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상대가 무지막지한 군사정권이었다는 사실은 폭발의 정도가 무시무시했다는 사실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관공서와 관용차를 불태우고 청와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나아가는 사진들은 폭력의 정치학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다. 청와대는 이들의 요구들을 들어줄 것을 서둘러 명령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이 사건의 맥락이다. 이 사건이 한국 최근세사에서 차지하는 장소는 빈민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측면과 박정희 ‘조국근대화’ 담론의 텅 빈 공간을 여실히 드러내는 곳에 위치한다. 절대 권력에 대들 수 있는 빈틈을 보임으로 사당동 등의 빈민운동을 촉발시켰다는 의미를 가지며, 또한 박정희 정치의 핵심 담론인 조국 근대화의 이면이 가지고 있던 실체를 드러내 버린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빨리 덮어 감춰져야 할 역사적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지시하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광주대단지 난동사건”이라는 정부와 법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성남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 호명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남주체의 시선은 무시되었다. 둘째 사건의 양상이 강조되고 사건의 원인은 무시되었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당시 치안국장이었다. 그는 ‘주동자의 질’을 난동이 될 수 있는 근거로 내세웠다. 셋째 사건의 우연성이 강조된다. 사건(event)이라기보다는 사고(accident)에 가깝다. 넷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원인)를 감추는 효과를 가져 온다. 정부-서울시의 치명적 오류가 숨겨질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이름 짓기 싸움일 수 있다. ‘난동’이라는 이름은 당사자 주체들을 부끄럽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실제로 왜곡된 호명의 효과는 실질적으로 작동했고 주체들 스스로 이 역사를 감추게 만들어 왔다. 이것이 이름이 갖는 효과이다. 라캉 식으로 얘기하면 이름은 ‘주인기표’라고 할 수 있다. 주인기표는 의미를 새롭게 조직한다. ‘난동’이라는 주인기표는 정부-서울시의 오류를 감추고 사건 주체들에 대한 난폭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의미를 생산한다. 그래서 사건의 주체인 성남은 주체의 시선이 반영된 주인기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8.10 광주대단지 사건”이라는 가치중립적 이름을 정식 이름이 확정될 때까지 쓰자고 했다. 그래서 ‘성남시사’ 등에는 이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30년이 넘도록 이름 ‘찾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써왔다. 그래서 사건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 성격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찾아 헤매온 셈이다. 그러나 사건의 의미는 “발견되거나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제들(machineries)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진경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186쪽). 이때 새로운 기제란 ‘계열화와 배치’를 의미한다. ‘난동’은 주동자의 성격을 전면에 배치하고 폭력의 양상을 계열화했다면 주체의 시선에서는 폭력적 생존권 상황을 배치하고 정부-서울시의 선입주 후건설의 땅장사 양상을 계열화할 것이다. 어제(10월 8일) 성남시와 성남시 광주대단지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 사건의 이름을 짓는 토론회를 열었다. 공식적으로 이름을 지어보자는 취지이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름 붙이기의 보편적 시스템과 유의점을 객관적이고 학문적 시각에서 정리했다. 다양한 참조지점들이 망라된 발제로 호평을 받았다. 패널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진상규명이나 기념사업을 조사, 기획하고 있는 안종철 박사, 『기업시민과 시민공동체』 등 6권의 시리즈를 통해 성남이라는 도시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자인 한중연의 한도현 교수, 대단지 사건 학술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이고 이 사건에 대한 논문을 썼던 김원 한중연 교수, 이 사건을 최초로 분석했고 성남 지역운동을 이끌어 온 김준기 교수, 자치행정과장이자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그래서 사건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인목 과장이 있고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인 하동근이 좌장을 맡았다. 토론이 지은 이름은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이다. 이름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절충 과정이 필요하다. 이 이름소에서 ‘성남’과 ‘항쟁’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면 ‘8.10’과 ‘광주대단지’는 특수성을 대변한다. ‘항쟁’은 사건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때 ‘맞서 싸움’(struggle or resistance)은 국가폭력과 주민들의 자위적 폭력의 성격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성남’은 광주대단지가 성남시 탄생의 원인임에도 대단지에 대한 이해가 이뤄지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광주대단지)’는 당대가 배제된 역사현실이 불가능하다는 측면과 ‘항쟁’의 서술적 기능을 한다는 측면이 고려되었다. 괄호는 성남과 광주대단지의 묶음이 갖는 생소함을 줄여주는 효과와 유보적 측면이 고려되었다. 즉 일정 정도의 시민이해도가 충족된다면 괄호를 없앨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예정된 시간을 1시간 반을 초과하는 열띤 토론의 과정을 거쳐 빚어낸 소중한 이름이다. 이제 이 이름은 사건의 새로운 의미들을 생산할 것이다. 이 의미들은 성남의 모든 교육과정들을 통하여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고, 궁극적으로는 성남만의 특수한 시민성, 즉 성남의 시민주체를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토론에 참여한 발제자, 패널들 그리고 자치행정과장, 그리고 사회를 담당한 팀장, 주무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20.10.9.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하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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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0
  • 9월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이하여
      [아이디위클리]불과 2년 전 일이었건만 까마득한 과거사가 된 듯하다. 그때 남북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천명하였다. 4월에는 판문점에서, 9월에는 평양에서.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가슴에 평화를 아로새겼다. 하지만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평화의 길은 막혔다. 올해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고 한미합동훈련은 재개되었다. 9월 평양공동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가 공표된 지 2주년이 된 지금 한반도의 운명은 미로 속에 있다. 다시 제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민족이 공생, 번영하는 길은 이 길뿐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사의 새로운 전환이며 인류사의 신기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 지난 길을 돌아봐야 한다. 새로운 출발은 반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제는 남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남북관계 진전 여부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판단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신냉전체제를 극복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바탕에서 67년 동안 지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미중대결의 신냉전체제를 극복하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선언에서 천명한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는 판문점선언 등 모든 남북 정상 간의 합의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정부는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을 자제하고 군비증강 정책을 바꿔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무조건 따르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믿고 국민의 지혜를 모아서 남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상상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남북 교류와 협력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제 좌고우면하지 말고 갈 길을 가자. 70년 간 이어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전쟁을 끝내는 길에 우리는 나선다. 신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는 길로 우리는 나아간다. 이 길이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우리는 간다. 2020. 9. 19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성남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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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8
  • 정부의 의료정책, 시민의 생명을 위한 것인가
      [아이디위클리]어제, 아들의 다리가 부러졌다. 급히 업고 인근 종합병원으로 뛰어가면서 파업 중인데 과연 아들을 진료할 의료진이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응급실에는 의사 가운을 입지 않은 채 환자를 돌보느라 분주한 의사들이 보였다.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직접 내려와 아들의 뼈를 맞추어주었다. 파업이라는 극한 선택을 한 와중에, 그들은 ‘공공재’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어 시민의 고통과 경제적 타격이 심화되고 있다. 하필 이 와중에 면밀한 연구와 소통의 노력 없이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등의 정책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환자를 볼모로 의료계를 압박하려는 저의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의사는 자신이 했던 선서대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하여 파업을 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로서, 의료계와의 충분한 소통이 필수적인 사안이다.   지방의회 의원으로서 서울시 행정과는 다소간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이 문제를 논하는 것도, 시민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하여 서울시민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대의기관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또한 서울에는 주요 대형 종합병원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병원의 의사들도 시민 아닌가. 코로나19로 대구가 고통받을 때,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대구로 달려간 의사들이 있었다. 이때는 의료진 덕분이라며 영웅으로 불리던 의사가, 하루아침에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만 지키려 하는 이기주의자로 전락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여당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의료인력을 강제징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역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은 불안감과 함께 배신감도 클 터이다. 의료정책의 성공여부는 정책 수혜자인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얼마나 지켜냈느냐에 달려있다. 정책과정에서부터 시민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정책은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시민의 생명을 최우선에 두고, 의료진이 마음 놓고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종식 이후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하여 해당 정책들을 원점부터 재논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성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 (현) 제10대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 (현)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현) 서울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행정학 석사○ 서울시립대학교 행정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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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3
  • 어느 기초단체장의 소회 “코로나 방역현장은 전쟁터… 정치적 생각은 사치”
      [아이디위클리]시장이 된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여러 감회가 있지만 요즘 특히 조금만이라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배려지심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작년부터 시작된 여러 재난은 1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 코로나, 장마, 코로나 재확산, 태풍 등 재난의 연속이고 그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은 정말 혹사당하고 있다. 요즘 상황이 어렵다 보니 참을성도 많이 약해져서인지 맘에 안 들면 전화로 소리치시는 분들. 툭하면 시청에 와서 소란을 피워 거의 오후 내내 일을 못하게 하는 분들 등등 다양하다. 물론 고생한다고 간식도 사오고 카드도 써서 보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코로나19의 방역현장도 삶의 현장이라 다양한 장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현장을 가까이서 보면 전쟁터와 같다. 특히 이번에 코로나가 재확산 된 10여일은 더욱 그렇다. 코로나19 검사, 확진자 관리, 확진자 동선 확인, 자가격리자 관리, 해외입국자 관리, 각종 민원 응대 등을 소수의 인원으로 처리하고 있어 숨 가쁘다. 반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방역 직원들은 휴일도 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고 있고,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탈수 증상까지 보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평택의 코로나19 상황은 최근 악화됐다. 초기 발생한 2월부터 8월까지 미군 및 해외입국 사례를 제외한 평택의 지역사회 감염자는 25명이었고, 94일 동안 지역사회 감염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재확산이 시작된 8월15일부터 10여일 사이 30여명의 지역사회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기간 보건소 직원들의 업무량은 폭발했고, 이들의 일터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8월 15일을 전후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해 ‘경기 역학조사관’이 평택에 내려오지 못하자 보건소 직원들이 이들의 업무까지 떠안아야 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심리적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수많은 민원 그 자체도 사람을 지치게 하고 욕을 섞어가면서 직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악성 민원인들도 많아 직원들이 그야말로 ‘번아웃’되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직원도 많고 몸이 많이 망가져 병가를 낸 직원들도 있다. 오히려 병가를 낼 수 있는 직원은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느 직원은 코로나의 ‘코’자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불안감을 느끼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하루를 두려워하는 직원도 많다. 이런 와중에 한 언론사가 8‧15서울 집회와 관련해 ‘민노총 집회 확진자를 광화문 집회자라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여당 소속 단체장의 지방자치단체가 민노총 집회 참석 확진자를 광화문 집회 참석 확진자로 둔갑시켜 발표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였다. 결국 평택시가 정치적 의도로 조작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택에서는 그날 확진자가 11명이나 무더기로 나왔다. 광화문 집회 관련자가 65번 환자를 제외하고 4명이나 되는 평택시로서는 하루에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날이었다. 22일 전후는 보건소로서는 정말 엄청 바쁜 날이었다. 직원들이 정신이 없었을 때 오산에 살면서 평택 병원에서 검사 받은 65번 환자가 그 병원에서 보건소에 양성으로 통보를 해오고 보건소에서는 그 확진자에게 전화로 기초 조사를 했다. 그 확진자는 8.15집회 참가자라고 했고, 광화문 집회 확진자가 여럿 나왔으니 당연히 광화문 집회자라고 생각해 분류한 것이 전부이다. 이 부분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민주당 시장이기 때문에 조작했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무어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함을 느낀다. 시장은 이름도 김00이라고 되어 있고 오산 거주자, 8.15 집회참가자라는 가장 기초적인 쪽지 보고만 받은 게 전부이다. 이 확진자가 민노총인지, 보신각 집회에 참석했는지 조차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광화문 집회자로 바꾸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 모든 것이 지자체장의 의도가 되기 위해서는 보건소 직원이나 언론 담당 직원들에게도 조작하도록 지시를 해야 되는데 가능한가.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요즘 같이 행정의 투명성이 시스템화 되어 있고, 개인의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에 조작을 지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뿐이다. 요즘 공무원들은 부당한 지시는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 나중에 본인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원을 하고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시장직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기사 때문에 전화를 많이 받으면서 하루 종일 분노가 가슴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코로나19 현장에서 전쟁 같은 업무에 정신이 없는 직원들은 정치를 생각할 겨를도 이유도 없다. 실제 대다수의 직원들은 8‧15집회면 광화문 집회로 생각을 했고, 보신각 집회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정말 최선을 다해 코로나를 막으려고 고생하는 직원들에 큰 상처를 주었다. 위기에 강한 우리 시민들의 기질이 다시 한 번 도전받고 있다. 평택시는 보다 철저히 방역을 이행해 나갈 것이고, 잘못된 정보가 나가는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다. 실수가 있었던 점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다시 한 번 평택시를 신뢰해 주실 것을 시민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더불어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몇 안 되는 정보만을 갖고 방역현장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세를 지양해 줄 것을 언론에 부탁드린다. 정장선 평택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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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1
  • 화장시설은 기품있는 추모의식을 치르는 공간이다
      [아이디위클리]출생과 사망은 삶의 한 조각이다. 가족이 출산을 하면 구성원 모두가 축하의 기쁨을 누리지만 가족구성원 누군가가 사망을 하면 황망한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망자의 측근 가족은 슬픔의 경황도 잠시고 이내 걱정이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이다. 우리나라는 1973년 대통령령으로 가정의례준칙이 공포되어 상례(喪禮)를 치를 때 '장일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망한날 포함 3일이 되는 날에 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고정 관념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3일장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도래되고 있다. 사망자 증가에 따른 화장수요가 화장장 부족의 턱없는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화장율은 1990년대 초까지 20%를 밑돌다 1998년 사망한 고(故) 최종현 SK그룹회장의 '시대를 앞선 화장유언'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하면서 장례문화를 화장으로 선도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SK는 최종현 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은하수공원에 화장장을 포함한 종합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채납하여 현재까지 국내 내로라하는 선진 장사시설로 운영 중에 있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의 노인층 진입으로 상반기 이천시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비단 우리 시 뿐이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천시의 경우 지난 2018년 기준 하루 3.5명이 사망하였고, 5년 후인 2024년도엔 하루 5명이 사망하고 화장률도 87%에서 92%까지 추계되는 상황에서 지금도 화장예약에 밀려 4일장 치르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4~5년 후를 생각하면 슬픈 유족들이 피곤한 몸으로 시신을 싣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원정화장을 하여야만 하는 악몽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2019년 현재 경기도내 화장장은 수원(9로), 성남(15로), 용인(11로) 3곳에 있고 1,200만 경기도민 중 하루 사망자는 170명으로 추계된다. 화장로 1기가 하루 3~4구의 화장을 소화하기에 해당 화장장 지자체 주민의 우선 예약으로 밀려난 3~40구의 타 지자체 시신들은 원정화장지를 찾아야 하고 4~5일장도 감수해야 하며 이러한 일상화의 날들이 멀지 않았다. 지역주민의 화장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화장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이다. 삶의 한 조각인 사망으로 인해서 살아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아선 안 된다. 이천시립 화장시설 건립추진 계획은 지난해 5월 수립 이후 조례제정 및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9월부터 10까지 2개월간에 신청지역주민의 50% 이상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민주적인 공모절차로 진행하였으나 화장시설이 혐오시설이라는 주민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지역이기주의로 인한 벽에 부딪쳐 사회적인 갈등 현상이 지속되어 사업이 지연되는 등 화장시설이 완공되기까지는 4~5년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 시작한다 해도 한참 늦었다고 본다. 장례식이 '관혼상제'라는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큰 품위 있는 통과의례라는 것임에도 우리나라 정서상 죽음이라는 것을 어둡고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죽음과 관련된 장례의식과 추모의식도 혼례처럼 통상 호텔 등이 추구하는 아름답고 아늑하며 행복함을 추구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후미진 자락에 위치한 화장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화장시설이 단순히 장사를 치르는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장례의식 전반을 결혼의식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의식으로 바꿔 고인을 추모하려는 의미도 크지만, 유가족을 위한 의식이기에 품격 있는 서비스를 바탕으로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기품있게 장례의식이나 추모의식을 치르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 이천시청 노인장애인과 노인장묘시설팀장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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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2
  • 횡설수설]성남시의회 8대 후반기 원구성과 ‘감투놀이’
    [아이디위클리]성남시의회 8대 후반기 원구성이 늦어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7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만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6월까지 원구성을 마쳐야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때맞춰 원구성을 마무리한 예는 손에 꼽힌다. 성남시의회는 원구성을 위해 6월 26일, 29일, 30일 3일 일정으로 255회 임시회를 열었다. 이틀을 그냥 보낸 후 30일 오전 첫 본회의를 열고 윤창근 신임 의장만 선출하고 회기를 연장했다. 앞으로 부의장 1명과 상임위원장 5명(의회운영위원회, 행정교육체육위원회, 경제환경위원회, 문화복지위원회, 도시건설위원회), 특별위원장(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2명 총 8명을 선출하고 위원회 의석배분 및 위원회별 부위원장(옛 간사)을 정해야 한다. 우선, 전반기와 같은 교섭단체 배분이 이뤄질지가 관심이다. 전반기에는 의장과 부의장, 행정교육체육위원장, 문화복지위원장, 도시건설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몫이었고, 의회운영위원장, 경제환경위원장, 윤리특별위원장이 미래통합당의 몫이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20명 중 13명은 초선이다. 재선 이상 7명은 모두 전반기에 의장부터 부의장, 상임위원장, 특별위원장, 당대표까지 하나씩 감투를 썼다. 박문석 전반기 의장, 윤창근 후반기 의장 그리고 후반기 당대표에 선출된 마선식 의원을 제외하고 3선 강상태 의원, 재선 김선임 의원, 조정식 의원, 박호근 의원이 부의장과 3개 상임위, 1개 특위 위원장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다섯 자리 중에 한 자리가 남는다. 2년 남짓 의정활동을 한 초선에 대한 위원장직 배려가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미래통합당은 13명 중 8명이 재선 이상이다. 전반기에 당대표, 의회운영위원장, 경제환경위원장, 윤리특별위원장을 한 4명을 빼면 4선의 이상호 의원(수정구), 3선의 박영애 의원, 재선의 박광순, 이기인 의원이 남는다. 이상호 의원은 이미 후반기 당대표에 선출됐다. 산술적으론 나머지 3명의 의원이 한 자리씩 하면 된다. 과거 박영애 의원은 경제환경위원장, 박광순 의원은 의회운영위원장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전반기와 같은 교섭단체 배분에 합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여당은 과거 전례를 되살려 부의장을 야당 몫으로 넘기고 경제환경위원장 자리를 하나 더 꿰차려 할 수도 있다. 미래통합당은 의원수 비례 논리를 들이댈 수 있다. 전통적인 자리 나누기의 기본공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5석 중 20석으로 57%, 미래통합당은 35석 중 13석으로 37%의 비율을 점하고 있다. 6대 4의 비율이다. 의장을 포함한 9석으로 계산하면, 5.4와 3.6으로 5명과 4명이다. 전반기에 1석을 더해 요구할 수 있는 논리다. 의장은 다수당이 차지하는 전례에 따라 의장을 제외하고 8석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5명과 3명으로 전반기와 같아진다. 후반기가 달라진 점은 전반기 원구성 당시에는 민주당 21명, 한국당 12명, 바른미래당 2명이었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20명, 미래통합당 13명, 민생당 1명, 깨어있는시민연대당 1명이다. 민주당 유재호 의원이 깨어있는시민연대당으로 나갔고, 미래통합당은 통합작업으로 이기인 의원이 합류해 1석이 늘었다. 한편, 행정교육체육위원회 위원장에는 3선의 강상태 의원(수정구)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당대표와 부의장을 지냈지만, 위원장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도시건설위원회 위원장에는 재선의 박호근 의원(중원구)이 회자되고 있다. 전반기 당대표 외 별다른 감투 이력이 없다. 전반기 행정교육체육위원장을 맡았던 재선의 조정식 의원(분당을)은 부의장, 문화복지위원장을 했던 김선임 의원(수정구)은 경제환경위원장 등으로 거론된다. 현재 성남시의회는 35명 중 20명이 초선이다. 성남시의회가 거듭될수록 구조적으로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에는 초선의 최종성 의원(분당을)이 도전장을 내 3선의 마선식 의원과 자웅을 겨뤘다. 수정구, 중원구, 분당갑구, 분당을구 등 지역구 안배 측면과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하더라도 후반기 원구성의 헤게모니는 초선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닌지 7월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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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 우리는 보수가 아니다
    이념의 정의“이념을 떠나 민생에 집중하자”라는 슬로건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념이 나쁜 것이고 민생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념이 뭐길래 계속 거부하려는 걸까요? 이념은 사상, 이데올로기라고도 불립니다. 역시 듣기에 어려워 보이고 거부감 들긴 하네요. 그래도 알아봅시다. 이념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김밥 먹고 싶다’ 라는 것도 이념일까요? 아니겠죠. 이념은 어떤 공동체, 정당, 국가 등의 집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념을 떠나면 그 결정을 할 수 없겠죠? 그럼 다시, “이념을 떠나 민생에 집중하자”라는 슬로건은 옳은 명제일까요? 결론은 옳다 그르다 이전에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민생은 국민의 삶, 좁게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소리인데 이념을 떠나는 순간 국민의 삶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생각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을 올릴지, 내릴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할지, 풀지 정하는 것 하나하나 모두 이념이 개입되고 이념단체들이 개입됩니다. 결국 이렇게 이념이 개입되는 정책에서 하나하나 도피하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연탄배달밖에 없겠죠. 수년 전 야당대표가 “이념이냐 경제냐 선택하십시오” 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 또한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경제를 망치는 이념을 거부하고 경제를 살리는 이념을 행하는 것 뿐입니다. 이념의 중요성이렇듯 이념은 작은 공동체부터 크게는 국가, 인류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하냐, 3번째로 중요합니다. 자연계에서 운석이 충돌하거나 지구 근처에서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하는 것, 둘째로 각 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가 재림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 그 다음으로 인간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이념문제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만 어쨌든 이 이념이 잘못 정하면 수천만명이 학살당하고, 잘되면 국가, 인류전체가 수백년간 번영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광화문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양 진영 극단에 서서 악쓰고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다만 이런 폭력성 은 이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시민들이 몰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지, 이념의 본질이 아닙니다. 물론 이념을 가지되 확장성을 위해 이념을 숨기는 것은 좋은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심까지 이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옳은 이념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보, 보수, 좌익, 우익 중 어떤 이념이 옳을까요?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현재 진보/보수, 좌파/우파로 이념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진보 구분의 문제점먼저 보수라는 단어의 문제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수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표가 기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보수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와, 실제 보수에 담긴 뜻이 판이하게 달라 왜곡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지킨다는 뜻입니다. 무얼 지킬까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성서와 복음을 기반으로 정립된 정치이념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 보수진영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은 지키기만 하고 발전, 개혁, 혁신은 없는 걸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보수진영 사람들은 ‘보수’는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는 옳은 가치들을 지키고, 급진적,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개혁해 나가겠다는 이념도 담고 있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 의미로 ‘보수 = 지킨다’ 라고 인식하고 그 이상 알아보려 하지를 않습니다. 정치투쟁의 장에서는 최대한 짧고 자극적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기본입니다. 진영을 대표하는 이름에서부터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면, 게다가 그 설명이 정 반대되는 뜻이 함께 담겨있다는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 것이라면, 이들의 미래는 매우 험난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이 발전, 개혁도 했다는데 얼마나 했는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보수진영을 이승만 대통령부터라고 규정한다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인권의 개념을 전파하고, 여성해방을 이루고 인신분제의 잔재를 완전히 폐지하고, 미신, 악습을 타파하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이루고, 근대문명을 이식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수천년간 중국에 종속된 세계관을 세계로 확장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사실 지키는 것보다 개혁한 것의 무게감이 더 크고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개혁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왜 보수일까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기성보수진영 내에서 종종 ‘박정희는 건강보험 같은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수 뿐 아니라 진보라고 말할 수 있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거기서 멈출 것이 아니라, 보수/진보로 진영을 규정하는 것이 혼란과 왜곡을 가져오며, 필연적으로 보수진영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명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치열한 정치투쟁의 장에서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포장해도 이기기 어려운데, 한 것도 안했다고 말하니 늘 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보수라는 이름은 이미 많은 훼손을 당했기 때문에 금방 ‘수구’라는 단어가 연상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름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특히 젊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진보’라는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훨씬 큰 선호도를 보이기에 더욱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보수, 진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킨다, 발전한다’ 이렇게 인식되기에 상황마다, 시대마다, 장소에 따라 계속 혼동될 수 밖에 없으므로 특정 이념집단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쓰인다면 계속해서 혼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념을 세일즈 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투쟁의 장에서 이렇게 많은 진보적 업적과, 좋은 뜻을 내포한 집단이 스스로를 ‘보수’라는 부정확하고 소극적이고 필연적으로 혼란을 줄 수밖에 없는 단어를 선택해놓고 생계에 바쁜 유권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남 탓하니 늘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너는 보수가 부끄럽냐?’ 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진보라는 이름은 어떨까요. 진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보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욱 잘못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집단은 집권여당, 민중당, 정의당, 친문세력, 운동권 세력 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정당성을 얻었으나 집권 이후로 보여준 행보는 반민주, 반자유, 반인권, 반진실, 반문명, 반헌법, 반국가, 반이성, 전근대, 친중 행태, 즉 퇴보뿐이었습니다.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했으며, 3대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시키고자 노력하며 북한인권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3권 분립을 훼손하고 민주노총 등 지지층 기득권을 위해 자유시장경제를 훼손하고, 윤미향 조국 등을 옹호하며 법치를 무너뜨리고 공정, 정의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진보입니다. 진보는 당연히 발전한다는 의미로 인식됩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문명이 발전한다는 개념보다 순환한다는 개념을 가졌지만 근대화 이후로 모든 사람은 인류문명은 진보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반자유, 반민주세력은 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했습니다. 일반유권자들은 진보라고 하면, 아무리 정치적의미의 급진세력을 뜻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해도, 무의식적으로 필연적 문명의 진보라는 개념을 연상하기에 정치투쟁에서 엄청난 우위에 서게 됩니다. 진보라는 이름은 직관적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원론적으로도 잘못되었습니다. 현재 소위 진보진영이 진보라는 단어를 쓰게된 계기는 마르크시즘 역사관에 있습니다. 해당 역사관에서 규정한 인류 문명이 ‘원시공산사회 ->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산업사회 -> 프롤레타리아혁명 -> 공산주의유토피아’로 필연적으로 이행하게 되어있고 이것만이 진보라고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해당 역사관은 역사 속에서 잘못되었음이 이미 입증되었지요. 물론 본인들이야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던 말던 자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성보수진영의 태도입니다. 수십년간 수천명의 전직 국회의원, 전직 고위공무원, 보수진영으로 규정된 거대족벌언론, 시민단체장, 교수들이 이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스스로를 보수, 상대를 진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이론과 주장이 맞다고 인정해 주는 꼴입니다. 상대방의 주장이 맞고 진보가 맞다면 왜 보수진영에 있습니까. 전향을 하던, 귀가를 하던 해야지 보수 정당은 왜 하고, 선거에는 왜 출마하며, 기사는 왜 쓰고, 집회 시위는 왜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다행히도 2017년부터 기성보수진영의 정당에서 진보라는 말을 지양하고 있긴 합니다. 다만 스스로를 보수 혹은 우파라고 부르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절반이라도 했으니 다행이긴 하나, 문제는 상대를 진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상대는 진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원론적 세계관에 매우 익숙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남성이 있으면 여성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을 것 같고 보수가 있으면 그 상대인 진보가 있을 것으로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좌우 구분의 문제점공산주의자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패러다임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리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이해됩니다. 당연히 정치권에는 여야가 있고 서로 상호 견제하는 것이 옳다고 교과서에서 까지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뒤집기 거의 불가능한 패러다임입니다. 일단 좌익 우익 구분은 프랑스 혁명 당시 테니스코트에서 우익에 왕당파가 앉고 좌익에 공화파가 앉은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원으로 따지면 현재 대한민국의 좌우 구분과 전혀 대치되지 않는 용어입니다. 다만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이고 현재 의미가 통용되는 것은 사실이니 백번 양보하여 언어의 유래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치구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큰 왜곡이 발생하기에 이 또한 개선되어야 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적 틀이 유지되는 선에서 원론적으로 단순화하자면 평등을 추구하는 진영이 좌익, 성장을 추구하는 진영이 우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상기 언급했듯,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고 반민주, 반자유, 독재를 추구하는 진영이 좌익이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진영이 우익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집단과, 이를 수호하려는 집단이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잘못된 명제가 성립됩니다. 또한 새의 양 날개 패러다임을 견지하면 굳이 좌, 우 한쪽에 가서 균형을 유지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중도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념기피현상으로 이어지며 어떤 정책도 대안도 없이 미사여구로 득표만을 추구하는 세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이념기피집단은 반드시 중도가 아니라 실용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답변하기 마련입니다. 실용은 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대부분 이념갈등이 극단화 되고 겉으로 실생활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안보정책이나 역사논쟁을 기피하고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마련인데, 발제 초반에 언급했듯 결국 이념없이 실용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를 아는 유권자가 매우 소수이기 때문에 국가는 또 다시 많은 재원의 낭비와 정치적 실패를 겪고 먼 길을 돌아 또다시 제자리로 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 국민의 두뇌에 각인 된 단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영 내부에서 조차 혼동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좌,우 라는 단어까지는 어느 정도 용인하되 진보, 보수의 구분은 혼란과 해악이 너무나 크므로 점진적으로 퇴출시키고, 보수라는 단어는 절반은 맞을지 몰라도 특히 진보라는 단어는 단 하나도 옳은 측면이 없기에 사용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 드립니다. 우리의 진짜 이름보수/진보도 안 되고, 좌익, 우익도 안 된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규정되어야 할까요? 우리의 진짜이름은 자유민주진영입니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진영이라고 불리워야 하는 지 역사를 통해 입증하겠습니다. 전근대 시절, 절대왕권과 귀족계층, 가톨릭 사제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의 지배를 받는 백성, 평민, 노예상태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것이 흑사병이 퍼지고, 봉건제가 무너지고, 과학혁명,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인류의 지혜가 계몽시대에 폭발하고, 그것을 시민혁명을 통해 피로써 쟁취하여 절대왕권과 가톨릭으로 부터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는 말 그대로 자유이고, 민주는 백성 민, 주인 주, 즉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로서 인류문명 이래 5000년간 존속되었던 신분제가 사라지고 백성과 노예였던 사람들이 근대적 자유민주시민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대왕권과 가톨릭의 폭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내고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 영역이 혁신되고 새로운 제도가 완비되자 물질적 영역에서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민주를 얻게 된 시민들은 그것을 누릴 준비가 되지 않았고 자유는 변질되어 무질서와 방종으로, 민주는 변질되어 중우정치, 인민재판,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사례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공동체의 질서와 법치를 강조하는 공화주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유의 변질을 제어하기 위해 민주와 공화가 작용하고, 민주의 변질을 제어하기 위해 자유와 공화가 작용하고, 공화가 변질되어 독재로 치닫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자유와 민주가 작용하는 정치의 황금률이 발견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류는 이를 능가하는 정치체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 민주, 공화의 균형과 조화를 정치영역에서의 선이라고 칭하고 이것이 훼손되고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악화’된다고 규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영원한 기준은 아닙니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적 특이점 등 이를 능가하는 체제가 얼마든지 고안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선’이 지켜진다고 해도 지상에 천국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나마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은 자유, 민주, 공화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시민입니다. 자유민주시민이 모인 진영은 자유민주진영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여기서 민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특별히 민주를 따로 다루는 이유는 민주가 자유, 민주, 공화 중에 가장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진영으로 거듭나야 할 기성보수진영이 가장 오해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앞서 설명했듯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민주적 절차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절차, 뜻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타협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이나, 민주적 의사결정은 선택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빠른 의사결정이나 전문성 확보를 위해 민주적절차가 아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예시로 사법부를 들 수 있습니다. 법률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판은 판사가 하지 군중이 하지 않습니다. 이 재판을 군중이 했던 사례가 인민재판입니다. 자 이 사실을 이해했다면 현재 한국정치, 이념상황에 대입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민주라는 가치를 자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우기고 있는 현 정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반자유, 반민주 진영은 어디든 민주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군중을 선동하여 질서를 무너뜨리고 소수를 탄압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언제든 상황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민주적 절차’ 즉, 다수결의 절차까지도 지상최고의 가치인 양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업경영, 재판부같이 전문성, 지성, 빠른 의사결정이 더욱 중시되는 영역까지 민주적 절차가 지상 최대의 선이라 우기며, 의사결정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닥치는 대로 ‘민주’라는 이름을 마구 들이대어 중우정치, 포퓰리즘, 인민재판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행위야말로 겉으로는 민주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반민주적이며 반자유, 반법치적 행태인 것입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성보수진영 내에서는 좌익진영의 포퓰리즘, 중우정치에 대한 트라우마가 큰 상황이고 반민주, 반자유진영이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헌법적 가치인 ‘민주주의’까지 외면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자유민주시민과 자유민주진영은 민주주의와 민주적절차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작용, 이렇게 세 가지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전문성이나 빠른 의사결정보다는 다수가 만족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할 경우 ‘민주적 절차’를 수단적으로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대한민국이 이씨 조선, 김씨 조선과 같이 다시는 특정 가문,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거나 신분제 노예제 혹은 그와 비슷한 형태의 어떤 사악한 제도가 부활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작용은 자유와 공화의 이름으로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역행할 수 없는 시대적 가치이자 헌법적 가치입니다. 기성보수진영이 민주주의를 포용하지 않는 이상 더욱 고립되고 유권자들로부터 외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유진영이라고 불러도 충분히 진영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민주’라는 가치를 넣어 우리의 이름을 ‘자유민주진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자유민주진영이 민주라는 이름을 참칭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민주라는 가치를 되찾아 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자유민주진영의 사명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의 사람들은 전근대사회에서 고려백성, 조선백성으로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황국신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60대 이상인 산업화 1세대는 반공보수로 살았습니다. 물론 반공으로 대한민국을 지켜 낸 사실은 지극히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시민이 아니라 반공보수였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산업화 된 조국은 물려주셨지만 다음세대에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강제적이고 권위적 반공주의에 염증을 느껴 공산주의, 주체사상, 변질된 민족주의 등을 선별하지 못하고 모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젊은 세대 또한 윗세대 어디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기 어렵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의 망령에 따라 반으로 갈라져 이념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을 똑같이 계승, 반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이념구도는 양자 패러다임이 아니라 3자 패러다임으로 교체됩니다.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대립이 아니라 제 1세력인 집권여당과 반민주/반자유진영, 제 2세력인 기성보수진영,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제 3세력인 자유민주진영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제관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현재 세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진영과 전세계 자유민주진영의 새로운 냉전을 겪고 있습니다. 만약 역사의 물줄기가 역행하지 않는다면 국내의 반민주/반자유진영은 중국의 몰락과 동시에 역사의 심판을 받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기성보수진영은 일부는 자유민주진영으로 발전할 것이고 나머지는 자연도태 될 것입니다. 이후 자유민주진영만이 이 땅에 남아 헌법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틀을 지키는 선 안에서 자유를 중시하는 세력, 민주를 중시하는 세력, 공화를 중시하는 세력 크게 셋으로 나뉘어 발전적 상호 견제를 통해 역사를 견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물줄기가 역행하여 중국과 전체주의 진영이 전세계 자유진영과의 체제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반자유/반민주진영의 완전한 독재체제로 이행하게 되고 이후 남조선은 절망과 비명이 가득한 지옥이 될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람들
    • 칼럼
    2020-06-23
  • 가십Gossip]청사내 흡연? 몰상식한 의원에 대한 ‘분노게이지’와 ‘속앓이’
      [아이디위클리]성남시의회 청사 내에서 담배 피우는 몰상식한 의원들에 대한 분노게이지가 폭발 직전. 10일 열린 제254회 제1차 정례회 예결특위에서 안광림 의원(초선, 미래통합당)은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며, 의원실 등에서 흡연하는 일부 의원들의 안하무인격 행태에 철퇴를 주문. 안 의원은 “여러 의원들이 요청을 해 책임지고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의원들의 속앓이를 대변. 의원들이 고통을 받으며 더운데도 창문을 못 열고, 같이 피우는 민원인들까지도 놀란다고 전해. 민원인 - “의원님~ 여기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데야??” (갸우뚱) 안 의원은 “성남시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청사)”이라며 이참에 뿌리 뽑을 기세로 의회사무국장을 압박. 하지만, “의회청사에서 흡연은 하루 이틀 지적받은 것도 아닌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번에도 잠깐 안 피우는 척하다 그냥 넘어 갈 것”이라는 반응이 대세. 그럼에도 의원들의 분노게이지와 속앓이 수준을 봤을 때, 이제는 “몰상식한 의원들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의원실을 코로나19 자가격리시설로 쓰자”는 공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평가.
    • 주요뉴스
    • 행정
    2020-06-12
  • 이제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이디위클리]코로나19 쓰나미가 지구 전체를 휩쓸고 있다. 정치지도자들 중 몇 사람이 코로나의 위력을 ‘그냥 감기’로 무시하려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보리스 존슨 총리는 중환자실에 치료중이고, 트럼프의 뜨악한 표정에서 읽혀지는 실패와 당혹감,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아베총리까지 긴급조치를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선언하면서 모두 고개를 떨궜다. 그놈 참 ‘센 놈’ 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주가가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모양인데, 정상으로 복귀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4.7일자)에서 중요한 것은 확진자 통계가 아니라, 질병이 정상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을 제시, 아직도 정상복귀로의 길이 멀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교수의 말처럼 “이번 싸움은 단거리 육상이 아니고 마라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상복귀의 의미가 이 시국에서는 달라 보인다. 단순한 복귀는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한 복귀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 국면에서 미국과 서구에서 보여준 ‘홉스의 늑대’들에 기반한 철저한 개인주의는 사회적 책임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서구근대철학이 내세웠던 이성적 개별주체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freedom for all)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라는 신화. 이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국에서 사회적 개인적 이성이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했던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았는가? 이런 철학과 사회시스템, 경제구조, 문화를 그냥 놔둔 채로의  단순한 복귀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부터의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과학적 합리적 근거는? 이 어마어마한 담론에 거기에다 앞으로 벌어질 미지의 사실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란 무의미한 것이고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키신저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내 생각에 그도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엄청난 담론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황당할 수 있는 얘기를 내놓는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환경교육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에 의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의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다. 믿어지시는가? 기후변화와 신종바이러스의 상관관계 메커니즘은 3가지 모델이 대표적이다. 먼저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이동이다. 예컨대 박쥐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인간과 생활영역이 겹치게 된다. 박쥐는 생리적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가진다. 과학자들은 박쥐의 몸속에 137여 종의 바이러스가 있고 그 중 61종은 인수공통바이러스로 쉽게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다. 사스나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도 박쥐를 통한 전염이 의심되고 있다. 두 번째 모델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모기 같은 절지동물의 확산과 관련된다. 지카바이러스 등의 매개체는 모기인데 온난화로 서식지가 확산되면서 2050년까지 5억 명, 2080년까지 10억 명이 모기 매개 바이러스에 노출될 것으로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발표했단다. 세 번째는 빙하가 녹으면서 갇혀있던 바이러스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델이다. 2002년 북대서양에서 바다표범을 집단 폐사시킨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소위 ‘좀비 바이러스’ 모델인 셈이다. 과학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기후위기 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후변화문제를 세계가 관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러스와의 공존.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철학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현대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근대철학의 기둥인 개인주체(공동체주체가 아니라)를 전제하고 있다. 이 주체는 모든 개별들이 스스로의 임무를 완성하면 사회는 조화롭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개별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부로부터의 자유!’, 사회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거기에 책임은 매우 옅다.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러면서도 환자의 치료나 관리에서 난맥상을 보인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의료보험체계와 공공의료의 후진성, 빈부격차와 치료격차가 그대로 이어진 사회구조(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감염병 관리를 위한 사회적 대응능력의 취약(감염병은 사회적 질병이다. 우리는 코로나19에서 이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감염병 대응방식마저 시장을 들이대는 천박한 경제구조 등등. 나는 미국의 이번 위기의 바탕에 이러한 철학의 위기, 시스템의 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결국은 바이러스와 공존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질병으로서의 감염병과 공존하려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정보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져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사회적 관리가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원칙적으로 코로나19의 생존능력은 14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계산이 선다. 그렇게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인권의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중국이 가장 비슷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방향은 그곳을 향해야 한다. 비전을 공유하고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신뢰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단 올림픽문제와 엮이면서 풀기 힘든 함수관계로 문제가 꼬이기 시작 했다.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해서 매일 아사히와 야후 재팬의 뉴스를 살펴보았다. 검색창에 코로나바이러스+통계를 입력하면 일본질본의 공식 통계를 비롯하여 3개 정도의 뉴스가 나오고 나머지 거의 모두는 외국 현황과 관련된 것들만 뜬다. 검사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는 외국 미디어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했다. 검사를 매우 선별적으로(연속 4일 이상 37.5도 이상 유지, 정황증거가 확실, 의사의 요청이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의료체계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라고 했다.   정부의 전략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모든 통계보다 국민을 반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희극배우 시무라 켄(志村けん)이 코로나로 죽었다. 이제 코로나19는 통계의 문제에서 현실의 문제로 전회된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3인조 개그그룹의 구로자와 카즈코(黒沢かずこ)라는 배우가 감염되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극작가)가 검사를 받아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그리고 결국 검사를 받고 양성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투고한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통계나 정부발표에 대한 신뢰에 파열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고 싶은 얘기만 듣는 현상을 ‘확증편향’이라 하고 자신의 신념의 스키마에 끼어 넣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편향동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확증편향이 우리사회에서도 매우 심해져서 예컨대 좌파는 다음을, 우파는 네이버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진영논리’라고 돌려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당과 야당 지지그룹의 영향력이 비슷해서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엔 야당의 진영논리 자체가 매우 취약해서 일국의 진영논리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뢰의 문제는 편향을 넘어서야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핵심엔 잘 준비된 방역기반시설과 메르스에서 학습한 노하우와 훈련,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대응이 절묘하게 맞아 돌아갔다는 것일 게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 대응에 작동할 새로운 기반과 시스템과 철학에 한국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잘 정리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열린 비전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2020.04 하동근 판교환경생태학습원장(사)환경교육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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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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