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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년 국회의원 2014년 신년사
    청마의 해,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한 새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헌신할 수 있었고,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저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점 잊지 않고 더욱 분발 정진하겠습니다.   시민여러분!   차가운 겨울 날씨만큼이나 시민의 삶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민생은 고달프고 정치는 퇴행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어야만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 버렸고,  영화 ‘변호인’을 보기 위한 끝없는 행렬은 실종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묵언의 경고처럼 보입니다.       매우 추운 겨울입니다만, 반드시 봄은 옵니다.  추운 겨울일수록 오는 봄은 더욱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희망을 갖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다면, 현재에 충실하고 내일을 성심껏 준비한다면, 밝은 승리의 미래가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특히 올해 6월은 지방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거꾸로 가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를 다시 세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민 참여와 투명 행정, 더 많은 복지와 더 좋은 교육 실현의 장으로 지방자치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 민주당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기도와 성남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길에 함께 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민여러분!   성남시를 ‘교육이 강한 도시’, ‘이사오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성남시와 많은 협의 끝에 혁신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성남 공교육에 활기를 불어넣을 계획을 착실히 실행했습니다.    지난 12월 성남시의회에서 172여억원의 ‘성남형 교육지원 사업’ 예산이 통과되면서, 이제 아이들에 대한 교육 투자로 ‘이사오고 싶은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남시의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당 판교의 벤처 IT 단지 내실화로 미래형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을 한 축으로 하고, 사회적 기업을 통한 서민친화형 일자리 창출 사업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성남시를  성장하는 경제 도시로 만들기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지역구인 성남 수정구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도 적극 추진했습니다. 위례 신도시, 고등동 보금자리, 시립병원 착공, 보건소 신축, 맞춤형 주거환경 개선 등의 사업 등으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수정구가 바뀌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아프리카 속담에 ‘먼길을 가려면 함께 가면된다’고 합니다. 말의 해를 맞아 힘찬 전진의 기상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저 역시 여러분과 함께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는 청마처럼 역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갑오년 새해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항상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14년 1월 1일             힘찬 전진의 한해를 준비하며                국회의원 김태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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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31
  • 신영수 수정당협위원장 2014년 신년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100만 성남시민 여러분! 희망찬 갑오년(甲午年) 새해가 밝았습니다.시민 여러분의 가정이 더욱 편안하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지난 한 해 새누리당에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한 해는 경기침체와 사회적 갈등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성남시는 민선5기 들어 전임 민선4기의 시정을 비난하기 위해 재정자립도가 기초자치단체(시ㆍ군)에서 평균 1위였음에도 일방적으로 ‘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결과, 수정ㆍ중원(본시가지)의 재개발사업은 현재까지 답보상태에 있으며, 이주단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는 등 세입자를 비롯한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 놓고 있습니다. 시민 자존심 상실도 크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야권연대에 따른 특혜제공 의혹, 성남시의회 본회의 보이콧 금지 등 무리한 송사 갈등, 비판적인 언론사와 대립, 광역지자체 평균을 뛰어넘는 소송 남발, 수행비서의 폭행 문제 그리고 공직자의 특정정당 당원 모집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성남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외부(민원인), 내부(공무원)를 대상으로 최근 1년간 부패경험과 부패인식을 설문조사해 발표한 ‘2013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에서 전국 227개 기초자치단체 중 164위를 기록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내부평가가 4등급으로 공무원들이 느끼는 부패가 민원인들이 느끼는 부패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성남시 재무상황은 민선5기 들어 더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부채는 민선4기 말 558억원에서 2012년 현재 210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채무는 민선4기 말 14억원에서 2012년 현재 1193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성남시는 빚을 다 갚았다고 시민의 눈을 가리고 있고, 구체적인 수립방안 없이 리모델링 기금 1조원 조성 발표 등 선거를 의식해 시민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성남시는 공무원들을 반강제적으로 SNS 홍보요원원 하는 등 치적 홍보를 위한 인기몰이 영합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존경하는 성남시민 여러분!   우리 성남시는 이제 인구 100만, 연간 예산 2조4000억원의 규모에 걸맞게 성남시민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도시로 변모해야 합니다.   우선, 현재의 본시가지는 국가의 책임이 큰 만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도시개발사업에 국가예산이 적극 지원되도록 해야 하고, 가옥주와 세입자의 재정착율을 높여 기존의 문화와 삶을 보호할 뿐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리모델링사업은 단순한 재산증식이 아니라 주민의사를 반영하여 증축과 대수선을 구분하거나 동시에 활용하면서 행ㆍ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 소통하고 활기찬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성남시는 서울의 위성도시가 아니라 수도권 동남부지역의 핵심도시로서 문화적, 경제적으로 정체성을 가진 도시로 발전해야 합니다.   특히 그동안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는 성남시를 사회통합의 상징적 도시로 재탄생시킴으로서, 성남시민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성남시만의 창조적 도시문화를 창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남시민 여러분!   현재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과거와 다른 국민적 욕구가 등장하는 등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성남시 역시 독특한 문화와 경제규모 및 사회통합 기능을 가진 자족도시로 창출해야만 성남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시민들이 편안하고 활력 넘치는 성남시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도 성남시 발전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갑오년(甲午年) 새해, 새아침에 다시 한번 시민 여러분의 건강과 뜻하시는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4. 1.             신  영 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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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31
  •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 ⑩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 ⑩한국전(戰)… 잊혀진 전쟁에서의 블루스 ②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한국전을 노래한 블루스 곡의 시기를 살펴보면 유엔군의 참전이 시작된 1950~1951년, 정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1953년, 그리고 휴전 이후로 나눠 볼 수 있다.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소개한 1950년~1951년 암담한 한국전쟁의 실상을 블루스로 노래한 곡들에 대해 계속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한국전에서 전사했을 친구를 그리며 부르는 2곡의 블루스지난 호 마지막에 언급했던 L.B. Lawson의 Missing In Action의 가사이다.   Well, they said I was missing in action, they thought that I was dead.But the good lord then he come to me, said : “Son, don't worry your head.”Oh, yeah, I know the lord was my side….I know you're way over here in KOREA, you know you're a long old way from home….   사람들은 내가 전투 중에 실종되었다고 말했다. 전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신은 내편이었고 나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국에 살아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Got My Call Card에서 보면, 원자폭탄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마 그 당시 중공군에 대한 공습으로 원폭투하를 고려했던 맥아더 사령부의 요청으로 인해 이미 1950년 말에 트루먼이 한 말의 내용 중에 원폭이 언급되어서, 아마 Lawson이 이미 한국전에 원자폭탄이 사용되어 그로 인해 친구가 죽었을 거라 믿는 듯한 의미를 지닌 블루스이다.가사를 보자면,   You know I had a friend once, across the water, he was so dear to me.Yes, know that atom bomb done exploded, you know he done disappeared, don’t you see?Oh, year, they tell me, that we’ll meet again.Yes, they tell me over in KOREA, said they done lost a many men.   이곡은 Lawson의 목소리와 James Scott Jr. 기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친구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할까?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전쟁의 비극을 잘 나타내어 준 멋진 연주라고 할 수 있고, 목소리 또한 슬픔을 가득 머금고 읊조리듯 소리를 토해 낸다.물론, 누구인지 모르지만 거의 장송곡 수준의 드럼을 연주 해주는데 이 연주가 압권이다.Lawson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고 1951년에 멤피스의 선(Sun)레이블에서 모두 4곡을 녹음했고, 그 이후에는 일체의 녹음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그 유명한 John Lee Hooker와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다고 알려진 James Scott Jr.은 그래도 꾸준하게 83년에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연주를 했었다고 한다.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지쳐가는 병사들의 노래 이 당시, 미국 내에서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로 인한 인적손실로 인해 이미 트루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었던 시기인지라 트루먼의 정치적 결단으로 맥아더가 물러나게 되었던 때(1951년 4월)이다.이후에 나온 블루스는 1951년 9월에 녹음된 Lost In Korea가 있는데 홈리스 블루스 뮤지션인 Sherman “Blues” Johnson이 노래한 곡이다.가사는,   Baby, please, write me a letter, because I.m lost and all aloneWell, I have no one to love me and I’m a million miles aways from home.Well, my days, are miserable, baby, and my nights are lonesome and cold.When this war in Korea is over, I’ll be as happy as a two-years-old.World War Two was bad, but this is worst I’ve ever seen.Every time I think it’s over, I wake up and find It’s just a dream.   아마, 한쪽에서는 협상을 하고, 한쪽 에서는 치열한 전투를 하는 현실에서,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그런 마음과 집을 그리워하는 병사들의 심정을 제대로 표현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정말 악몽과도 같은 전쟁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음악적 표현 형식에 있어서, 포성과 여러 효과음을 적절히 살려서, 전쟁의 그 사실적 표현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기타를 맡은 J.V Turner를 포함하여 Clouds of Joy라는 팀이 맡았는데, 작렬하는 포연 속에서 쓰러져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듯한 Sherman “Blues” Johnson의 목소리와 J.V Turner 선생의 절묘한 비브라토가 살아 있는 기타가 전반적인 느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살아 생전 정규 음반은 한 장도 발매하지 못했던 Sherman “Blues” Johnson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다음 호에는 1951년도에 발매된 한국전쟁 관련 블루스 곡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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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6
  • 화초 키우기나 아이 키우기나
    화초 키우기나 아이 키우기나   글 김다나 [글 짓는 이]   한 해가 지납니다.이런저런 인연들이 한 켜씩 그 두께를 더해 갑니다.그 가운데 하나, 오래 전부터 함께했던 관음죽과의 인연을 얘기해 볼게요. 처음 저와 함께한 게 1988년 12월이었으니, 옴마야 사반세기(?)나 되었네요.한 삼십 센티미터 쯤 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쑥쑥 자라더니 언제부턴가는 새끼를 치더군요. 하여 이집 저집으로 많이 분양되어 갔습니다.그러고도 우리 집 베란다 푸름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이 아이들의 몫입니다. 터주 대감인 셈이지요.얘들은 해를 바꿔가며 붉은 수수를 닮은 꽃을 피워내기도 합니다.처음에 두 뿌리였는데, 한 뿌리는 아주 많은 새끼들을 남기고 재작년에 떠났고, 남은 한 뿌리는 많은 후손을 두고도 아직 건재하답니다. 올핸 열매까지 맺더군요. 첨 봤습니다.   얘들 키우는 게 그렇더군요.지나치게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 죽고, 나 몰라라 잊고 있으면 잎이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죽고….겨울이 다가오면 같은 베란다라도 거실 쪽 가까운 안쪽으로 옮겨 줘야 하고, 봄가을엔 바깥 창 가까이, 그리고 볕 뜨거운 여름엔 그 중간쯤에 자리를 잡아 줘야 하더란 말씀입니다.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자주 이 아이들과 얘길 합니다.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외에도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기분일까요? 제가 좋을 때는 얘들도 싱싱 푸릇푸릇하고, 아플 때면 얘들도 축축 늘어진 모양샙니다.간혹 가지치기를 해 줄 때면 꼭 먼저 말을 겁니다.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그러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여러 번 읽게 되었습니다.그렇지만 그 분처럼 얘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진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끼고 살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아이 키우는 것과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은 아이 키울 때나 화초 키울 때나 똑같이 필요하다는…. 그렇다면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는 어디일까?제 경험으로는 말 한 마디만 덜 하는 거였습니다.말을 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보다, 말을 해서 후회할 때가 훨씬 많았거든요, 저는.   ‘선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자꾸만 그 선을 넘어가는 통에 관심이 간섭으로 여겨지게 되는구나.’‘말도 거기까지만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꼭 한 마디 더하는 통에 에이…’‘더러는 무관심이 관심보다 좋은 약이 될 때도 있는데….’‘관음죽은 계속 끼고 살 테지만, 대체 아이는 언제까지 끼고 살 건가?’   단언컨대, 엄마와 아이는 한 손씩만 잡고 있는 게 최선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두 사람 모두 한 손만 잡고 남은 한 손으로 딴 것도 만지고 딴청도 부리고 해야 한다는 거죠.아이뿐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들도 자아를 되찾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올인 하고 나서는 훗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뭐 이런 얘기 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얘깁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엄마나 아이나 서로 한 손씩만 잡고 걸어보세요.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풀도 뜯어보시고, 나비도 건드려 보시고, 엄지와 검지로 아랫입술 모아 휘파람도 불어보시면서 자유를 느껴 보세요. 그러다 아이가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질 양이면 휘익 낚아채 주시고, 길 가운데 물웅덩이가 있어 텀벙 할 것 같으면 얼른 팔을 쭈욱 뻗어 밀어 주세요. 그러다가 지나치게 멀리 가고 싶어 잡은 손을 뺄라 치면 얼른 아이 쪽으로 돌아서 두 팔로 꼬옥 안아주시고요.아이도 다른 한 손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하세요.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근데 그거 다 알면 무슨 재미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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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6
  • 최지용의 견공담론(犬公談論) ②
    최지용의 견공담론(犬公談論) ②크리스마스와 루돌프   애견인구 1천만 시대이다. 대한민국 인구 대비 4.8명에 1마리 꼴이라는 단순계산이 나온다. ‘가족’, ‘우리집 아이’라고까지 불리는 오늘날의 견공들, 과연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인간과 가장 많은 교감을 하며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 대해 제대로 한번 알아보자. 알고 함께하는 공존은 더욱 아름답다. 기존에 개에 대해 갖고 있던 섣부른 상식이나 지식은 잠시 내려놓고 ‘개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남자, 최지용의 솔직하고 재미있는 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글 최지용(베프월드 대표 031-932-4355)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원래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그러니까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런데 불교, 이슬람 등 기타종교를 믿거나 아니면 무신론자까지도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의 다른 기념일처럼 부담 없이 즐기는 전 세계인들의 축제일이 된지 오래다.이 크리스마스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송으로 넘쳐날 것이고, 종교에 관련 없이 누구나 왠지 기분이 좋고, 눈이라도 펑펑 와주면 정말 축복을 받을 것 같은 날이 된다. 가난한 연인들이 거리를 방황하다 밤이 늦어 숙박업소를 찾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날만 일반 객실은 없어지고 특실만 남는 불가사의를 경험하게 되는 날이고 상대적 외로움에 몸을 떠는 솔로들도 크리스마스 특집을 밤새 볼 수 있어 덜 외로운 날이다.   아기예수를 만나러 동방박사와 동행한 세 마리의 개아기예수가 예루살렘의 마구간에서 태어날 때 동방박사 세 명이 찾아간 것은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 동방박사 세 명이 개 세 마리와 함께 간 것을 알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동방박사는 말 그대로 동쪽에 사는 현인이라는 뜻인데 그 당시 네비게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밝게 빛나는 하늘의 별빛을 따라 가기가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개를 길잡이로 데리고 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이고, 좌우지간 유럽에서 이어져 오는 전설에 따르면 동방박사 세명은 ‘루비노, 멜람포, 큐빌론’의 이름을 지닌 세 마리의 개들과 함께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개들의 이름의 끝이 O, N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모두 수컷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암컷이라면 ‘루비나, 멜람파, 큐빌라’이었을 것이다.그러니까 남자 아기 예수를 만나러 가기 때문에 개들도 수컷이 따라 간 것이라는 말이 될 것이고, 동쪽에서 똑똑한 사람 세 명이, 수컷 개들을 데리고 갔다라는 것을 “해가 떠오르는 희망이 있는 곳에서 현인 세 명 - 그리스도교에서는 항상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를 중요하게 해석한다. - 이 인간과 가장 친근한 존재, 세 마리와 함께 인류의 구세주를 맞이하러 왔다.”라고 풀이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해석하면 어떨까?어찌됐든 오늘날에 위 개들의 이름을 부여받은 개들은 축복받은 개란다. 메리나 쫑이나. 사랑받고 사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루돌프 코가 빨간 이유   또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의 영원한 스타 산타클로스! 선물을 마구 주는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전부터 선물을 받길 원하는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는데 혈안이 된 부모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이용당하는 산타클로스가 있다. 이 산타 할아버지는 매번 사슴인지, 순록인지가 끄는 썰매를 타고 오시는데 썰매 끄는 애들 중 리더는 코가 빠알간 ‘루돌프’라는 놈이다. 다른 사슴들은 코가 새까만데 왜 유독 루돌프코만 빨간색일까? 전문가적인 견지에서 보면 ‘윈터 노우즈(Winter nose)’라고 단언 할 수 있다.보통의 경우 동물들의 확연하게 보이는 털의 색을 “색조”라고 하며, 그러한 색조를 만들어내는 원색을 “색소”라고 한다. 이렇게 몸에 숨어서 겉의 색을 결정짓는 색소의 정도와 유무를 아는 방법이 바로, 코, 눈동자, 입술, 항문, 발바닥의 패드 등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 구입 시 건강상태 확인법과 더불어 좋은 유전자를 지녔는지를 보려면 까만 코, 까만 눈, 까만 입술 등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까만 코를 지닌 개들도 겨울이 되어서 일조량이 부족하게 되면 코가 색소를 잃어버려 겨울동안 일시적으로 빨개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윈터 노즈"라고 한다.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의 루돌프는 멜라닌 색소가 없어져서 코가 빨개진 것이지, 사슴이 무슨 전기뱀장어도 아니고, 코에서 빛이 나겠는가? 어쨌든 징글벨이 울리든, 울리지 않든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산타가 방문하는 가정의 부모님들은 주머니가 얇아질 것이고, 2013년은 또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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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6
  • 주제로 읽는 책 읽기
    “순례”   우리에게 ‘순례’라는 말은 꽤 익숙하다. 경건한 신앙의 의미에서든 상업화한 여행상품으로서든 성지순례 관련한 내용을 자주 접하게 된다. 굳이 종교 성지와 연관되지 않더라도 뭔가 의미심장한 여정을 말할 때에 순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의 과정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에 순례를 비유하기도 한다.이렇듯 순례라는 말이 일반화한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래도 순례라는 말은 종교에서 연원한 의미가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순례에 관해 생각해보면서 순례의 종교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대표적인 내용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첫째, 순례의 종교적 의미는 ‘공간의 성화(聖化)’라는 개념과 연관된다. 이 내용에 관해서는 특히 현대의 대표적 종교학자 중 한 사람인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가 잘 설명해주었다. 엘리아데는 인간의 종교경험이 지니는 핵심적 의미와 구조를 성현(聖顯, Hierophany) 개념으로 설명한다. 속(俗)의 차원에 속한 인간이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것은 성스러움 스스로가 속의 차원 안으로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성현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평면적이던 속의 차원에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시간과 공간과 연관하여 분명한 인간의 종교경험으로 이어진다. 성스러움을 체험한 시간과 공간은 주변의 속과는 다른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으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른바 성지(聖地)는 이렇게 성화된 공간의 대표적인 예이다. 가장 근원적인 성현 현상이 일어난 공간이 성지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둘째, 순례에서 추구하는 것은 ‘근원적 의미로 회귀(回歸)’이다. 종교적 인간이 성지를 순례하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성스러운 공간에 깃들여 있는 근원적 성현의 의미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종교적 인간은 원초적 성현 체험 이후 속의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성현 체험을 반복하려는 열망을 지닌다. 원초적 성현 체험 안에서 인간과 우주의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성현 체험은 종교의례와 기도 등의 일상적 종교 실천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특별히 성지 순례는 근원적 성스러움의 공간을 직접 찾아가는 행위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셋째, 순례는 ‘신앙’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낸다. ‘신앙’의 의미에 관해서는 또 한 사람의 저명한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2000)가 잘 설명해주었다. 스미스는 신앙의 의미를 ‘초월적 존재 혹은 진리를 향한 전인격적 응답[헌신]’으로 설명한다. 마치 깜깜한 밤바다에서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던 배가 마땅히 도달해야 할 항구의 등대 빛을 확인하고 그 이후로는 오로지 등대를 향해 배의 방향을 설정해놓은 상태와 같다. 여기에서 신앙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방향 전환’이다. 등대 빛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놓여 있던 배의 방향타를 진정한 등대를 향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은 삶의 전환을 의미한다. 초월적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존재로 뒤바뀜을 의미한다. 신앙의 다른 하나 요소는 ‘끊임없는 진행’이다. 등대 빛을 발견하고 등대를 향해 방향을 전환했다 해도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서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등대에 가까이 도달하기 위한 끊임없는 항해를 진행해야 한다. 초월적 진리를 발견했다 해도 그것을 그저 머리로 알고 말로만 되뇌는데 그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의 의미일 수 없다. 신앙은 실제로 나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가 끊임없이 초월적 진리에 가까워지려는 진행형의 의미를 지닌다. 성스러운 의미가 깃들여 있는 성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순례는 초월적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라는 신앙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준다.   이상에서 정리한 순례의 종교적 의미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던 개인적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려한다. 십여 년 전 미국의 어느 대학에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던 때의 일이다. 그곳 연구소에서 인도에서 온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무슬림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슬람에서는 일 년에 한번 대대적인 성지순례 행사가 이루어진다. 이슬람력으로 12월에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성지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내가 만난 그 인도 친구도 마침 그 해의 순례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새삼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가 순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 년 동안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그렇게 돈을 조금씩 모아야했을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순례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순례의 종교적 의미가 일차적으로는 성스러운 공간에 깃들여 있는 근원적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순례의 의미를 충실히 실현하는 것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함 자체보다는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월적 진리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려는 신앙의 의미가 순례의 과정 전체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인도 친구가 일 년 동안 한푼 두푼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는 순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요즘 일부 성지순례 여행이 그저 장소에만 초점을 맞춘 관광 여행과 다를 바 없어진 것에 비추어 생각해볼 문제이다.   순례의 종교적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다음 두 권을 추천한다.『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순례』, 김승혜, 바오로딸, 2004년『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 : 세계 종교문화 기행』, 정진홍, 집문당,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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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6
  •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⑪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⑪인도의 무갈제국   글 정상호(경제학박사)   지난 에피소드에서는 역사적 서술을 잠시 벗어나 이슬람 철학과 수피전통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호부터는 중세 후기로 접어들던 14세기 전후에, 발칸반도에서 중앙아시아 옥서스강(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걸쳐 흐르는 아무다르야)까지 그리고 모로코에서 인도 및 방글라데시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3~4세기 동안(오토만제국의 경우는 20세기 초까지 6세기 동안) 거느렸던 3개 이슬람 제국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화약의 제국터키를 중심으로 한 오토만 제국(1299-1923), 오늘날의 이란에 세워졌던 사파비드 제국(1501-1736), 인도 및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거의 통치했던 무갈제국(1526-1857)은 보통 싸잡아서 ‘화약의 제국’이라고 불려왔다. 그 이유는 이들 3개 제국이 포병대를 전투전략의 핵심으로 삼은 최초의 왕조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포병대 활용이 이들이 최초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화약의 제국이란 표현은 ‘화약의 시대’에 세워진 제국‘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이들 세 제국의 공통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 세 제국은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지배층들은 모두 투르크-페르샤계 민족이었고 원래 해당지역에 거주하던 토착민족을 외래 민족들이 들어와 지배하는 형태를 띠었다. 이들은 모두 농업 중심국이었으나 사파비드는 국고 수입을 실크 판매에 거의 의존했고 오토만과 무갈은 건조지대에서 출발하여 농토가 비옥한 지역을 차츰 정복하여 나중에는 농업 및 수공업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또 이들은 모두 강대국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었으나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결국은 18세기 이후 유럽 열강들의 침탈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각 제국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더 자세히 언급이 되겠지만 지도자들이 근대화 개혁을 단순히 군사력을 강화하는 정도로만 이해하여 유럽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군사조직을 개편하는데 머물렀을 뿐, 보다 근본적인 정치·사회 개혁에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무갈제국의 탄생과 전성기‘무갈’이란 아랍어로 몽골이라는 뜻으로 이는 무갈제국이 티무르의 후손이 세운 왕조이기 때문이다. 티무르는 정확히 말하면 투르크계 지배자였지만 자신의 통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징기스칸의 후예임을 내세웠기 때문에 그 후손이 건립한 왕조에 무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또 무갈왕조는 1526년 중앙 아시아 출신 바부르(1526-30)에 의해 창건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3대왕인 아크바르(1565-1605) 재위 시절에 국가가 정비되고 제국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게 된다.바부르의 아들 후마윤(1530-39; 1555-56)은 아프가니스탄의 패쉬툰 왕조에 패해 영토를 거의 빼앗기다시피 했으나 이후 실지(失地)를 회복하고 자신의 왕권도 되찾을 수 있었다. 아크바르와 함께 5대 샤자한(1628-58) 재위 시기는 무갈제국의 전성기로 영토가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고 통치 인구도 1억 5천(당시 세계 인구의 1/4)에 달했다. 샤자한 시기에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타지마할’로서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쉬주(州) 아그라에 위치한 이 영묘(靈廟)는 지금도 세계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아크바르는 40년에 걸친 통치 기간 동안에 비무슬림 피지배층에 대해 매우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그는 ‘술흐이쿨’(peace to all)이라는 일종의 수피철학에 근거한 정책을 채택하여 힌두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제수이트교 등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견지했고 이와 관련하여 아크바르는 비무슬림들에게 부과하는 지즈야세금까지도 철폐하는 혁신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는 심지어 말년에 가서 이슬람과 힌두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까지 포괄하는 ‘딘이일라히’(religion of God)라는 이름의 포용적, 절충적 종교까지 창시했고 임종 직전에는 자신의 창시한 종교로 개종을 하려다가 궁중시종들의 만류로 결국 무슬림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샤자한의 아들인 6대 왕 오랑제브(1658-1707)는 이전 왕들의 종교적 관용정책을 과거로 되돌려 엄격한 수니 이슬람 원리에 근거한 정책을 강행했다. 그는 수많은 힌두사당을 파괴하고 음악연주까지 금지시켰는데 그래서 18세기 이후 무갈제국의 쇠퇴가 오랑제브의 종교정책과 이에 대한 힌두교도들의 저항 고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갈제국의 멸망과 그 유산 1707년 오랑제브 사망 이후 무갈제국은 후계자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는 혼돈 상태에 빠졌다. 무하마드샤(1719-1748)를 제외한 14명에 달하는 무갈왕들은 그 후 재위 기간을 10년도 못 채우고 폐위되거나 사망했다. 그래서 결국 18세기를 통틀어 무갈제국은 페르샤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인도 남부의 데칸평야까지도 힌두왕조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8세기 중반 이후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에 진출한 영국이 인도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고, 1857년 세포이 반란 이후 무갈왕조는 공식 폐지, 영국 정부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무갈제국이 멸망한 지 150년이 지났지만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과거 무갈제국 치하에서 단일 문명권이던 방글라데시(동파키스탄), 인도, 파키스탄(서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 제각기 찢겨 나가고 그들 중 일부 나라들은 서로 적대시 하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국 식민당국이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를  끊임없이 이간시켰고 1947년 인도 독립 당시에도 힌두교-이슬람 인구 밀집 지역을 기준으로 자의적인 국경선을 그음으로써 독립 직후 무지막지한 학살을 초래하여 양자 간에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게 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아프가니스탄이 별도의 민족국가로 떨어져나간 근원은 18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은밀하게 벌어졌던 ‘그레이트 게임’ (Great Game)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두 열강의 합의 하에 아프가니스탄은 완충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동부는 파키스탄 서부와 구분하기 힘들고, 패쉬툰족 주민들은 국경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양쪽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오가고 있다. 그리고 헤랏을 중심으로 한 아프가니스탄 서부 지역은  이란과 거의 같은 문화권에 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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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6
  • 눈 내리는 밤에...
    한글꽃 피다 <눈 내리는 밤에...  >   고요한 밤거룩한 밤어둠에 묻힌 밤반짝이는 추리에 눈은 내리고   천지만물이 고요히 잠든 시간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움직임에음양오행의 윤회로 우주를 만들고 키워내는 시간   요란하지 않은 작은 움직임에도 소리없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 내고 기침소리 요란한 적막이 흐르는 하얀 밤이다.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산다는 것얼마나 아름답고 고운 삶인가.   아주 작은 떨림까지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살아가는 달팽이처럼멋을 알고 맛을 느끼며 천천히 여유롭게 가는 삶이여야 한다.   【物我一體(물아일체)】의 삶이다. 자연(物)과 내(我)가 하나(一體)가 되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인 것이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자연은 모든 걸 내어 주는데도 늘 그렇게 있어 귀한을 모르고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생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13년을 보내며 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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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9
  • 해 뜨는 순간에
    2014 신년축시 어둑한 길을 물어 새벽은 도착했다촘촘히 추운 집들 몇 년을 버텼느냐다 삭아 흙밥 되어도그리운 화석 한 점   살아 낸 그 역사는 고향이 되어 주고,살아 갈 고향 언덕 역사를 남겨준다떠돌던 별자리마다새 이름이 생겼다   물 위로 솟는 해도 땅 위로 솟는 해도해가 뜨는 순간의 기적을 보는 일은참으로 생각 할수록대단한 일 아니더냐!   세종이 처음 만든 조선의 달력으로온 누리 춘하추동 눈 비 바람 거느려라갑오년대왕이 타신푸른 말이 다시 오면,   님의 거처 행궁 있는 남한산성에 올라왕조가 번성했던 기억을 알고 있는숭렬전옛 길 물으며해맞이 하러 가자.   창창한 미래 앞에 해 돋는 성남, 판교아름다운 성남 예찬! 꿈의 도시 상징으로우리도 고삐를 당겨푸른 말을 타고 가자 한 춘 섭(시조시인, 성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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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6
  • 블루스… 그리고 대한민국(2)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 ⑧블루스… 그리고 대한민국(2)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한국전에 참여했던 블루스 뮤지션지난 호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블루스 곡들이 어떻게 탄생됐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블루스 뮤지션들에 대해 알아보자.   1. John Mayall  영국육군 소속으로 참전,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병참지원 후방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British Blues의 대가로 한국전에 참전하며 기타를 처음 만져봤다고 한다. 훗날 한국전을 기억하며 Back From Korea라는 노래를 작곡하고 Rose Brown & Jimmie Harris가 녹음하였다. 2. J.B. Hutto  블루스레이블 Delmark 소속으로 시카고 블루스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서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이다. 장기는 슬라이드 바를 이용한 셔플리듬을 환상적으로 연주하였다. 미국육군 수송병으로 참전하였다. 3. Johnny “Big Moose” Walker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피아노 블루스, 부기우기 뮤지션중 한명. 육군 소속의 연예사병으로, 서울의 미군 영내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고, 블루스레이블 Bluesway 소속으로 피아노 블루스 연주자이다. 4. Nat Foster  미 육군 540 수송대 소속으로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 블루스레이블 MGM 소속의 피아노와 베이스 연주자이자, 소울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계열의 뮤지션이다. 5. William “Soldier Boy” Huston  연예사병으로서 1941년부터 미군 소속으로 노래를 했으며, 정확한 참전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만든 몇 곡의 한국과 관련된 곡이 있다고 하나 발매되지 않았고, 안타깝게도 한국전에서 전사했다. 6. Alford “Chicago Pete” Harrell  1950년에 참전한 Chicago Pete로 알려져 있고, 올해 한국나이로 84세인데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시카고 블루스 뮤지션이다. 7. Sammy Lawhorn  시카고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미 해군 소속의 항공 촬영병으로 1953년 참전했는데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의가사 제대하였다고 전해진다. 8. Little Joe Blue  역시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한국전에는 1953년에 참전했고, 종전 후 1956년까지 국내에 머물렀으며, 텍사스 블루스의 대표주자 중 한명의 기타리스트인데 노래도 기타연주만큼이나 아주 수려하다. 9. Velba Lee “Little” Applewhite  1.4후퇴를 즈음하여 참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와 관련된 아주 자세한 정보는 없고, 다만 멤피스 블루스 맨으로서 주로 세션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10. J.D. Nicholson  1950년에 참전한 블루스 피아노 연주자로서 솔로앨범은 발표한 적이 없고 주로 유명 블루스 뮤지션들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다. 11. Rudy Ray Moore  이 뮤지션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었고, 다만 연예사병으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참전했으며 연주자로 알려져 있고 정확히 어떤 악기를 연주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2. Iverson “Louisiana Red” Minter  너무도 유명한 블루스 뮤지션 중 한명이다. 이런 뮤지션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미 공군소속으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참전했으며, 일반 사병으로 복무. Louisiana Red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고 Louisiana Blues의 대가이다.   이상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뮤지션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았고, 다음호에는 한국전을 노래한 블루스 곡을 소개한다.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참여예정 블루스뮤지션이 추천하는 블루스명반 밴드명  Gugun Power Trio 국적  Indonesia             연주스타일  Texas Blues, Blues-Rock         대표앨범 2005 - get the bug2006 - live at bintang bali2007 - turn it on2010 - gugun blues shelter2011 - solid ground   Websitehttp://blues-shelter.comhttps://www.facebook.com/pages/Gugun-Power-Triohttp://www.sputnikmusic.com/bands/Gugun-Power-Trio   Stevie Ray Vaughan & Double Trouble - Couldn't Stand The WeatherLike Jimi Hendrix, Vaughan worked magic with his guitar and turned audiences up high everywhere he went. He never forgot his blues roots, and this concert has the kind of variety that brings generations together. From Delta-flavored moans to hard Texas swing and powerful, rock-inspired anthems he covered a lot of territory. “Voodoo Chile” represents Hendrix, “Love Struck Baby” represents a swinging Texas affair, “Honey Bee” feels as if it came right out of Chicago, and “Tin Pan Alley,” also known as “Roughest Place in Town,” has roots along the Mississippi River, where the blues began. (설명이 필요 없는 작고한 텍사스 블루스 대가의 대표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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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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