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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는 앞으로 기억은 뒤로
    나이는 앞으로 기억은 뒤로   글 김다나 [동요작사가 / 글 짓는 이]     귀 밑 1cm로 자른 검은 색 단발머리에 검정 플레어스커트,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를 단 검정 상의, 허리를 꽉 졸라맨 버클 벨트. 이만하면 제 여고시절이 어느 때쯤이었는지 얼추 짐작이 가시죠?   풀 먹여 빳빳한 하얀 칼라 교복 학교 다녀와선 칼라 빨아 풀 먹여 다리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지금처럼 편리한 다림 풀이 시중에 나와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게 제법 큰일이었지요. 풀이 너무 세게 먹은 날엔 뒷목이 발개지고, 약하게 먹힌 날엔 여차하면 교문 앞에서 규율부에 걸리기도 했거든요.  그러던 중에 제가 다니던 여고가 머리형 자율화 시범학교로 선정되는 바람에 다른 여학교 학생들보다 몇 년 앞서 단발머리를 면하게 되었지요. 오늘은 그 얘기를 풀어보렵니다.   새 학년이 시작된 날, 강당에 나란히 서 있던 우리에게 내려진 교장선생님의 훈시. ‘이러 저러 해서 우리 학교가 시범학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요란 떨지 말라.’ 당연히 강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학생주임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님들께서 회초리를 두드리며 우리를 진정시키려 하셨지만, 말 그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일이었지요. 교실로 돌아와선 손으로 책상 치고 발 구르며 야단법석!   머리를 자르다? 머리카락을 자르다!그렇게 새 학년의 첫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뭐였을까요? 교복 벗어던지고 미장원을 향해 빛의 속도로~~~^^당시 유행하던 혜은이 헤어스타일로 잘라 달라 말하는데, 동네 미장원 아줌마, 기겁을 하시며 ‘너, 미쳤니? 학생이 어떻게 그런 머리를 해?’ 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키득대며 사연을 설명했지만, 여엉 못 믿는 눈치였지요. 해서 어떡합니까? 집에 전화해서 엄마와 통화하는데, 울 엄니, 내가 미장원 간다니까 단순히 단발머리 길이만 자르러 간줄 아셨지, 머리형 바꿀 줄은 모르셨지요. 아이쿠, 엄마한테 제대로 설명 안 한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외치며 전화에 대고 엄마께 통 사정을 하는데, 바늘 하나 들어갈 기미가 없더라고요. 해서 어쩝니까? 다시 돌아와 엄마께 자세히 설명했더니, 아, 이 양반, 절대 안 된답니다. 졸업할 때까지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시겠다니, 이 일을 어쩝니까요? 별 수 있습니까? 슬쩍 다시 나와 좀 젊은 미용사가 있는 다른 미용실로 갔지요.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머리를 맡겼더니, 두 말 없이 잘라주는 거예요. 물론 그 얼굴에 혜은이 헤어스타일 한다 해서 호박이 수박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간 후 어찌 되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우리가 자른 건 머리카락만이 아니었을 수도….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더했지요. 평소보다 일찍 등교해서 규율부 시선을 피하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초록은 동색이라고, 머리형 바꾼 친구들이 죄다 일찍 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 거예요. 신나는 마음에 머리형은 바꿨지만, 다들 새가슴이라 콩닥거리는 맘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던 거지요. 수업 시간 전에 우리를 본다고 다른 반에서까지 원정 와 구경을 하고…. 제 기억으론 우리 반에 일곱 명의 머리 자른 문제아(?)들이 있었습니다. 머리 자율화한다는 훈시를 들은 게 어젠데, 바로 오늘 아침 이렇게 변한 모습으로 왔다는 게 커다란 이슈가 되었고, 당장 문제아로 낙인 찍혀 버린 거지요. 그래도 저는  양반(?) 축에 속한 게, 파마에 염색까지 한 친구도 있었다는…. 당장에 우리 반은 문제아가 한 둘도 아닌 일곱이나 모여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모두가 도매금에 넘어가 그냥 문제반이 되어 버렸답니다. 우리 담임선생님,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지, 지금 생각해도 송구스럽습니다. 그로부터 차례차례 상담실로 불려가는 신세가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요. 하지만 우리의 기세에 힘을 얻은 많은 친구들이 커트 머리로 등교하는 바람에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우린 그랬습니다. ‘아니, 머리 맘대로 하라 할 땐 언제고 이렇게 문제아 취급을 하나?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 하이고 억울해라.’   당시 우리 반엔 졸업 후, 방송인이나 연예인이 된 친구들이 여럿 있었답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최모 양을 비롯하여 전직 아나운서 이모 양, 80년대 초 가수로 활동했던 함모 양, 영화배우 원모 양 등…. 그러고 보니 잠재된 끼가 넘치긴 넘치는 반이었네요. 그런데 사실 그때 우리가 잘랐던 것은, 그리고 자르고 싶었던 것은 머리카락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잘라내고 싶었던 그 무엇인가가 있었지요. 하나씩 혹은 둘 셋씩….   이십여 년 전, 모 광고대행사를 통해 세제광고를 하는 데 살짝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주부가 빨래하면서 지난 학창시절, 하얀 칼라를 빨던 때를 생각하며 이 세제를 사용하면 그만큼 하얗게 된다는 풍으로 가면 어떨까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주르륵….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 얼추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들이 되었으니 그런 내용의 광고가 먹혀들 리는 없겠지요?   이상한 것이, 나이는 하나씩만 앞으로 나아가는데, 기억은 두 개씩 뒷걸음질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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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6
  • 정의(正義)와 ‘위대한 패배’
    정의(正義)와 ‘위대한 패배’     “정의는 승리한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이다. 거의 세뇌 당하듯 주입받은 느낌이다. 세뇌 당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정의는 승리한다.’고 믿는다.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 삶의 상황들이 끊임없이 나를 회의에 빠지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놓칠 수 없고 또 놓치고 싶지 않은 최후의 보루이다. 이 신념이 무너지는 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을 지탱할 정당성이 사라지는 것이다.물론 정의의 승리를 반드시 현세적 삶 안에서, 현세적 기준에서 규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정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후 세계에서의 보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를 초월적 진리의 범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정의는 초월적 진리처럼 현세적 가치와 질서를 넘어서는 것, 현세적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변화를 넘어서 그 의미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뜻이다.초월적 진리는 온전히 그에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로 가치와 의미를 존중받는다. 비록 현세적 방식과 기준에서 어긋나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드러나도 초월적 진리에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결코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초월적 진리가 아닌 현세적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바보’ 혹은 ‘패배자’라는 평가를 받을지라도, 초월적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변함없이 당당하고 의연하다. 초월적 진리는 현세적 가치를 넘어서는 무한하고 궁극적인 진리임을 믿기 때문이다.정의 역시 초월적 진리처럼 언제나 마땅히 그러해야만 하는 절대적 당위성을 지닌다.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이루어졌다. 동서양의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 정치철학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관한 다양한 의미가 논의되었다. 이 모든 논의를 고려한다면 ‘정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의가 확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절대 기준일 수 있을지 회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의는 초월적 진리와 같은 절대적 당위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는 판단이 정의에 관한 나의 생각의 출발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명확히 정의는 이런 것이라고 의미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정의가 절대적 당위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때의 모순과 문제를 더 심각하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분명 일시적 시대 상황이나 주도권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변형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이런 맥락에서 정의의 의미를 색다른 측면에서 성찰해볼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을유문화사, 2005년, 399쪽『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 임채영 지음, 경덕출판사, 2008년, 263쪽   사실 이 책들의 저작 의도는 현대 사회의 승자 독식주의 혹은 승자 만능 풍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승리를 꿈꾸며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들고...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늘 승리자이고…. 패자는 비록 능력이 승자에 뒤지지 않더라도 항상 뒷전이고…. 승리자가 야비한 술수를 써서 승리를 따냈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은 일시적이거나 ‘결국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고’라는 식의 결과론적 논리에 묻혀 버리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고, ‘승자는 좋은 사람, 패자는 나쁜 사람’의 전형적인 틀이 만들어진다.”이 책들은 승자 위주의 풍조에서 한동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패배자들에 주목한다. 골리앗, 롬멜, 체 게바라, 앨 고어, 정도전, 조광조, 광해군, 김종서, 사육신…. 그동안 우리에게 이들 이름보다, 이들을 물리치고 승리자가 된 상대방의 이름들이 더 주목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의 주역 자리도 물론 승리자의 몫이었다. 이 책들은 이들 패배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진면목을 회복시키고자 한다.그렇다면 이들이 비참한 낙오자에서 ‘위대한 패배자’로 재조명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정신과 실천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확고한 소신과 사상으로 무장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때로는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나 신념을 현실 세계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비록 그들이 그 때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나 주도권을 거머쥔 사람들에 의해서는 패배자로 내몰려야 했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의 기준에서는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초월적 진리 혹은 정의에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신념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다시 다잡을 수 있다. ‘위대한 패배자들’은 그들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에 따르는 삶을 산 사람들이다. 이들이 비록 그 때 당시 쓰라린 패배자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결국 오늘날 위대한 패배자로 그 가치와 의미를 존중받는다는 사실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분명히 입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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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6
  • 피아졸라 최대의 걸작 ‘리베르땅고(Libertango)’
    피아졸라 최대의 걸작 ‘리베르땅고(Libertango)’ 글 김정식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한 번만 들어도 인상에 남는 독특한 멜로디리베르땅고라는 곡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요요마(Yo-Yo Ma)의 멋진 첼로 선율로 시작 되는 리베르땅고를 들으면 ‘아! 이 곡!’하며 반가움을 떠올릴 것이다. 한 때는 거의 같은 시점에 서너 개의 CF에서 BG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유려하게 전개되는 멜로디와 단순하게 반복되는 반주는 마치 2개의 음악이 동시에 연주되고 있는 절묘함과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아스톨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는 클래식 탱고에서 이른바 ‘New Tango’ 시대를 열은 탱고의 거장이다. 발을 위한 탱고가 아니라 귀를 위한 탱고의 시대를 열은 것이다. 피아졸라는 1974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계의 보수적이고 진부한 분위기에서 심기일전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 현지의 음악인들과 함께 LP음반을 발표했는데 그 타이틀이 바로 리베르땅고다. 리베르땅고는 ‘자유’와 ‘땅고’의 합성어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다이나믹한 리듬감이 일품이다. 피아졸라는 이 리베르땅고를 통해 형식에 얽매인 클래식 탱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탱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리베르땅고에 가사가 붙어 재탄생하기도리베르땅고는 당연히 땅고 기악곡이다. 그런데 이 곡이 발표된 이후 그 영향력은 재즈나 팝 심지어는 클래식 음악계까지 미쳤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 1948~ )라는 여가수의 노래로 리베르땅고가 재탄생 된 것이다. 그 곡명은 I've seen that face before.그레이스 존스의 음악은 래게 스타일을 가미한 댄스뮤직인데 이 곡에선 미스터리한 가사에 유니크한 리듬이 붙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국내 어느 TV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테마 뮤직으로 쓰이며 더욱 많이 알려졌다.   이상해, 이전에 본 것 같은 얼굴인데,내 문 앞을 서성이는 그를 본 것 같아,먹이를 훔치려는 매처럼,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밤처럼,   이상해, 그는 나를 집까지 미행하고 있어, 발자국 소리는 자갈길에 울려 퍼지고,비 오는 밤, 하우스만의 번잡한 대로,바에서 흘러나오는 파리지앵의 음악.   바와 레스토랑에서의 댄스, 원하는 누구와도 집에 가기도, 이상한 그는 거기 혼자 서서,응시하는 눈초리는 나를 정말 소름 돋게 해.   덧붙이는 사족 같은 이야기Piazzolla의 현지 발음은 ‘피아졸라’가 아니라 ‘피아솔라’다. 언제부터인가 매스컴에서부터 ‘피아졸라’로 불리우기 시작하더니 이젠 굳어져버려 나도 그 호칭을 따르고 있다. Libertango는 ‘리베르탱고’가 아니라 ‘리베르땅고’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Tango를 하나의 단어로 볼 때 영어식으로 ‘탱고’라고 불리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나 스페인어로는 ‘땅고’가 바른 표현이다. Libertango는 스페인어의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니까 ‘리베르땅고’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제부터 ‘리베르땅고’를 들어보자.   피아졸라가 죽은 후 추모음반이 수백 종이 나와 있으며 대개 그 음반마다 리베르땅고는 실려 있는 편이지만 오리지널 버전은 빼놓지 말고 들어보는 것이 좋다. 또 가능하다면 클래식 탱고와 비교 감상하면서 피아졸라가 리베르땅고에서 탱고는 이렇게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라.   자메이카 태생의 그레이스 존스는 파리와 뉴욕에서 전문 모델로 활동 했으며 1981년에 발표한 I've seen that face before의 히트로 세계적으로 각광 받았다. 179cm의 큰 키에 강렬한 남성적 이미지의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007영화 뷰 투어 킬에서 본드 걸로 출연하기도 했다.   피아졸라는 한 때 클래식 탱고의 광팬들로부터 탱고를 버려놓는 사람이라고 살해 위협까지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tango nuevo'의 시대를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페라, 협주곡 등 클래식 작품도 다수 남겨놓고 있는데 또한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탱고를 연주하도록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지휘자 정명훈이 산타 체칠리아악단과 연주한 리베르땅고도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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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3
  • 알 안달루스의 역사적 의의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⑧알 안달루스의 역사적 의의   지난 번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모로코까지 휩쓸어버린 뒤 이번에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까지 차지하고 그로부터 50여년 만에 압둘라흐만이라는 구 우마야드 왕자가 알 안달루스 에미레이트를 세우는 역사까지 알아봤다. 오늘은 그렇게 세워진 알 안달루스가 이후 유럽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망한 지 500년도 넘는 지금에 와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자.   한 편의 서사시에 의해 싹트기 시작한 유럽 정체성샤를마뉴는 778년 군대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자라고사(피레네 산맥 남쪽 스페인 영토 내의 도시)를 공격했으나 성 함락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대신 부근 지역을 약탈하여 전리품을 수레에 가득 싣고 론세발레스 고개를 넘어 프랑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대열 후방에서 전리품 수송을 책임지던 샤를마뉴 휘하의 장수 롤랑드는 배후에서 공격해오는 바스크 주민들을 맞아 싸우다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이 일이 있은 후 200년이 넘은 후에 프랑스의 한 음유시인이 “Shanson de Roland”(Song of Roland)라는 장편서사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유럽 전역에 걸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다. 실제 역사상으로는 바스크 주민들에 의해 살해당한 롤랑드를 이 서사시에서는 알 안달루스를 통치하던 “사라센” 왕 마실레의 기습공격에 의해 죽는 것으로 바꿔치기 한다.   무려 4천 줄에 달하는 이 장편 시에 따르면 자신이 아끼던 장수를 잃은 샤를마뉴 대제는 마실레에 대해 보복을 가하고 결국 마실레를 도우러 온 바빌론의 에미르벨리간트(아마 아바시드 제국의 칼리프를 말하는 것 같다.)까지 무찌르는 대성과를 거두게 된다. 마실레의 아내 브라미몬드는 자라고사 성의 문을 열어젖히고 프랑크군 앞에 항복을 하는 것에 더해서 나중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른다.   스토리 자체는 황당무계한 면이 없지 않지만 무슬림 스페인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유럽인들이 그전까지 전혀 갖지 않았던 유럽 정체성(Europenses)을 갖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이 서사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어느 민족이든 서로 간에 차이를 극복하고 동질감을 갖게 하기 위해선 실제로든 가상이든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하겠다.   압달라흐만이 통치하던 8세기 중반 이후 코르도바는 당시 바그다드와 당나라의 창안(長安)과 맞먹는 세계 최고의 문화중심이었다. 이곳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해서를 집필하여 이름을 날린 철학자 겸 신학자 이븐 루시드(Averroes; 1126-98) 외에도 코르도바의 집현전 격인 “바이트 알히크마”의 마이모나디스(1135-1204) 같은 유태인 학자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 과학, 신학 서적들이 아랍어로 번역됐고 이는 나중에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유럽의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거대한 지식의 “컨베이어벨트”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스페인 실지 회복, 리콩퀘스타스페인의 기독교세력은 8세기 초 서북부 구석 아스투리아스 중심으로 미약한 세력을 유지하다가 844년 갈리시아 지역에 성 제임스(산티아고)가 기사복장을 하고 현신하여 그 후부터 이교도 축출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갈리시아에 성(聖)제임스가 나타난 지역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명명되고 성 제임스는 “산티아고 마타모로스”(무어족 킬러 성 제임스)라는 별명까지 붙게 된다. 지금도 카미노산티아고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중요한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스페인 기독교 세력이 1492년 무슬림들을 완전히 몰아낸 이후,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2세는 무슬림, 유태인 등 이교도들에 대해 가혹한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페인은 종교재판의 중심지가 될 정도로 기독교 근본주의 이념에 충실해서 과거 알 안달루스 시대의 종교적 관용의 분위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리콩퀘스타 완결이 있은 지 100년도 안 되어서 스페인의 기독교 왕들은 이교도들에게 개종, 추방, 죽음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개종을 선택한 무슬림, 유태인들은 각각 모리스코, 마라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데 이들은 끊임없이 의심을 당하고 종교재판의 가장 만만한 희생자가 됐다. 한편 스페인을 떠난 무슬림들은 일부는 이슬람권으로 돌아갔고 또 일부 유태인들은 당시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다른 종교 신봉자들에게 관대했던 네덜란드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하던 이교도들을 다 잃게 되고 이로 인해 농업생산성이나 제조업 수준면에서 엄청난 퇴보를 겪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 스페인 통치자들이 왜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까? 이는 어떻게 보면 스페인이 문명 충돌의 최전선에 서서 싸워야 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관용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스페인 가톨릭 통치자들의 심정은,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이 휴가를 나와서 "우리는 겨울철 혹한에 전선을 지키느라 생고생하며 끊임없는 긴장 속에 시달리는데 너희는 후방에서 이렇게 늘어지게 편히 살고 있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들의 입장에는 알 안달루스와 한참 떨어진 독일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종교개혁 움직임은 사치스런 투정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타 종교가 용인되던 이슬람 스페인의 수도, 코르도바그러면 오늘날에 와서 알 안달루스의 역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지난 2009년 뉴욕시 모스크의 이맘파이잘압둘라우프는 9.11 테러사건 당시 무너져버린 세계무역센터 부근에 13층 건물의 코르도바 하우스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이미 위의 알 안달루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코르도바라는 이름은 종교적 관용(또는 “Convivencia”)을 상징하는 이슬람 스페인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었다. 이 건물에는 모스크에 더해서 박물관, 종교간 대화의 장 등을 마련하여 종교화합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9.11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는 다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악의적인 계획이라고 반대하고 일어났다. 결국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1년 9월에 이 건물이 완공되고 개장했으나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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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3
  • 박정호의 창의력교실 ③ - 극과장의 상상력 2
    광고로 배우는 무한 창의력의 세계박정호의 창의력교실 ③ - 극과장의 상상력 2   창의력이 강조되는 시대다.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알았던 이 개념이 교과과정은 물론 기업과 정치판에서까지 등장하고 있다. 창의력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사고법이며 뒤집어 생각하는 역전의 발상, 상식이 아닌 것에서 길을 찾는 비(非)의 논리다. 광고전문가의 지상강의를 통해 창의력의 세계를 엿보며 나의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해보자. 글 박정호(제일기획 플래닝2팀장)   지난 호에서 극과장의 상상력은 More & More 쭻 Beyond라는 과정을 통해 끌어 올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 생각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기 쉬운 것일 가능성이 크지요지요. “더 과장하면~” “더 색다른 과장은?”하고 생각이 고갈될 때까지 가야면 비로소 쓸만한 새로움이 나오게 됩니다. 광고를 내보기 전/후에 광고효과를 조사합니다. 조사를 해 보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나왔는데 그것은 바로 ‘유모어’입니다. 극과장은 있을 수 없을 정도의 과장! 자체가 재미있는 상상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유모어라는 양념을 하나 첨가했더니 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극과장의 상상력2에서는 유모어가 들어가 있는 극과장을 소개하고 또 상상해 볼까 합니다.   가구에 바르는 왁스 광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야의 광고를 보기가 힘들지요^^ DIY가구가 활성화 되지 않아서 인지?) 이 왁스는 가구에 바르면 그 가구가 완벽하게 단단해 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잘 안 보이시겠지만 구석에 있는 “Perfect Hard”라는 카피와 왁스 통이 광고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건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일가요? 원폭이라도 터졌나 봅니다. 지평선 끝까지 폭파의 잔해들로 가득한데, 가구 하나만 멀쩡하고, 그 앞에 전라의 남성이 망연하게 서 있습니다.  ㅎㅎㅎ ~ 뭔지 아시겠죠? 불륜을 저지르다 갑자기 남편이 들이닥쳐 가구 안에 숨었던 상황! 맞아 죽을 뻔 했던 일이 오히려 목숨을 건지게 만들었네요 ㅋㅋ “완벽하게 단단한 가구라면 어떤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를 상상하다 보니 “폭탄으로 집은 다 무너졌는데, 가구는 멀쩡하다”라는 idea가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 ‘불륜남’이라는 유모어를 넣으니까 단순 과장을 넘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다음은 리바이스 <패션 광고> 입니다. 대부분의 패션광고는 분위기 있는 남녀가 등장해 스타일의 미학을 보여 주는데, 이 광고는 수트를 입은 남성들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싸우지?” 하는 궁금증은 광고의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있는 “리바이스 걸들”이라는 카피와 리바이스 핫팬츠를 입은 섹시한 걸들의 사진에서 실마리가 풀립니다. ‘걸’을 작게 처리한 것은, 그 현장에 없다는 상황의 설정이겠지요. 그 리바이스 걸을 서로 차지하려고 양복 입은 수컷들의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광고 제품을 최소한으로 보여주는데도 끌어들이는 힘은 강력합니다. 이게 유모어가 들어간 극과장의 힘이 아닐까요?   이제 상상력을 동원해 문제를 풀어볼 차례입니다. 지난 번의 고정력 뛰어난 헤어젤 극과장 광고 생각나시죠? 다시 한 번 보여드립니다.  여기에 유모어를 넣어 스토리를 만들어 보세요. 머리 고정력이 뛰어나서 생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결과들을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꼭 몇 가지를 생각해 보신 후에 다음 페이지로 넘겨 보세요. 그래야 제작자의 상상력이 느껴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비슷한 게 있었나요? 조금씩 창의력의 발전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 폭발사고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헤어스타일만은 끄떡없이 그대로다. 그런데, 다친 사람의 눈을 유심히 보면 표정이 담겨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뭔가 폼을 좀 잡으려는 듯 합니다. (이 광고의 디테일이 탁월한 부분입니다.) 이 와중에? 네, 바로 헤어스타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입니다. 유모어가 더욱 유모어처럼 보이도록 표정이라는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좋은 작품은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키고 다듬은 결과로 태어납니다. 여러분의 많은 생각들도 늘 다듬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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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3
  • 학습과정 중 사고력을 촉발하는 수업이 진짜 사고력수학!
    학습과정 중 사고력을 촉발하는 수업이 진짜 사고력수학!   글 조경희 시매쓰 수학연구소 소장(www.cmathclub.co.kr)     수학 자신감은 정확한 개념이해부터초등학교 저학년 때 예진이는 수학을 곧잘 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학이 점점 어려워져 슬슬 수학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비단 예진이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이는 고학년이 될수록 진도빼기에 급급한 나머지 개념과 원리의 이해 없이 반복적인 문제풀기에 치중하는 잘못된 학습 습관 때문이고 이러한 경우는 허다하게 많다. 문제풀기 중심의 많은 연습으로는 전형적인 기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응용된 문제가 나오면 당황하여 손도 못 댈 뿐만 아니라 오개념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취욕이 떨어지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면서 수학을 어려운 과목이라고 느끼게 되고 급기야 수학과 담을 쌓기 시작한다. 이처럼 수학 과목에 있어서 올바른 ‘이해’는 기본이며 필수인 것이다.   단답형에서 서술형으로 변하는 학교 수학시험수학 교육의 방향도 개념, 원리에 대한 기계적인 반복과 암기의 단순 지식 차원의 학습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수학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문제 해결력을 신장시키는 역량 학습을 지향하고 있다. 학교 시험 문제 유형도 선다형이나 단답형에서 서술형으로 점점 변화되고,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수학이라면 기본 개념과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도 공식을 외우고 많은 양의 문제를 풀면서 패턴을 익히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방법으로 상위권에 들기는 힘들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학 학습을 해야 할까?초등학교 4학년 과정 중 삼각형 단원으로 예를 들어 보자.   “이등변삼각형은 두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이다.”   혹시 이등변삼각형의 정의로만 개념을 학습하고 바로 확인 문제로 넘어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내용이 어렵지도 않은 짧은 문장이기에 확인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순한 지식의 전달로 도형의 추상적 개념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의 기억 속에 자리 잡히게 될까? 또 아이는 정말로 그 개념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활동을 통해 구체화 되는 수학 개념만일 이등변삼각형과 정삼각형, 예각삼각형과 둔각삼각형에 대해서 배우는데, 먼저 여러 가지 모양의 삼각형을 제시하고 아이에게 스스로 분류하게 해 본다면 아이는 예전에 학습한 ‘삼각형’의 정의와 ‘분류’라는 활동을 토대로 자신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삼각형을 크기나 모양 등 공통의 성질을 갖는 것끼리 분류할 것이다. 예컨대 삼각형은 세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으로 변이 세 개이니까 변의 길이에 따라 분류하면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 ‘두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 ‘세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른 삼각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분류한 삼각형을 그 공통의 성질에 알맞게 명명하고 정의한다면 여러 가지 삼각형의 이름과 그 성질이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잊어버리거나 이름과 성질이 뒤섞이는 혼란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사고력이 확장되는 사고력수학이렇게 수학적 개념, 원리의 학습 과정 중에 사고를 촉발하여 개념을 형성하게 하는 사고력 수학은 자신이 학습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개념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 또한 수학적 사고에 의한 학습 전개는 학습 성취나 호기심을 거기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이와 확장으로 연계시키는데, 위 단원에서는 ‘부등변삼각형’, ‘직각이등변삼각형’과 같이 후속 학습의 개념뿐 아니라 각의 크기에 의한 삼각형의 분류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사고력 수학은 개념과 원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시간적 효율성도 높아 속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무리 없는 선행 학습까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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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3
  • 가을 여행
    가을 여행 글 김다나 [동요작사가 / 글 짓는 이]     이른 7시, 집 앞에서 친구의 차에 올라 물안개 만나러 길을 나선다.자유로에 접어드니 떠오르는 태양에 눈을 뜰 수가 없다.선글라스로 바꿔도 좀 덜할 뿐, 눈부심은 여전하다.그렇게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양수리.길가에 차를 세우고 두 여자, 강변에서 물안개를 바라본다, 하염없이.서로 말이 없다. 그래서 좋다.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서로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거, 정말 좋은 일이다.   다시 차에 올라 정약용 생가 쪽으로 방향을 튼다.그곳에서 코앞의 물을 바라본다, 또 하염없이.좀 전과 다른 느낌의 물안개다.젊은이들이 엠티를 온 모양이다. 부지런한 젊은이 몇몇이 강가를 산책한다.그네들을 보며 두 여자, 잠시 각각의 대학시절을 도란도란 얘기한다.속이 비어서 그런가? 한기가 느껴진다.   길가 휴게실에라도 들리자 작정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조금 더 가니 간이 휴게실이 보인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간단하게 어묵꼬치 주문하는 데도 불이 오르기 기다려야 한단다.잘 된 일이다, 또 강가로 뛰어가 물안개 볼 수 있으니…누가 봐도 우리를 쉰 넘은 아줌씨들이라 생각지 않겠지, 잠시 착각에 빠진다.철딱서니 없는 여편네들 같으니라고…물색이 두 가지로 나뉘어 보인다. 설명하는데, 이 친구 감동 먹는 표정이다. - 속도 비어 출출한데 그거로라도 일단 배를 채우려나? ^^산 아래 물색은 산 닮아 초록이고, 하늘 아래 물색은 하늘 닮아 하늘색이지.원래 물엔 색이 없잖아. 어둔 하늘 밑에선 회색이 되고 밝은 하늘 아래선 파란색이 되고…황홀하다. 황홀하다. 황홀하다… 물은 똑같은 물인데, 세 곳의 물안개 느낌은 다 제각각이다.   어묵 국물로 빈속을 데우고, 이천으로 향한다. 길가에 쭈욱 늘어선 논엔 진즉에 추수하여 누워 있는 벼들과 뒤늦은 추수를 기다리느라 목이 발밑까지 닿은 벼들이 어우러져 있다. 탈곡까지 마친 쭉정이들은 속을 드러낸 채 철퍼벅 논 위에 드러누워 있다.색 바랜 허수아비들도 간혹 눈에 띈다.감나무 몇 그루, 장독대가 슬쩍 보이는 농가, 코스모스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억새 그리고 떨어지는 이파리들.가을이 맞다.   계속 울려대는 배꼽시계 밥 주러 생각해둔 음식점으로 향한다.광주 쪽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정작 가려던 음식점은 뵈질 않는다. 그 집이 원래 있던 곳에서 큰길가로 옮겼다는데 광주도자전시장까지 도착해도 안 보인다.전화를 넣었더니 이미 많이 지나쳐온 길에 있었음이다.그래도 의기투합한 두 여자, 차를 돌려 이천 쪽으로 속도를 낸다.그 집은 길가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풀들로 음식을 해 내는데, 내 지극히 좋아하는 민들레에 싱아, 여린 토끼풀, 쇠비름에 이름 모를 더 많은 푸성귀들.게다가 3년 묵은 꼬리꼬리한 김치까지…약으로나 쓰임직한 것들로 음식을 만드는 품새가 여간이 아니다.돌솥 밥에 누룽지 숭늉까지 먹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다.   두 여자, 잠시 고민한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느지막이 들어가야 하나, 아님 차가 덜 막히는 지금 출발해야 하나?벌써 세시가 넘었는데… 망설이다 의견 일치를 본다. 길 막히는 것처럼 짜증나는 일도 없다. 하이파이브하고 귀갓길에 오른다.오늘 우리는 물안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을…둘 다 같은 생각임에야… 피식 서로 쳐다보며 웃는다.천진암으로 해서 하남을 거쳐 올림픽대로에 오르는데, 예상보다 차가 많다. 벌써부터 질질거린다. 달팽이처럼 기어가다 천호대교를 건너 강북강변을 타는데, 지나다보니 동빙고가 서빙고가 보인다. 저기 나 살던 집이라고 손짓하고, 저기 나 놀던 곳이라고 손 흔들고, 저기 나 다니던 학교라고 웃어주고…마포 즈음을 지나니 길이 열린다. 내달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이다.일찍 출발했는데도, 길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탓이리라.운전하느라 고생한 친구, 어깨 한번 두드려주고, 감사 인사하고.그렇게 또 한 번의 가을 여행을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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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2
  • 물의 종교적 상징성
    주제로 읽는 책 읽기 물의 종교적 상징성   고대인에게 자연의 모든 현상은 초월적인 그 무엇을 체험하게 해주는 통로였다. 고대인에게는 자연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초월적 진리를 드러내주는 계시였다. 고대인의 종교가 주로 다신론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물은 이렇게 초월적 진리를 경험하게 해주는 자연 현상들 중 가장 대표적인 종교 상징이다. 다른 자연 현상들이 지니는 종교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물의 종교적 의미는 물 자체의 기본 특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물의 종교적 상징성은 우선적으로 생명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물이 만물을 소생·성장시키고 생명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아울러 물의 또 하나 중요한 종교적 상징성은 정화(淨化)의 의미이다. 물이 지니는 맑고 깨끗함 그리고 회생(回生)의 특성이 더러움과 혼탁함을 씻어내고 본래성을 회복시켜주는 정화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들 두 가지 의미는 동서고금의 종교문화에서 대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물의 상징성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동양과 서양에서의 물에 관한 종교적 사색이 좀 다른 면도 있다.먼저 동양에서는 물의 움직임과 기본 속성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초월적 진리를 깨닫고자 했다.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삼라만상을 조화롭게 운행하는 초월적 원리[道]를 깨닫고 그 원리를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동양 종교의 전체적인 추구가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끊임없이 흐르는 원천으로서의 물, 길을 따라 흐르는 물, 아래로 흐르는 물, 파편을 나르는 물, 부드럽고 다투지 않는 물, 어떤 형태든 취하는 물, 고요할 때 수평을 이루는 물, 침전물을 정화하여 거울이 되는 물”과 같은 물의 기본 속성을 강조한다. 우리 인간도 이러한 물의 덕(德)을 닮은 삶을 살고자 했다.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라 알란 저, 오만종 역, 예문서원, 1999년, 246쪽   반면 서양에서는 물이 생명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같은 물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이다. 이집트의 경우 나일강의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범람 덕분에 풍요로운 수확과 안정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물의 경험은 그대로 신을 생명의 원천이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신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을 지닐 수 있게 하였다.이에 비해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갑작스러운 강의 범람으로 인해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휩쓸려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물의 경험은 신을 예측불가능한 절대적 존재로 이해하게 하였다. 인간은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로 그저 현세의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데 초점을 맞추는 종교문화를 형성하게 하였다. 창조신화인 에누마 엘리쉬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과 인간 창조 이야기, 그리고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던 길가메시의 좌절 등이 이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초기문명의 서사시-메소포타미아 신화』, 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2, 김석희 역, 도서출판 이레, 2008년, 144쪽   동양에서는 물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세상을 위한 초월적 진리를 드러내준 반면, 서양에서는 물을 통해 예측할 수 없고 두려운 초월적 신을 경험하는 어두운 측면도 드러난다. 하지만 서양에서 물이 지니는 종교적 상징성이 단지 어둡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서양 종교, 특히 고대 근동 종교에서 자주 드러나는 예측할 수 없고 두려운 신의 모습은 그저 인간을 겁주고 주눅 들게 만들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초월적 신[초월적 진리] 앞에서 지녀야 할 인간의 겸허함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아울러 이 같은 초월적 신 혹은 자연 앞에서 지녀야 할 인간의 겸허함은 현대인의 무분별한 자연 개발 시도와 연관하여 깨우쳐주는 바가 있다. 동서양 종교에서 물의 상징성이 보여주는 공통적 의미는 우리 인간이 자연에 귀 기울여 그를 통해 드러나는 초월적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초월적 진리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연은 그 스스로의 존재 질서와 상태를 존중받아야 한다. 자연적인 질서와 상태를 인위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초월적 진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지 않으려는 인간의 오만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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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1
  • 추억처럼 아름다운 ‘스카보로 페어’
    추억처럼 아름다운 ‘스카보로 페어’                                                              글 김정식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사이몬 앤 가펑클에 의해 널리 알려져지금의 5, 60세의 중장년층이라면 사이몬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부르는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를 노래하며 젊음을 구가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도도한 문화적 코드의 하나였다.사이몬 앤 가펑클은 폴 사이몬(Paul Simon)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이라는 1941년생의 두 남자가 만나 1964년에 구성한 미국의 남성 보컬그룹으로 이들의 세 번째 앨범인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에 스카보로 페어가 수록되어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1967년도 영화 ‘졸업’(The Graduate)에도 삽입되어 영화의 세계적인 히트와 함께 스카보로 페어도 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카보로 페어’는 원래 잉글랜드 민요스카보로 페어의 배경이 된 스카보로는 영국의 북동부 북해 연안에 있는 현존하는 관광 도시다. 영국 중세의 조지아 왕조나 빅토리아 왕조 양식의 건물이 많으며 오래된 역사·문화의 도시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곡명인 스카보로 페어의 페어(Fair)는 중세말기 스카보로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장터를 의미한다. 당시 이곳은 영국의 중요한 교역 거점이었으며 유럽 대륙으로부터도 상인들이 몰려 왔다. 상품 판매가 주목적인 오늘날의 상설 시장과는 달리 장날이 되면 마술사, 서커스, 재담꾼, 구경꾼 등도 몰려 축제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스카보로 페어는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장터가 서고 세금 문제도 얽혀 1788년에 폐쇄되었다.한편 스카보로에는 16세기 무렵부터 몇 곡의 발라드 형태의 민요가 전해져 왔고 음유시인들에 의해 불려지며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오다가 19세기 말에 정착된 유형의 민요를 스카보로를 여행하던 사이몬이 듣고 감명을 받아 가사를 다듬고 편곡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스카보로 장터에 가는 길이세요?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그리고 타임거기 사는 여인에게 안부 전해 주오.그녀는 한때 나의 진실한 사랑이었다고. 내 삼베 셔츠를 만들어 달라 전해 주오.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그리고 타임솔기도 없이 바느질도 없이그러면 그녀는 내 사랑이 되리. 내게 1에이크의 땅을 구해 달라 해주오.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그리고 타임바닷물과 바다 모래 사이에그러면 그녀는 내 사랑이 되리.(중략)전쟁은 진홍색 대대에서 불타오르고장군은 병사들에게 죽일 것을 명령하네.오래 전에 잊혀진 원인 때문에 싸우라 하네.(중략)   가사는 전쟁으로 인해 악령으로 변한 소년이 나그네에게 가능성이 없는 말을 걸면 나그네는 액막이말(파슬리…타임)로 대응하는 형식에다 사이몬은 그 당시의 절박한 반전 분위기의 가사를 적절히 집어넣은 구조다.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의 의미가사에서 반복되는 이 구절은 허브의 나열이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파슬리는 소화를 도우며 쓴맛을 없애주며 세이지는 몇 천 년이라는 내구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로즈마리는 정절, 사랑, 추억을 뜻하며 타임은 배짱의 상징으로, 노래가 쓰여진 당시, 기사들이 전쟁에 나설 때 방패에 타임을 붙었다. 결국 이 4가지를 반복적으로 나열함으로써 부적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인지도.   ‘스카보로 페어’는 사이몬 앤 가펑클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꼭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스카보로 페어’라는 아름다운 잉글랜드 민요를 세계에 알렸으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페루 민요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도 사이몬 앤 가펑클의 노래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베이스 바리톤 브린 터펠(Bryn Terfel)은 1965년 영국 태생으로, 러시아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Dmitri Hvorostovsky), 미국의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과 함께 세계 3대 바리톤으로 손꼽힌다. 바로 그가 듣고 자란 고향의 민요를 클래식 창법으로 들려준다.                   ‘여울’은 우리나라의 가야금 4중주단이다. ‘여울’이라는 명칭처럼 국악의 대중화를 꿈꾸며 때론 팝음악을 국악화해 들려주기도 한다. ‘스카보로 페어’ 원곡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면서 가야금 소리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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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1
  • 이슬람 철학과 ‘이즈티하드’ 전통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⑨이슬람 철학과 ‘이즈티하드’ 전통       지금까지 모하메드의 출현에서 몽골의 아바시드 왕조 멸망에 이르기까지 6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숨차게 달려왔다. 여기서 역사에 대한 서술을 잠시 멈추고 대관절 이슬람이 뭔지 중세의 신학자나 철학자, 신비론자들이 뭐라고 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반드시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기독교나 힌두교, 불교를 불문하고 어떤 종교든 여기에 접근하는 방법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나뉘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대부분의 종교 신자들은 그냥 지도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무런 생각없이 종교에서 가르치는 율법을 그대로 따라 살다가 천국에 간다. 이런 첫 번째 길은 보통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흔히들 이슬람에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계파라고 생각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일부 머리에 뭔가 든 사람들은 그런 식의 무비판적인 추종을 배격하고 대신 종교적 원리를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궁극적으로 이것이 자신의 판단에 맞는다고 생각될 때만 참된 종교인으로 귀의하게 된다.그런데 세 번째 부류의 종교인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율법이나 철학적 사유를 완전 무시한 채 직관적으로 하느님과 직접 만나는 길을 선택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느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 대해 이들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애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데 왜 에둘러서 연애편지를 읽겠느냐?”고 반문하곤 한다.이 세 가지 길 가운데 철학적 전통은 소위 “이즈티하드”(독립적인 사고방식)라는 이름으로 수백 년간 이어져 오다가 11세기 이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금기시 되기 시작했고 그 후부터는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이즈티하드를 주장했다가 고난을 당한 사례로서 1993년 이집트 카이로대학의 이슬람학자 아부자이드(Nasr Hamid Abu Zayd)를 들 수 있다. 그는 코란이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성스러운 책이긴 하지만 이는 7세기 아라비아라는 문화적환경의 산물이고 따라서 역사적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집트 최고의 종교학교인 알아즈하대학의 울레마(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자신의 부인과 강제로 이혼당하는 위협에 처했었다. 부부는 결국 네덜란드로 피신해야 했다.한편 수단의 법학자 모하메드타하(Mahmoud Mohamed Taha)는 코란 텍스트 가운데서 메카와메디나 시대에 쓰여진 부분이 각기 다른 역사적 시대에 완전히 다른 대중들을 대상으로 집필된 것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결국 1985년 처형당하는 운명에 처했다.그런 반면에 직관적인 수피(Sufi) 전통은 지금까지 이슬람권 전역에 걸쳐 뿌리깊게 자리잡아 특히 도시 이외 지역의 민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수피즘은 원래 수피 지도자가 이끄는 교단(敎團)에서 추종자들이 “도(道)”를 깨치도록 돕는 체계적인 과정이었으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토착신앙과 결합하여 부적, 신비체험, 귀신쫓기 등에 더 집착하는 성격이 짙어진다. 철학적 전통그러면 우선 이슬람의 철학적 전통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랍인들은 9세기에 그리스 철학과 과학에 접하고 그 후부터 유럽의 르네상스, 과학혁명, 계몽시대에 맞먹는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대에 ‘팔사파흐’(여기서 유럽중세 시대의 ‘필로소피’가 탄생)라고 불리는 학문이 생겨나고 이를 연구하는 이들을 ‘파일라 수프’라고 불렀다. 이들 이슬람철학자들은 지구와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에 따라 이성적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처음엔 자연과학에 집중하다가 점차 그리스 형이상학으로 옮겨가고 이들 원리를 이슬람에 적용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초기에 이성주의가 종교의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믿고 개인적 신앙 차원의 하느님(personal God)을 더 높은 개념으로 승화시키려 시도했다.이슬람 철학자들은 그 출발점이 그리스 철학이긴 했으나 문제는 그리스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토니스 등)이 생각하던 하느님은 성경이나 코란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하느님은 인간의 일상사에 개입을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세상을 창조하지도, 심판의 날에 세상을 파괴하지도 않는 극히 ‘무관심한’ 하느님이었다. 이들의 하느님은 어떻게 보면 근대에 들어와 생긴 범신론(pantheism) 또는 유신론(theism)의 전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범신론자였던 아인슈타인의 다음 발언을 음미해보면 범신론이 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개인 신앙 차원의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세상의 오묘한 구조에 경외심을 갖고 그런 아름다운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한편 오늘날의 터키에서 태어난 4세기 기독교 신학자 베이질(330-379CE)은 케리그마(kerygma)와 도그마(dogma)를 구분하고 이 두 가지 접근법이 모두 종교훈련에 중요하다고 말했던 바 있다. 여기서 케리그마란 교회에서 성경에 근거해 공적으로 행하는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고 도그마란 그보다 더 깊이가 있는 신학연구를 가리킨다. 베이질 이후의 신학자들은 도그마는 상징적인 형태로만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유사하게 이슬람 신학자들 또한 일반 신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코란의 가르침과 특수한 방식으로 코란을 읽어서 거기에서 숨은 진리를 찾아내는 접근방법(tawil)을 구분했다.이슬람 철학의 전통은 9세기의 알 킨디에서 시작해서 10세기 알 파라비 등으로 이어지지만 이븐시나(980-1037)때에 와서 집대성 된다. 이븐시나는 서양철학자들에게는 아비센느(Avicenna)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신의 존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입증했고 이는 이후 중세시대 이슬람 및 유태교학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븐시나를 포함한 모든 이슬람 철학자들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일체의 의심을 갖지 않았고 인간의 이성이 신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 이해에 도달하는 데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대해서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븐시나는 지적능력이 충분치 못한 보통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 몽매한 대중들이 미신을 믿고 하나님의 인격화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이븐시나보다 2-3세대 늦게 태어난 알가잘리(1058-1111)는 젊은 나이에 바그다드의 니자미야모스크 교수책임자가 되어 이슬람 철학원리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몇 년 가지 못해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수피 교단에 가입하게 된다. 나중에 그는 교수직에 복귀했지만 수피 생활 경험을 떨치지 못하고 후세 이슬람 추종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결론을 내린다. 즉 하느님의 존재는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입증할 대상이 아니고 영적으로 신비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보통 알 가잘리 이후 이슬람 철학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스페인코르도바의 이븐루시드(유럽식 이름은 아베로스 Averroes; 1126-98)는 팔사파흐 전통을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울레마들은 항상 철학자들의 신(神) 개념에 대해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으나 이븐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의 개념과 보다 전통적인 신 개념을 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종교와 이성간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두 방법 모두 같은 진리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븐루시드는 이슬람 전통에서는 부차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서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학자로 칭송을 받게 된다. 실제로 생존 시에도 자신의 철학관 때문에 몇 년에 걸쳐 귀양살이를 하고 사망 직전에 복권이 되긴 했으나 그의 저서는 사후에도 계속 금서로 취급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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