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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⑤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⑤이슬람 사회의 과거와 현재 - 21세기의 모하메드(글 정상호) 일곱 번째 얘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기 전에 요즘 일부 국내 이슬람학자들이 주장하는 ‘모하메드’의 올바른 한글표기에 대해 잠시 시비를 걸어보기로 하자. 일부 학자들은 ‘모하메드’가 영어식 표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아랍어 발음에 보다 충실하게 표기하면 ‘무함마드’, ‘무함맏’ 등이 더 가깝다며 이런 식으로 쓸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들은 ‘코란’이 아니라 ‘꾸란’이 더 맞는 표기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 표기법과는 무관하지만 ‘알라’가 맞냐 ‘하느님’이 맞냐를 갖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한다.) 필자는 한글학자나 아랍어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논란에 대해 권위 있는 해석을 내릴 입장이 못되지만 아랍과 이슬람역사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외래어의 한글표기는 아무리 정교한 표기원칙을 내놓는다 해도 그간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표현방식을 뒤엎지는 못한다. 모하메드든 무함맏이든 어느 것도 아랍어 발음에 가깝게 옮겨 적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괜히 그런데 신경 써서 애꿎은 독자들 헛갈리게 하는 대신에 그럴 논쟁을 벌일 여유가 있다면 좀더 유용한 지식을 생산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모하메드의 신격화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모하메드의 생애가 오늘날 전세계 1/4 인구에 해당하는 15억 인구가 믿는 이슬람종교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겠다. 이슬람종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아는 얘기겠지만 하느님(알라)과 모하메드의 관계는 하느님(여호와)과 예수님의 관계와 똑같이 대비시켜 말할 수는 없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원리가 있어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빌렸을 뿐 하느님과 동일시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반면에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모하메드는 모하메드이지 더 이상의 복잡한 논리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하메드는 그 이전에 세상에 왔던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후세 무슬림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인간”의 모범으로 떠받들여지고 있지만 그를 신격화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다만 하느님의 대변인으로서 그의 생전에 했던 발언과 행적을 동료들의 증언을 통해 모아 집대성한 “하디쓰”는 코란과 함께 무슬림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성전(聖典)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일부 교육을 받지 못한, 기복민간신앙에 가까운 이슬람을 믿는 신도들 중에는 모하메드나 다른 역대 이슬람성인들을 모시는 사당(“zawiya”)을 세우고 여기서 돈 잘 벌게 하고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를 드리곤 한다. 이슬람역사를 통틀어 종교정화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사당들은 파괴의 대상이 되었고 19세기 초 압둘와하브가 이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운동 추종자들도 메카의 모하메드 사당까지 우상숭배라며 때려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모하메드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렇다면 오늘날 이슬람신도들이 모하메드의 가르침을 가장 잘 따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가 7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턱수염을 휘날리게 기르고 펄럭이는 집바를 입고 다니기만 하면 되는 건가? 실제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원칙을 곧이 곧 대로 믿었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다름아닌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이였다. 이들은 턱수염을 더럽게 기르고 펑퍼짐한 샬와르카미즈를 걸치고 다니며 “모하메드 시절에는 음악을 듣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았다.”며 동네방네를 다니며 라디오와 TV를 압수하고 주민들을 구타했다. 아랍혁명이 휩쓸고 간 튀니지나 이집트에서도 살라피스트들이 득세하여 탈레반 식 행실이 독실한 무슬림이 따라야 할 모범인 양 착각하고 날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모하메드가 7세기가 아니라 오늘날 21세기 세상에 나타났다면 그는 어쩌면 전통복장 대신에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낙타나 당나귀 대신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을 것이다. 과거에 모하메드 선지자가 했던 행적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신을 따라 현재 변화된 환경에 맞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 것이다. 따라서 겉으로 무슨 옷을 입든, 수염이 있든 없든,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그런 것들은 종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대신에 그가 생전에 부르짖던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같은 종교를 믿기만 하면 다 형제나 다름없고 네 이웃 섬기기를 하느님 섬기는 것처럼 하라는 기본적 가르침에만 충실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다고 하겠다. 이 마지막 주장에 대해 누구는 “네가 종교에 대해 뭘 그렇게 많이 안다고 잘난 척이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내 주장이 아니라 역사상 수많은 성현들과 대사상가들이 했던 말이다. 예를 들어 논어(論語)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묻기를 “스승님,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까요?” 여기에 대해 공자 가라사대 “흠, 그건 서(恕) 아닐까?” 예수도 비슷한 얘기를 한 바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해라.” 역대 유태교에서 최고로 존경 받는 랍비의 한 사람인 힐렐은 예수가 탄생하기 수십 년 전에 이런 얘기를 남겼다. 하루는 비 유태교인이 랍비 힐렐에게 다가와서 당신이 한 다리를 든 채 유태교 경전인 토라의 심오한 원리에 대해 다 설명해줄 수 있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유태교로 개종하겠노라고 도박을 걸었다. 힐렐은 이에 대해 “네가 싫어하는 건 네 이웃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이게 토라 내용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다 주해에 지나지 않는다. 자, 이제 물러나서 공부 좀 해라.”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물론 이 자가 약속대로 유태교로 개종했는지는 토라에 언급되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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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12
  • 명퇴 따위는 잊었다. 다시 시작할 뿐이다!
    열에 아홉은 망한다 과장도 궁상도 아니다. 팩트 그 자체다. 퇴직금에다 아파트 담보로 빚도 좀 얻어 개인사업 아니면 쌔고 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된다. 임대료에, 인건비에, 관리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나갈 곳은 끝이 없는데 매출은 신통치 않다. 빚이 쌓이기 시작한다. 결국, 나이 마흔 넘어 어렵게 마련한 가족들의 보금자리 아파트까지 경매로 날아간다. 한 이년 견디다 견디다 못해 가게 문을 닫고 재취업의 문을 노크한다. 나이 오십 중반은 이제 늙은이 취급당한다. 어쩌다 재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보수가 해도 너무 할 뿐 아니라 노는 ‘물’ 수준이 확 떨어져 ‘굶어 죽으면 죽었지 이 짓은 못하겠다’며 그만둬 버린다. 처음 몇 달은 친구들한테 공짜 막걸리도 얻어 마셔 보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자존심 상해 이젠 휴대폰부터 꺼 버린다. 문을 나서자니 돈 들고 창피해서 그냥 집에 개구리 ‘칩’ 자로 ‘거’ 한다. 거친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손 고운 전업주부 아내가 식당에 설거지라도 나가겠다고 해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죽고 싶다. 우리들 중 열에 아홉은 이렇다. 상처뿐인 영광 이른바 스카이 나왔다는 이유로 IMF의 피바람에서는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던 내 친구들도 나이 오십이 넘자 사정은 마찬가지다. 쌍룡 이사까지 하던 친구가 그룹 자체가 휘청하는 바람에 회사를 나와 처남이 하던 천막 공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수해서 운영하였다. 직원 다섯 명 인건비 주기도 힘겨운 채로 한 삼년 견뎌본다. 지 말로는 ‘경기가 좋지 않아’ 접고 막걸리에 순댓집 술국을 의지해 살아가는 문예반 출신 기호는 어느 새 백발이 다 되어 버렸다. 다국적 회사 IBM에 폼 잡고 잘 다니며 친구들한테 술도 팍팍 잘 사던 친구가 회사에서 잘렸다. 생활비가 딸려 압구정 그 비싼 아파트를 전세 주고 뚝 떨어진 교외의 17평 연립 전세로 이사하니 전세금 차액이 솔찬했단다. 이 돈으로 딸 음대 레슨비까지 대며 4년째 버티고 있다.포철에서 근무하다 철근 대리점을 하나 따 가지고 나와 한때 돈 좀 번다는 친구가 있다. 주위 부러움도 좀 받았다. 중국 건설 경기가 뚝 떨어지자 수백억 되던 철근 재고 값이 물경 1/3로 곤두박질쳐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까지 다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되었단다. 감옥까지 드나든 이 녀석은 내 짝궁으로 70년대 초 그 시절에 번쩍이는 ‘레코드’ 타고 등교했던 놈이다.우리나라 건설 수주액 일등이었던 대우건설이 팔리자 새로 온 점령군 놈들 눈꼴사납다고 사표부터 던져버리고 삼억 원 인가를 들여 신촌 부근에 일본 라면집을 차린 성깔 있는 친구도 있다. 예상보다 손님이 들지 않고 운전자금도 부족해서 열 달 만에 빈손이 되었단다. 재기하겠다며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지만 이젠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니 재기도 쉽겠냐고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쉰다.물론 성공한 친구도 한 명은 있다. 한 3년 전인가부터 유행하는 고깃집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이 친구는 사위까지 사업에 끌어들일 만큼 상당히 성공했다. 성공요인? 궁금하신가? 몇 번 망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여유자금이다. 이것저것 해 보느라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건물까지 십몇억을 다 말아먹고 그다음에 이룬 ‘상처뿐인 영광’이다. 남보라고 창업? 네버! 맨주먹 창업? 오브 코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퇴직금 한 일이억 들고 뭔가 해보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우리 베이비부머 명퇴자를 타켓으로 수많은 수익모델이 생기고 있다. ‘이 얼빵한 친구들 좁쌀 돈 들고 나오는데 그래 한 번 땡겨 봐?’ 이런 식이다. 그러니 뭔가 멋진 사업을 얼른 ‘남보라고 창업’ 하면 큰일 난다. 그렇다. 처음부터 큰돈을 투자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수업료 좀 냈지 뭐’ 하는 말은 우리들 베이비부머 명퇴자들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구구단도 못 외운 인간이 대학교 수학 강의를 듣겠다면 다들 웃을 일인데도 사업은 자기가 하면 잘될 거라고들 생각한다. 겁도 없이 ‘남보라고 창업’ 한다. 사업은 구구단 외우기가 아니다. 대학교 고등수학이다. 우선 구구단부터 외우고, 중학교 수학도 고등학교 수학도 만점 맞고, 그리고 당당히 대학교 수학 강의실에 앉아야 한다. 그렇다면 구구단은 뭐고 중고등 수학은 또 뭐냐? 자신과 가족들의 마음 다이어트가 구구단이라면 길거리 맨손창업과 돈 적게 드는 소형 점포 창업은 중고등 수학이다. 이 정도야 나도 어느 정도 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몇 억을 들여 대학 수학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면 나는 모른다. 각자가 알아서다. 김선호 '그래야 살길이 보인다' 저자 김선호 작가 칼럼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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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6-11
  •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④ : 부기우기를 말하다(2)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④부기우기를 말하다(2)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부기우기, 록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다흔히 부기우기를 Barrelhouse Music이라고 한다. 즉 흑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통나무로 만든 싸구려 술집 음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부기우기의 등장은 블루스뿐 아니라 재즈, 당시의 대중음악에 크나큰 전환점을 마련한다. 부기우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마침내 빅밴드에서 부기우기와 점프 스타일의 블루스를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마침내 그 Jump Blues는 록큰롤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백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록큰롤(원래 섹스용어였음)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음악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블루스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록의 탄생’에 관여한 것이었다. 1950년대 후반, 록큰롤이 유행하면서 백인들이 블루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블루스 음악을 백인들의 취향에 맞게 가공하면서 록음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블루스 리바이벌과 록음악의 탄생이 이뤄진 곳은 블루스의 발상지인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영국 땅 이었다. Cyril Davies, Alexis Korner, John Mayall과 같은 백인 블루스 뮤지션들이 블루스 음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Rolling Stones, Beatles, Pretty Things같은 밴드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우상이 흑인 블루스맨들과 그들의 음악임을 밝혔고, “브리티시 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는 영국 특유의 블루스 음악이 록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당대에도 블루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성행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독일을 중심으로 중북부유럽에서 블루스 페스티발, 콘서트 등이 미주보다 자주 열리며 성행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영국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모여든 히피들이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른바 Acid Rock이라는 음악과 Texas를 중심으로 태동한 Country Music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Janis Joplin이 등장하면서 포크에 국한 되어있던 히피들의 관심은 블루스 음악으로 확장되었고 B.B. King, Luther Allison, Buddy Guy같이 블루스맨들이 대중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블루스는 재즈에 속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록큰롤의 탄생과 함께 블루스는 독자적인 기원과 형식 그리고 발전과정을 가진, 재즈와는 별개의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가장 오래된 대중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천대 받던 블루스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 그러나 위대한 부기우기 연주자 Pinetop Smith부기우기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Clarence Pinetop Smith(1904~1929)라는 설과 Charlie Cow Cow Davenport(1894~1955)라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두 가지 설이 있다. 분명한 것은 부기우기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Pinetop Smith라는 것이 지론이다. 후에 출현하는 Robert Johnson이 델타블루스 스타일을 완성하면서 블루스 전반에 공헌을 했다면 Pinetop Smith는 Piano Blues, Boogie Woogie라는 블루스 장르를 세상에 알리고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한 공로자이다.본명 Clarence Smith, 그는 1904년 6월 11일 Alabama Troy에서 태어나고 Birmingham에서 자랐다. 그의 닉네임 Pinetop은 어릴 적 그가 즐겨 올랐던 나무에서 착안했다고 한다.1920년 그는 17살에 T.O.B.A.(Theater Owners Booking Association) Vaudeville에서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싱어,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던 Ma Rainey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28년에 녹음을 위해 시카고로 이주하는데 당대 가장 유명했던 피아노 연주자인 Albert Ammons, Meade Lux Lewis와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녹음을 준비한다. 드디어 동년 12월 29일 피아노 블루스의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곡을 녹음하는데 그 곡이 바로 Pine Top's Boogie Woogie이다. Smith는 이듬해 다른 녹음 스케줄을 준비하는 과정에 시카고의 작은 댄스홀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총상을 입고 24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부기우기 주자 Albert Ammons와 Pete Johnson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1938년 Tommy Dorsey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그의 곡 Boogie Woogie를 다시 정리해 녹음한다. 이 앨범이 2차 세계대전 이후 400만장 이상 팔리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고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게 된다.아쉽게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그의 앨범 자켓이나 사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참여예정 뮤지션이 추천하는 블루스 명반 성명  Rodrigo Eberienos   나이  34   국적 Brasil 직업 Professional Harmonica Player,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참여예정 뮤지션Website www.rodrigoeberienos.com           www.myspace.com/rodrigoeberienos           www.youtube.com/eberienos            www.harrisonharmonicas.com Blues Etilicos - Salamandra“The finest blues band in Brasil. They were the first blues band in Brasil and started on 1987. They have now more than 10 albums released. This album is my favourite, elegant, cool, with amazing sound! Hope you all enjoy it.” (Westcoast, Modern Electric블루스 스타일을 연주하는 브라질 대표 블루스 밴드의 수작 앨범)http://www.bluesetilicos.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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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8
  • 봄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요?
    봄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요? 글 김 다 나 [동요작사가 / 글 짓는 이] 오월의 끝자락입니다.저는 학교 다닐 때, 봄은 삼, 사, 오월이요 여름은 육, 칠, 팔월이며 가을은 구, 십, 십일월이고 겨울은 십이, 일, 이월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았습니다. 왜냐? 교과서에 있었거든요.그런데 언젠가부터 스멀스멀 이 계절의 경계가 무너지는 게 보이더니, 봄과 가을은 채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더란 말입니다.그러더니 올 봄은 더하네요. 제가 사는 일산에는 지난 4월 10일에 눈도 내렸답니다.뜬금없이 궁금증이 발동하여 일기장을 찾아봤더니, 작년에는 4월 3일에 눈이 왔더군요.아무튼 겨우내 꼭꼭 숨어 있다가 드디어 제 세상 왔다며 벚꽃이며 목련 등등이 꽃봉오리를 슬그머니 내미나 싶더니 아, 글쎄 심술궂은 비바람이 몰아쳐 후드득 후드득……겨우 살아남은 것들이 안간힘을 쓰며 기어이 꽃을 피워냈더니만, 아, 얄궂어라! 이번엔 더 세찬 비바람이 죄다 떨궈내더란 말입니다.아쉬움에 안타까움에 많이 애달아했습니다.그러더니 얼라리? 오월의 한낮은 여름입니다. 오호 통재라! 봄은 여자 마음 같다고 하지요. 그런데 여자의 마음이 대관절 어떻기에 봄 날씨를 여자 마음에 비유할까요?변덕이 심하다? 속이 좁다? 다양하다? 예쁘다? 알 수 없다?그런데 꼭 여자 마음만 이런가요? 사람 마음 모르기는 여자나 남자나 매 한가지인데, 굳이 여자 마음에 비유한 걸 보니, 요 말은 아마도 어떤 남자 분에게서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는데…….蛇足입니다. 우리나라 봄 날씨는 참으로 다양하지요. 꽃샘추위에 봄 가뭄에 황사까지……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가 다양하기 때문이래요. 시베리아 기단이니 오호츠크 해 기단이니 아주 오래 전, 삼백만 년(?)도 더 전에 들어본 것 같은 단어가 오락가락하는데, 제가 뭐 다시 공부해서 수능 볼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생겨난 재밌는 속담이나 몇 개 늘어놓을게요. ‘2월 바람에 김칫독이 깨진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봄추위가 장독 깬다.’ 이른 봄, 꽃이 필 즈음에 예상 외로 추울 때가 많다는 것을 뜻한답니다. 꽃샘추위 아시죠? 꽃샘이란 말은 바람신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불었다는 데서 만들어졌대요. 주로 아이들이 새 학년을 맞아 개학할 즈음에 찾아왔는데, 요즘엔 4월에도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우리말이 정말 예쁘지 않나요?  ‘꽃샘’ - 꽃을 샘낸다. 그렇지만 이처럼 추위 걱정하는 것과 반대로 봄추위는 잠깐이며, 늙은이 근력 좋은 것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을 지닌 ‘봄추위와 늙은이 근력은 오래가지 못 한다.’는 속담도 있답니다. ‘벚꽃 싹이 일찍 바래면 여름 날씨가 좋다.’는 속담도 있어요.벚꽃이 피는 4월 무렵의 날씨가 평년보다 따뜻하면 꽃들의 수명이 짧아져 색깔도 일찍 바래고 빨리 지게 되어, 여름 기온이 올라가 풍년이 된다는 얘기라네요. 그런데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여름이 지나치게 빨리 와서 걱정입니다. 봄비와 관련된 속담도 많습니다.‘곡우에 비가 안 오면 논이 석자가 갈라진다.’4월 20일 전후가 곡우로 이즈음에 농가에선 파종을 하는데, 이때 비가 안 오면 싹이 트지 않아 가뭄을 심하게 타게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곡우에 비가 지나치게 많이 와도 농사에 피해가 간다 하여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곡우는 농사와 아주 밀접한 절기이지요. 녹차도 곡우 전에 딴 우전차가 아주 맛이 좋습니다. ‘봄비는 쌀 비다.’건기인 봄철에 비가 넉넉히 오면 그 해 벼농사 짓는데 수월하여 풍년이 든다는 얘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 가뭄이 심해 농촌에 양수기 보내기 운동을 장려하며 국민모금을 했던 거, 기억하시죠?‘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 손이 커진다.’봄에 비가 많이 오면 작물의 성장이 좋아지고 모심기도 잘 되어 풍년이 들게 되므로 씀씀이가 커지고 특히, 아낙네들도 헤프게 쓴다는 데서 생겨난 속담입니다. 이렇듯 예쁘고 할 말 많은 봄이 죄다 어디로 갔느냐는 말입니다.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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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8
  • 알아두면 따뜻한 금융 지식 - ETF
    알아두면 따뜻한 금융 지식 종목 투자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ETF가 대안 기업 고유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주식을 투자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ETF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ETF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떠한 투자전략으로 접근해야 할지 전문가를 통해 조언을 들어본다. 글 김형식 부장 (신한금융투자 일산지점 031-905-8475) ETF 란?주식거래를 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무슨 종목을 사느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어떤 주식을 사면 그 주식에 내재되어 있는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할 수 있다. 첫째는 시장 전체의 움직임에 따라 해당 주식도 같이 움직이는 체계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시장이 좋고 나쁨에 따라 그 해당 주식도 전체 시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둘째는 그 기업만이 가진 고유의 위험이다. 전체 시장은 별 문제가 없는데 해당 주식에만 이슈가 생겨 시장보다 더 많이 상승하거나 더 하락하는 현상을 얘기한다. 보통 주식 시장에서의 성패는 이 개별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이 개별 위험을 덜 가지고 가면서 전체 시장에 대한 위험 만을 취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 중에 하나가 ETF를 통한 거래이다. 다양한 ETFETF란 코스피200과 같은 특정지수 및 특정 자산의 가격움직임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설계된 펀드를 말한다. ETF는 펀드지만 거래소에 상장되어 주식처럼 거래(유통)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를 들면 코스피 지수와 거의 동일하게 움직이는 대표적인 ETF에는 KODEX200이 있다. 이 KODEX200의 경우 투자자는 전체 시장이 오르고 내리는 방향성만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일 전자 업종만을 투자하고 싶다면 IT업종의 ETF를 거래하면 된다. 최근ETF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아래 도표는 최근 우리 시장에서 거래되는 ETF의 종류를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ETF는 어떤 개별종목에 투자하여 생길 수 있는 부도위험 또는 그 회사만 갖는 고유의 위험을 제거하면서 투자 하고자 할 경우에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TF 투자 전략첫째, 최근 EFT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ETF가 레버리지 ETF이다. 이 레버리지 ETF는 변동성이 매우 크게 만든 ETF인데 일반 ETF 수익률의 2배씩 움직이게 하였다. 이 레버리지 ETF가 가장 유용한 경우는 시장의 움직임이 매우 큰 경우, 일반 ETF는 보다는 장중 급등락이 크므로 단기적인 방향성매매 전략으로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수익이 2배가 될 수도 있지만 손실이 두 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둘째로는 주가지수가 추세적인 방향성 없이 박스권에 갇혀 있을 경우 유용한 분할매수 전략이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의 단기방향성 예측이 어렵고, 일정구간의 박스 권 구간에 갇혀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전일 대비 KOSPI 하락 시 ETF를 10%씩 분할 매수하여 불안정한 지수 상황에 대응, 또는 전 주 대비 KOSPI 하락 시 분할매수 전략 적정수익률 도달 시 수익 실현 후 재진입 하는 박스 권 장세를 활용한 ETF도 매우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셋째로는 주식시장의 장기 성장성을 활용한 장기적립식 투자전략으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식시장의 장기적 상승은 예상되나 단기변동성을 피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ETF의 장점인 저렴한 비용을 활용한 지속적인 분할매매를 한다면 매입단가를 하향 평균화하는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결국 이런 반복적인 분할매매는 시간이 흘러 시장이 상승했을 경우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종목 투자에 대한 위험을 피하고자 할 경우 ETF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요즘 같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어려운 장 세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일 이런ETF를 선정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힘들다면 ETF로만 구성된 랩 상품에 가입해 보는 것도 좋은 투자 방법이다. 예를 들어 당사(신한 금융 투자)의 오페라 2.0 같은 상품이 대표적인 ETF로만 구성된 랩 상품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상품을 선정할 때에는 전문가와 함께 한번 상의 한 후 상품에 가입하는 것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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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8
  • 유혹
    유혹 ‘유혹’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끎’이라고 뜻을 풀었다. 이 의미를 우리 일상생활의 경험에 근거하여 넓게 풀어보면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이끌어가는 매 순간마다의 흐름 혹은 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유혹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매 순간 나를 이끌어가려는 그 어떤 흐름 혹은 힘을 놓고 벌어지는 내 안의 갈등과 번뇌부터가 고통이고, 어쨌든 일단 이루어진 결정과 행동에 의해 주어진 결과를 놓고 벌어지는 아쉬움과 후회, 자책이 또한 고통이다. 아울러 그 이끌림(유혹)에 따라 전개된 실제 삶의 문제 상황이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고통으로 나를 힘들게 한다.그런데 우리 인간은 왜 유혹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인가? 유혹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탄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본래 사악하기 때문일까? 『생각 버리기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역, 21세기북스, 2010년, 244쪽 불교에서는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 모두가 나의 ‘생각(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이 변화무쌍하게 작용하는 나의 생각이 매 순간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이끌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끌림으로 인한 갈등과 번뇌, 아쉬움과 자책, 실제 삶의 문제 상황 과 같은 모든 고통이 나의 생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이렇게 생각에 의해 이리 저리 이끌리는 나의 상황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다. 말 위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말을 움직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멋대로 날뛰는 말에 이끌려 이리 저리 날뛸 뿐이다. 생각이라고 하는 말에 휘둘려서 이런 저런 유혹과 고통의 나락에 빠져 들어가는 꼴이다.결국 불교의 깨달음[해탈]은 나의 생각을 제어함으로써 온갖 유혹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는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을 우리의 일상 삶에 쉽게 적용시키면서 우리를 온갖 유혹과 고통의 상황으로 휘몰아가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라고 제안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생각 버리기’의 핵심 원리는 ‘나를 객관화시켜 관찰’하는 습관을 터득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고 어떤 방향으로 작용해 가는지를 스스로 대상화하여 관찰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런 나의 생각 작용에 이끌리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나’가 나의 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유혹이라는 말을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것이 여러 종교의 성인(聖人)들이다. 예수를 비롯하여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과 같은 위대한 성인들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 감동은 평범한 우리가 감히 이룰 수 없는 그분들의 뛰어난 행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화려한 옷을 입고 아늑한 집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떵떵거릴 수 있는 삶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적인 욕망을 쫓는 삶을 살고 싶은 유혹을 의연하게 극복했다는 점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분들은 과연 어떻게 가장 인간적인 욕망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아마도 인간이 경험하는 유혹에 가장 처절하게 직면했던 성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일 것이다. 석가모니가 (비록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작은 나라였지만) 한 나라의 왕자로서의 삶을 떨쳐버리고 혹독한 수행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현세적 인간으로서 직면해야 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석가모니의 수행과 깨달음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현실 삶 안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던 중 끊임없이 악마들의 유혹과 협박을 받았다는 기록이 여러 경전에 나온다. 이들 기록은 석가모니 역시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욕망과 갈등의 유혹을 극복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숫따니빠따>라는 경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수행 중인 석가모니에게 악마가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고행의 결과 몸이 여위게 되어 살아남기 어렵게 될 것이다. 생명이 있어야 여러 가지 선행도 가능한 것이다. 고행에 열중한다고 해서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어차피 깨달음의 길은 어렵고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내게는 믿음이 있고 지혜가 있다. 육체의 살이 빠질 때 마음은 더욱 더 맑게 개이고, 믿음과 지혜는 더욱 더 굳어진다. 마음은 갖가지 욕망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보라, 이 심신의 깨끗함을.”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석가모니가 받은 유혹의 절정을 이루는 것은 마왕(魔王)의 세 딸이 등장하여 깨달음에 거의 다다른 석가모니를 온갖 교태로 유혹했다는 이야기이다. 갈애, 혐오, 탐욕이라 불리는 마왕의 세 딸은 어린 소녀, 젊은 처녀, 남의 아내, 노파 등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석가모니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명상에 잠겨있는 석가모니에게 다가가 “왜 슬픔에 지쳐 홀로 숲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가, 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가, 무슨 까닭으로 모든 사람들과 교류를 끊었는가, 친구가 없어서 그러는가.”라고 물으면서, 자기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만 하면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내 마음은 고요하다.”라는 말로써 이들을 일축했다고 한다.이 같은 석가모니의 유혹 이야기들은 결국 수행 과정에서 석가모니의 내면세계에 일어났음 직한 갈등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하는 악마들의 여러 이름과 모습들이 그대로 인간적인 욕망의 여러 측면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 충동, 물질적 안락, 세상의 권력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이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할 때 느낄 수 있는 불안과 공포와 갈등 등이 그대로 악마의 유혹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석가모니의 유혹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가 받은 악마의 유혹이 곧 가장 인간적인 욕망의 유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유혹을 이겨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욕망이니만큼 좀처럼 그 깊은 뿌리를 끊어버리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 끈질긴 유혹을 그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2000)라는 종교학자는 ‘신앙’(faith)이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신앙이란 개념은 ‘자신의 전 존재가 그 어떤 궁극적인 존재를 향하고 있는 내면적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 정신, 모든 것이 궁극적 존재[초월적 진리] 하나만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가치나 의미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궁극적 존재만을 향한 삶을 의미한다. 온전히 궁극적 존재만을 향하는 것은 그 궁극적 존재가 최상의,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삶 전체가 그것을 향해 방향을 잡으면, 다른 세속적인 가치들은 제한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세속적 가치나 인간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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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8
  • 애 타는 여자의 마음을 노래한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
    애 타는 여자의 마음을 노래한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 글 김정식 카피라이터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는 60년대 최고의 인기 라틴음악‘퀴사스 퀴사스 퀴사스(Quizas quizas quizas)’라는 곡은 ‘베사메 무초’와 함께 60년대 최고의 인기 라틴음악으로,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TV광고의 배경음악으로는 물론 영화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2000년에 개봉된 홍콩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에서는 주요장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그런데 이 곡이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비 스페인어권 지역에서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소는 노래 중에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라고 퀴사스라는 단어를 3번씩 반복하는 독특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래가 유행할 당시 퀴사스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노래에서 퀴사스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죄다 따라하곤 했다. 그 만큼 발음도 재미있고 한번만 들어도 곡을 기억할 만큼 유니크 했다. 퀴사스란 ‘아마도’ 혹은 ‘글쎄요’라는 뜻퀴사스란 영어의 Perhaps에 해당되는 단어로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거나, 무언가 상황을 얼버무리거나 추측으로 대답할 때 쓰는 말로 ‘아마도’, ‘어쩌면’ 혹은 ‘글쎄’라는 의미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확실한 대답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단어지만 확실한 대답을 기다리는 상대에게는 속 터지게 만드는 말이다.곡의 가사는 의외로 단순하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세요?”라고 물으면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언제쯤 결혼 할 거예요?”라고 물으면 “글쎄 글쎄 글쎄다” 이런 식이다. 요즘 성깔 있는 여자들에게는 2번만 이렇게 대답했다가는 다시 얼굴보기가 힘들어지리라.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해 보자. 난 항상 당신에겐 묻곤 하지요.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거냐고.언제나 당신은 대답하지요.글쎄 글쎄 글쎄다. 이런 식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고난 거의 희망을 잃어가지만,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은 대답하지요.글쎄 글쎄 글쎄다. 당신은 시간을 잃고 있는 거예요.생각하고 생각하느라고.허지만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 때문이라면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아! 그렇게 세월은 지나가고 나는 절망에 빠져만 갑니다.그런데도 당신은 대답하지요.글쎄 글쎄 글쎄다.사랑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 상대를 나무라며, 애 타는 여인의 가슴을 잔잔히 노래하고 있다. 라틴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이 곡을 노래하는 장면을 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이 곡은 쿠바의 작곡가 오스발도 화레스(Osvaldo Farres)가 1947년에 발표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라틴음악의 스탠더드 넘버다. 퀴사스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트리오 로스 판초스’적어도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이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를 이야기 할 때, 멕시코의 남성 3중창, 트리오 로스 판초스(Trio Los Panchos)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빌로드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베사메 무초’나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가 널리 알려졌으며 멕시코 민속 의상에 챙이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은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들은 60년대 중반에 방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트리오 로스 판초스의 음반은 일전에 소개한 적이 있어 이번엔 낫킹콜의 음반을 소개한다. 우리에겐 미국의 팝가수로 잘 알려진 낫킹콜(Nat King Cole)은 스페인어로 노래한 앨범을 3장이나 남겼다. 이는 미국 내의 많은 히스패닉들을 고려하기도 했겠지만 중남미 지역에서의 직접적인 인기를 통해 국제적인 슈퍼스타로의 도약을 도모 했으리라.   원래 이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는 리드미컬한 보레로 리듬의 곡인데 맘보의 왕이라는 페레스 프라도(Perez Prado)악단의 맘보 리듬으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맘보도 한 시대를 풍미한 라틴 리듬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카티아 라베크(Katia Labeque)와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곤살로 루발카바(Gonzalo rubalcaba)의 피아노 듀엣은 연주도 연주지만 편곡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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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0
  • 우리 어린 날의 초상(肖像) ② = 그때는 그랬다
    우리 어린 날의 초상(肖像) ②그때는 그랬다 글 강현석(전 고양시장) 모두가 살기 힘겨웠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그러나 그 당시 열악한 환경에 한 번이라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우리들 모두 그랬으니까.오히려 어린 맘에도 나이 들지 말고 계속 이대로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그 때가 나름대론 행복했었던 모양이다.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던 시절이었다. 미워할 사람도 미워할 이유도 없었던 세상이었다. 서로 걱정하고 아껴주던 사람들이었다.그 때가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짐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단상 4. 온 동네가 환했던 날들의 기억이른 봄, 미나리꽝에는 미나리가 지천이었다.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수확하는 날은 집집마다 수확한 미나리를 아름 가득 나눠주는 날이기도 했다. 덕분에 미나리꽝이 없었던 우리 집에서도 미나리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배추나 상추 철에는 집에 사람이 있든 없든 으레 배추, 상추 한 단씩이 던져져 있었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왜 갖다 놓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 나누어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 흔한 채소를 장에 내다 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야채는 그저 나누어 먹는 것일 뿐이었다. 남은 것은 소의 몫. 모두 한 식구처럼 서로 나누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그 때였다.  할머니는 온 동네 제삿날을 다 기억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누구네 제사다, 그 양반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린 맘에도 참 신기했다. 글도 모르는 어른이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시는지…. 그날 밤엔 어김없이 제삿밥을 먹을 수 있었다. 새벽 2, 3시경에 할머니가 깨우면 부스스 일어나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맛있게 뚝딱 제사 밥 한 그릇을 비우고는 또다시 단잠에 푹 빠지곤 했다. 동네 제삿날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날이었다. 그렇게 온 동네가 돌아가신 분 덕에 배부른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겨울에는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만 놀았다. 집이 좁기도 했지만 극성스런 장난에 할머니에게 빗자루로 엉덩짝 맞는 일이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매일, 하루 종일 놀아도 무엇을 하며 놀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철마다 놀 놀이가 어찌 그렇게 많았던지… 심심하기는 고사하고 노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어떤 놀이동산보다 신나는 놀이들이 세상에 지천인 시절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한 부대였고, 한 가족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왁자지껄 온 동네를 누비며 뛰어다니던 그 때, 조그맣고 까만 어린 아이는 배고픈 것도, 심심한 것도 몰랐다. 호롱불만 켜다가 제사 때나 섣달그믐, 정월 대보름날 집안 구석구석에 켜놓은 촛불은 대낮같이 밝았다. 온 동네가 환해지는 그 날은 왠지 그저 좋았다. 단상 5. 학교 가는 길섣달 그믐날이면 까만 새 운동화와 새 양말, 새 양복을 곱게 머리맡에 개어놓고 가슴 설레며 잤다. 자다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운동화를 신어보고 옷을 입어보곤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반짝이는 양철 필통과 책받침을 나눠 주었다. 집에 돌아와 만져 보고 쓰다듬어 보고 가슴 설레며 그렇게 혼자 하루를 보냈다. 흠집이라도 날 새라 보물 단지 만지듯 조심조심 다뤘다. 학교까지는 3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지만 6년 동안 한 번도 학교에 빠진 날은 없었다. 한겨울 학교 가는 길은 울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학교 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내 단 몇 번을 제외하고는 불이라곤 쬘 수가 없었다. 난로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장작이 없어 그저 난로는 그저 전시품에 불과했다. 교실 안에 있는 양동이 물은 겨울 내내 꽁꽁 얼어 있다가 봄이 되면 강물 풀리듯 녹곤 했다.  선생님들이 가정방문 하는 날이면 누구네 집에서나 막걸리를 내 왔다. 거나하게 취한 선생님은 저녁 무렵 기분 좋게 비틀거리며 돌아 가셨다. 아무도 그러한 선생님을 흉보지도, 손가락질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이 고마웠다.어느 집 가정방문 때든 부모들은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 많이 때려달라는 것이 인사였다. 실제 많이 때려주길 엄마들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 살 돈 몇 푼이 없어 이웃집에 꾸러 다니는 일 정도는 다반사였다. 이웃집에서도 돈만 있으면 군말 없이 빌려 주었다. 도화지 한 장 살 돈이 없어도 크게 불편한 줄을 몰랐다. 모두가 그랬으니까.학교 앞 문방구점에서는 연필 한 자루, 도화지 몇 장을 사도 건빵 두세 개를 주었다. 그 건빵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고소하고 달콤한 기억 속에서 아이는 행복했다. 우리들은, 그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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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0
  • 이야기로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이야기로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세계, 이슬람 ③이슬람사회의 과거와 현재 -  모하메드의 생애 이슬람에 대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시 뉴스를 장식하고는 하는 테러에 대한 이미지가 모든 것은 아닐까.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조금 다른 세계, 이슬람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도 정확해질 것이다. 이에 이슬람 세계에 대해 이야기로 쉽게 풀어보는 코너를 가져본다. 이번 호에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모하메드의 가르침과 순탄치 못했던 초기 선교활동에 대해 들어본다. 글 정상호 편집 아이디위클리 편집부 주 중년의 위기와 코란의 집대성40대로 접어든 모하메드는 요즘 표현으로 일종의 ‘중년의 위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메카 사회 전체가 대상무역 호황으로 다 잘 살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과부들이 어렵게 살고 있으며 고아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시간만 나면 메카 인근의 ‘자발 안누르’(빛의 산)에 올라가 마음의 평안을 얻곤 했다. 그러던 중 산속의 동굴(히라 동굴)에 들어앉아 명상을 하다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되뇌어라(Recite)!”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뭘 되뇌라는 거죠?”라고 대꾸하다가 세 번에 걸친 명령을 받은 후 숨 막히는 고통을 겪은 뒤에야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입에서 저절로 토해져 나왔다. 너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되뇌어라 / 단 한 방울의 피로 인류를 창조하신, / 되뇌어라 / 그리고 너희 하느님은 최고로 창조적이시느니라 / 그는 인류를 펜으로 가르치셨고 / 인류가 알지 못하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셨느니라. (코란 인용문 필자가 영어에서 직접 번역) 모하메드는 산에서 내려와 아내 카디쟈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악마의 유혹을 받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정신이상이 된 게 아닐까 물었으나, 그녀는 수도승 생활을 했던 친척 와라카 이븐 나우팔을 찾아가서 그의 신비한 경험이 실제로 천사의 방문이며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로부터 632년 사망할 때까지 모하메드는 이슬람을 전파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무슬림 커뮤니티의 정치적 세력도 확장하게 된다. 코란은 모하메드가 610년 히라 동굴에서부터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받은 하느님의 계시를 그대로 기록, 집대성한 것이다. 그렇다고 코란이 과거의 종교 경전들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새로운 내용은 아니며,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에 자리 잡았던 종교전통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순탄치 못한 출발 - 약한 이들을 위한 혁명적 구호와 설교, 그리고 탄압모하메드의 선교활동은 그렇게 순탄한 것이 결코 못 되었다. 메카의 지배계층이던 코레쉬 부족들이 그의 가르침에 매우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 모하메드의 설교가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너무 혁명적인 것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계시를 받은 후부터 메카 저자 거리에 나서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고아와 과부들을 돕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여성이나 노예들에게도 권리를 부여하자.” 등 혁명적인 구호들을 부르짖고 나서니 평민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지배층 엘리트들은 모하메드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거기에 더해서 메카는 당시 무역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백 가지의 잡신들을 모신 카바 신전에 몰려드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받아들여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일종의 ‘종교관광’ 중심지였다. 요즘의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7세기 초 메카 또한 도박, 매춘, 음주, 마약 매매 등 부도덕한 비즈니스로 거두는 음성적인 수입이 막대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모하메드라는 자가 나타나서 “세상에 하느님은 한 분밖에 없으시다, 모든 다른 신들은 다 우상이다.”라고 주장하고 나서니 코레쉬 족 엘리트들은 관광수입이 줄어들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그때부터 이슬람 신도들을 탄압했던 건 어떻게 보면 극히 자연스런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교주 격인 모하메드를 죽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그런 메카 지도층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모하메드는 계시를 받은 다음 12년이나 계속해서 메카에서 설법을 할 수 있었고, 이는 전적으로 삼촌 아부 탈리브가 그를 보호해준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시 12년째에 삼촌과 아내 카디쟈가 잇달아 죽자 모하메드는 적들의 공격 앞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메카에서 더 이상 자리를 잡지 못하고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렵게 되자 모하메드는 622년 당시 야트리브라고 불리던 메디나로 몇몇 무슬림 동조자들과 함께 야반도주를 하고(‘헤지라’) 메디나에서 이슬람의 종교적 이상을 그대로 따르는 종교 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었다. 모하메드가 메디나에 자리를 잡은 직후에 시행했던 정책 중 하나는 자신이 평소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듯이 고아나 과부 등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소득의 일정 비율을 기부해야 하는 의무(‘자캇’)를 무슬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다섯 개의 계율 가운데 하나로 정하는 것이었다.여기에 더해 코란에서도 밝혔듯 여성들에게도 일정한 상속 권리를 부여하고 특별한 사유 없이 남자 마음대로 이혼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일부다처제(4명까지)를 인정하긴 했지만 모든 부인들에게 공정하게 대할 자신이 없으면 한 명만 데리고 살라는 일부일처제 선호입장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런 여성보호 규정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과거 7세기 기준으로 보면 중국이나 유럽 등 다른 문명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히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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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0
  • 리모델링, 분당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탄천에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며 봄소식을 전하더니 이내 초록이 자연을 뒤덮는다. 초록의 봄소식만큼이나 기쁜 소식이 줄을 잇는다. 성남시가 지역문화지표 경쟁력 1위를 차지했고, 지자체 중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있어 가장 앞선 행보를 보였던 결과로 지난 4월 1일 정부의 부동산대책에 ‘공동주택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을 이뤄냈다.최근에는 전국 기초지자체 중 매니페스토 실천부분에서 최고등급(SA)을 받았으며 남한산성과 맹산, 영장산, 불곡산, 청계산을 잇는 둘레길을 만드는 사업이 계획 중이다. 그 중 분당주민의 사랑을 받는 맹장산, 영장산, 종지봉, 새마을 연수원, 불곡산을 탄천과 연계하는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는 계획은 도심과 밀접해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주민의 품으로 돌려 도심 생활에 지친 주민들에게 건강과 여유, 치유의 가치를 한껏 주리라 기대된다.민선 5기와 6대 의회 들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긴장관계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성남시민을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어 다행이다.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최대 수요처 ‘1기 신도시 중 단연 분당!!’ 그중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있어 수직증축의 허용은 단연 전국적인 화제다. 이로 인해 분당지역의 집값이 상승 중이라는 소식은 차치하더라도 1기 신도시를 대표하는 분당지역의 122개 단지 86,339세대가 리모델링의 대상임을 감안한다면 그 중요성은 대단하다. 1기 신도시 지역의 재건축 연한이 40년임을 감안한다면 공용시설의 노후화를 방치한 채 살기에는 그 불편함이 너무 크다. 전국적으로 공동주택 보조금의 규모가 가장 큰 성남시의 경우 2010년 25억, 2011년 69억, 2012년 72억, 2013년 116억으로 매년 지원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재정지원에도 불구하고 단지의 노후화를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재건축을 하기에는 20여년이 남은 만큼 결국 아파트 단지의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대책은 리모델링이 제격이다. 단, 현재의 경기 불황과 부동산 경기하락의 시점에서 분당지역을 중심으로 일었던 리모델링 열기가 주춤한 것 또한 사실이다. 제도개선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 증축 일변도의 리모델링 방식은 추진 자체가 버거웠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직증축을 통해 일반분양이 이뤄질 경우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의 사업성을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건설사의 예측을 빌리면, 증축 리모델링을 할 경우 예상 사업비의 30% 정도를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증축일변도에서 벗어나 세대분리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 게다가 과거 증축만을 목적으로 하는 리모델링의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리모델링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 증축을 최소화하고, 주차장 및 주민 커뮤니티 센터 설치 등 공용부분의 시설을 개선하는 ‘실속형 리모델링’ ◎ 중대형 평형의 경우 세대를 분리하여 리모델링을 통해 분리된 가구를 임대형으로 전환하여 중대형 평형 소유자의 부담을 줄이는 ‘세대분리형 리모델링’ ◎ 증축 없이 현재의 상황에서 대수선을 통해 친환경, 저 유지비용을 목표로 하는 ‘대수선형 리모델링’ 이런 다양한 리모델링 사업방식이 가능하겠으며, 1기 신도시 최고의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분당의 경우 이 같은 사업이 시범사업형식으로 전개되어 민-관-전문가 그룹의 협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때 그 성공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가이다. 이 같은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지원조례가 작년 12월 전국 최초로 발의되었지만 아직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수직증축 허용이라는 제도적 변화를 감안할 때 이번 5월 임시회에서는 무난히 통과되리라 기대한다. 제도의 변화와 다양한 사업방식을 통한 사업성공의 개연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체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그 성과는 다를 것이다. 이전의 철거 방식인 재건축과 재개발이 금전적 이익만을 쫓아 부동산 경기에 따라 사업 성패가 좌우되는 폐단을 보였다면 공동주택 리모델링은 주거복지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며 수많은 실패사례를 낳은 재건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민-관-전문가가 참여하는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향후 10년간 매년 500억씩 5,000억을 목표로 하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금조성계획이 개별단지의 지원뿐 아니라 도시계획에 기반을 둔 기반시설의 정비 등 도시 재생이라는 거시적인 목적 아래 사용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세밀한 준비를 거쳐 분당이 재도약하는 분당 르네상스의 시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 용 성남시의회 의원(이매1,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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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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