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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를 위한 색안경을 껴라
    주변을 돌아보라. 지금까지 그냥 그것이라고 정의된 것들이 다시 보이지 않는가. 폐허가 된 공장이 훌륭한 갤러리가 된다. 철거를 기다리던 판자촌도 시각을 달리해 보면 우리나라 고유의 정 문화가 살아있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갤러리가 된다.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농촌마을이 저소득과 중노동을 해결하면 명품 농촌마을로 변신한다. 법으로 막기만 했던 카튜닝 사업이 규제를 풀어주니 수천가지의 새로운 자동차 생산자로 변신한다. 잘 수도 없고, 컵라면조차도 먹을 수 없었던 산에 규제를 조금 풀어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이 골짜기 깊은 곳에 들어서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힐링의 장소가 된다. 재개발 단지였던 창신동의 3천여 개의 공장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4시간 만에 상품을 생산하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공장생태계가 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 우마차 구입예산을 편성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전(現代戰)은 정보전, 사이버전으로 급속히 전환되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적진에 깃발을 꼽아야 할 보병만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서는 미래를 준비한다고 볼 수 없다. 무인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에 과연 미래전(未來戰)에 대비한 전력 획득에 예산이 제대로 배분되고 있는지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산업혁명 이후 동일한 기계를 다뤄야 할 엔지니어를 공급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대학이 최고의 지식을 무료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제대로 작동할지도 살펴야 한다. 번역앱, 통역앱 등이 날로 지능화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영어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어리석은 짓도 중단해야 한다.거꾸로 보고, 새롭게 보고, 다시 보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고, 땀을 흘리는 것만으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는 함께 연주할 음악을 만드는 것이요, 함께 연주하는 것이요, 그래서 함께 행복해 하는 것이다. 여기에 너와 내가 다를 수 없고 서로 시기하고 다툴 일이 없는 것이다. 필요하면 양보하고 때가 되면 소리 내어 전체가 만들어내는 교향곡의 멋진 소리를 위해 우리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행복해 하면 그만인 것이다. 빨간색의 안경을 끼면 당연히 모든 사물이 빨갛게 보인다. 우리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틀로 아무리 이 현실을 조명해 봐도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 그래서 창조경제를 주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눈을 확 떠야 한다. 색안경을 껴봐야 한다. 그래서 거꾸로도 보고 옆으로도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널려있는 오브제를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최소한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교향곡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기대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그 청사진은 아마도 매년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청사진은 많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안내자가 될 수 있다.국가뿐만 아니라 이제 산업 간에도 독주가 아닌 협연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야 한다. 단순한 협업차원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여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이 창조경제를 마치 여러 사업 중에 하나로 보고 접근하기보다는 대한민국 교향곡의 작곡자와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더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작곡자와 지휘자 역할을 하기에는 집행할 사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마치 작곡자나 지휘자가 연주자까지 겸한 꼴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으니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당연하고 갑작스럽게 기술자가 예술가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넓게 이해하자. 이런 생각의 확산을 통해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나가야 한다.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기에 이런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내리라 믿는다. 창조경제는 기술경쟁력에서 예술가로의 변신인 만큼 매우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우리 모두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기득권층의 엄청난 저항을 이겨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모두가 창조경제를 이해하고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의 국민운동, 다시 말해 대합창을 할 의지와 용기와 열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쪼록 장엄한 대한민국 교향곡을 우리 모두 함께 연주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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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04
  • 근본과 상식에 대한 인식차
    어김없이 찾아온 새해도 벌써 한 달이 다 되갑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그 세월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어린 영혼들을 차가운 바다에 묻은 일도 지난 일처럼 묻혀져만 갑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기만 바라던 마음이 시신이라도 모두 수습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염원으로 바뀌어가면서, 우리는 절망이라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사람이나 기다리라는 말만 철썩 같이 믿었던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제 혼자 살길 찾아나서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하는 회한과 자성의 탄식이 나왔습니다. 선박의 구조와 운행이 안전한지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정부기관이나 대형 참사를 지휘해야할 중앙부처나 눈뜬 까막 장님이었다는 사실은, 중진을 넘어 선진 경제대국으로 나아가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지난해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에서 치러진 선거가 ‘안전’ 경연대회였던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해양청을 폐지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한다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생각도 별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온 나라가 다시는 그러한 대형 사고를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였건만, 그러나, 해를 넘기면서 주변에서는 언제였냐는 듯이 크고 작은 사고가 또다시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 달에만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 이어 경기 양주 아파트, 서울 지구촌교회 화재, 서울 도곡시장 화재 등 대형 화재사고에, 급기야 국내 최대의 부탄가스 제조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니 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비새면 지붕을 고치듯, 시민의 행복과 안전은 정치와 종교를 떠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입니다.    이러한 때에 정부여당을 대표하는 김무성 대표가 올해의 메시지로 정본청원(正本淸原)의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준비하자고 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정본청원이란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근본의 근본이니 그리만 된다면 대가로 사라져간 어린 영혼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자는 취임 초 대통령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말하는 뜻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한 말을 꿰어 보건대, 선거도 없고 하니 정본청원 정신으로 올해 보수혁신을 완수하자는 것, 즉, 이른바 경제살리기란 이름으로 공무원연금개혁과 같은 일을 끝내자는 뜻으로 보입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릴 때가 지금 뿐이라는 게 정부여당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증가하자는 게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경제살리기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문제는 방법과 시기입니다. 성장의 둔화라는 고민은 사실 현 정부만의 잘못도 아니고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세계경제가 범지구적으로 하나의 경제권에 묶이다 보니 불황마저 동조화하는 현상이 작금의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불황을 먼저 겪은 이웃나라 일본이 돈을 쏟아 붇는 정책을 오랫동안 해 왔음에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부여당은 집권 초,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그리고 규제개혁을 경제정책의 선두에 두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 정부에게 너무 어렵거나 오래 걸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나봅니다. 마치 일본의 아베정권처럼 우리정부도 지난 해 돈을 풀어 주택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확장적 거시 경제정책을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구조개혁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해 적폐라고 규정하고는 노동, 교육, 공공, 금융 개혁을 최대의 역점 사업으로 꼽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산업현장과 유리된 교육,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돈맥이 경화된 금융을 비정상으로 보고 이를 집권 3년차인 올해 안에 이루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 최우선 조치로 공무원의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사회적 합의나 형평성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OECD 국가에 비해 유난히 경직적이라는 증거도, 교육이 직업교육으로 일원화되는 것이 옳다는 증거도, 공공부분이나 금융이 관치 없이 비효율적이 되었다는 증거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선거가 없는 해라는 기회 정책적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집안의 경제도 나라경제와 같아서, 사정이 어려워지면 남은 돈 끌어 모아 크게 한판 하기보다는 형제들이 의지하고 나누어 쓰면서 때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한 것입니다.   본래, 정본청원, 이 말은 대학교수 265명이 선택한 올해의 경구로서,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전했던 바라고 하니, 근본과 상식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큰 셈입니다.    이한주 가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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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9
  • 확 돌려봐 뭐가 보이나? (ParadigmShift)
    우마차는 사라졌다.   길을 걷다 보면 앞을 보는게 아니라 스마트폰만 쳐다 보면서 걷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2009년 11월 아이폰이 처음 국내에 들어오면서 생긴 현상이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스마트폰에 중독되어가는 것을 염려하곤 한다.과거에도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기대와 우려가 늘 상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과거는 골동품이 되어 회소성이 인정되고,새로운 것은 보편화 되면서 상식이 된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이처럼 낯설고 새로운 것이 언제 상식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왜냐하면 그것이 상식이 되기 전에 혁신의 기회를 잡아야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이라는 달콤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하니 높은 임금에 스카웃되는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직업자체가 사라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절대 선이고 절대가치이므로 결코 변해서도 안 되고, 바뀌는 것은 더욱 안 되고, 이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결국 그렇게 버티다 골동품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아닐텐데. 예를 하나 들어 보자.여러분은 택시가 언제까지 존재하리라 생각하는가? 지금 우마차가 사라졌듯 언젠가는 택시의 기능도 달라지지 않으면 사라질지 모른다.'우버(UBER)택시'라는 신종 비즈니스가 불법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민간승용차를 이용자에게 연결해 주는 서비스인데 택시업계를 위협한다고 하여 허가를 내주네 마네 하며 정부와 씨름 중이다. 당분간 이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UBER는 좋은 의미에서 체계화된 카풀과 비슷한 개념이다.초연결사회의 시스템이 조직적인 카풀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물론 카풀의 선행이 비즈니스가 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하지만 카풀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떳떳하게 비용을 지불하는 편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서 그렇지 카풀을 제공하고자 하는 측에서 무료를 포함한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는 정교한 플랫폼의 설계도 가능할 것이다.법이 허락한다면 기존의 교통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새로운 에코시스템(Eco System)의 탄생도 머지 않은 장래에 실현되리라 본다.UBER는 그 초기 모델에 불과하다.   렌트카는 또 어떤가.차를 렌트카회사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차를 받아 사용하고 다시 회사에 반납하는 이런 불편한 프로세스가 생략된 Car Sharing 사업이 이미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공유경제 모델인 ZIP Car와 같은 렌트카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쏘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서비스가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초보단계이다.집카 회원이 되면 도시 곳곳에 주차되어 있는 렌트카를 스마트폰으로 가장 가까운 차를 배정받아 스마트폰이나 회원카드로 차문을 열고 목적지까지 운전을 한 후 차를 주차하고 그대로 나오면 끝~~~ 이다. 지금처럼 렌트카를 지정된 장소에 반납할 필요도 없고,이용한 시간 만큼의 비용만 카드로 자동정산하면 렌트카 이용이 끝난다. 한시간을 이용할 수도 10분을 이용할 수 도 있으니 자기 차를 보유한 것보다 훨씬 가볍다. 필요하면 트럭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데이트를 위해 고급스포츠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아주 다양한 차를 시내 곳곳에 대기시켜 놓고 활용하는 것과 같다.이런 차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택시영업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겠는가. 공용자전거 처럼 공용자동차가 여기 저기 주차되어 있는 도시의 모습이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들어온 속도만큼 빠르게 말이다.우리는 수 많은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거리에 운행되고 있는 자동차 댓수는 10대 중 1대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머지 자동차는 주차장에 잠자고 있는 것이다.이 차들을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자동차 제조사나 세금을 거둬야 할 정부는 원하지 않겠지만 주차공간도 줄어들고 가계에 자가용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절감되어 소유에 대한 욕망만 내려놓으면 아주 편리한 에코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다. 그것 뿐인가. 이미 운전면허를 가진 무인자동차가 거리를 다니기 시작했다.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술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승객이 택시기사 대신에 운전석에 않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달리는 것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앞으로는 걱정없이 뒷자리에 앉아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동안 무인자동차가 목적지까지 데려다는 주는 일이 일상이 될 것이다. 드론이라는 무인항공기가 승객을 싣고 복잡한 도로가 아닌 하늘을 날라다닐 날도 멀지 않았다.이미 미국에서는 드론을 이용해 피자배달이나 택배를 추진하고 있다. 고층건물의 화재 진압에도 진입도 못하는 고가사다리소방차 대신해서 드론이 사용될수도 있을 것이다. 남는 방을 여행자들에게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공유경제 사이트 에어비앤비(Airbnb). 2008년 시작해 6년 만에 기업 가치가 11조원에 이르는 거대 사이트로 성장했다.호텔업계로 보자면 변종 호텔이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불법이다 아니다 논란이 심하다. 하지만 이 모델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더 촘촘하게 빈방을 찾아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연결해 주는 이 같은 모델은 계속 진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가 어떠하든 나중에는 상식이 될 일이다. 이런 공유경제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는 산업화를 통해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고 말았다. 지난 50년간 인간은 이전 모든 세대가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 왔다. 1980년부터 숲, 물고기, 자연 광물, 금속, 그 밖의 원자재 등 지구 자원의 1/3을 소비했다. 움직이는 물건의 99%가 6개월안에 쓰레기가 된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물건은 반 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그냥 버려지는 것이다. (위 제네레이션 중에서) 더 벌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한 것들이 결국 지구를 병들게 했다는 이런 경각심을 가진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서로가 잘 몰라 한 쪽에서는 넘쳐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부족해서 고통받았던 이 불균형이 촘촘한 네트워크로 인해 조화스럽게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공유경제를 대안으로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공유경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자본주의를 보완하며 주목받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그렇게 지구의 자원을 아끼고 적절하게 재 분배하여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경망이 매우 빈약해서 하등동물과 같았던 인류가 신경망이 매우 촘촘한 인간같은 인류가 되어가고 있음을 이해하겠는가. 한몸처럼 변해가는 인류가 앞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인류문명을 창조해 낼 것이라 기대가 되지 않는가. 한몸이 되어가는 인류 세상은 점점 나와 우리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간다.마치 내 몸의 세포나 기관처럼 나와 우리는 연결되고 있으며 서로에게 더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을 뛰어 넘어 이제는 사물들까지도 연결되어 간다.이 연결을 통해 상호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고 이 집단지성은 단절된 인간의 창의력을 뛰어 넘어 엄청난 파워를 만들어내면서 인류를 한 차원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고 있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물과의 연결뿐만 아니라 내 몸속의 작은 기관들과도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사람 몸 속에 아주 작은 칩을 삽입하거나 몸속에 초소형 로봇이 들어가 내 몸안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몸 속에 칩을 심어 필요한 정보를 센타와 교신하면서 여러가지 다목적으로 사용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 같은 칩을 환자들에게 심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자 팔찌 대신에 이런 칩이 범죄인감시에 사용될 것이고, 치매환자처럼 늘 살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도 활용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어쩌구저쩌구 불만들이 많이 튀어나오겠지만 그 편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받아들일 확률이 크다. 우리가 의식하던 안하던 간에 우리는 이미 자신의 위치정보를 만인에게 알리고 있지 않는가. 굳이 몸속에 칩을 넣지 않아도 구글글래스, 아이워치 등 웨어러블기기(wearable device)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크레딧카드는 물론이고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들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변신할 날도 멀지 않았다. 너와 내가 서로 다른 독립된 객채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마치 발가벗고 사는 세상과 같다고 받아들이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 모른다.뭔가 감춰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세상이 되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편리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장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군폭력문제가 세상에 드러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만 사실 군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창군이래 계속 되어 왔던 문제다. 정부, 검찰, 경찰, 법조인, 국회의원, 의사,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는 종교지도자, 서민들과 함께 하는 노조나 NGO 등 과거에는 그 벽이 너무 높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득권층의 개인일탈과 각종 비리들이 깨알같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처럼 적당히 감추고 덮어주던 끼리끼리 문화의 검고 으슥한 구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과거 같았으면 무마될 수도 있고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었던 문제들, 특히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는 일이라면 조직원 누구나 할 것 없이 똘똘뭉쳐 막아냈던 그런 사건들이 적나라하게 일반인에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늘 속에서 빨대를 꼽고 적당히 단물을 빨아먹던 기득권층에게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깊은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래서 SNS 환경을 외면하기도 하고 담을 쌓아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형국이 되고 만다. 드러내고 솔직하게 살자니 너무 구린게 많고 감추고 덮자니 내리 쬐는 강열한 태양빛에 견디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선거철에 잠깐 눈도장 찍어가며 선대위 감투하나 쓰고 선거를 치루고 난 후에 지지후보가 승리를 하면 전리품 챙기듯 적당한 자리를 보장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본인의 역량과 평판에 따라 늘 논란의 중심에 서야 될지 모른다. 감히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자가 단지 선거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꿰차게 되면 아마도 수 많은 눈초리를 감당해 내야 할 것이 뻔하며 자리를 보전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생각해 보라.최첨단 동영상 장비에, 녹음장비에, 전송장비에, 입력장비를 갖추고 저마다 수백내지 수천, 수만 더 나아가 수백만명의 독자를 확보한 1인 미디어들이 전국을 누비고 있지 않은가.   그런 방송국 또는 인터넷 언론사는 등록만 하면 가능한 세상이다. 등록되지 않은 개개인까지 포함하면 우리는 늘 취재진 앞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어디 그 뿐이랴 전봇대 위에 건물 구석구석에 포진하고 있는 CCTV는 또 어떤가. 이제는 한 술 더 떠 자동차도 눈을 달고 다닌다. 냉장고나 TV 도 눈과 귀를 달기 시작했다. 그냥 앉는 자리에서 눈만 좌우로 돌려도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기기를 발견하게 되는 세상이다.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주요신문에서 기사를 삭제하면 보도 통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상식이겠는가. 빅데이터, 인류의 뇌신경이 되어간다. 이 같은 촘촘한 신경망으로 마치 한몸같은 인류로 진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런 신경망의 중심에 인류의 뇌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인류의 뇌는 어디 있는가? 신이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듯 인류의 뇌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클라우드컴퓨팅(Cloud Computing)은 신경망을 통해 개인이 세포처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개개인의 천문학적인 생각을 집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연결되고 있다. 최근들어 개인적으로 전화하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 하루에 많아야 10회 이하로 전화를 하지만 메신저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수백명 이상과 소통하고 있다. 내 보좌관들과의 대화도 거의 메신저를 통해 마치 회의하듯 그렇게 정보를 공유한다. 이런 소통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방대한 데이터는 인류를 고도로 지능화하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 페이스북, 아마존 등등 우리는 지능화된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도의 지식정보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그것도 마치 내 뇌의 기억처럼 스마트폰을 통해 수시로 꺼내 보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르면 네이버지식인에게 물어보는 세상이다. 똑똑한 지식인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각종 의학상식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내가 탈 버스가 언제오는 지도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 같은 대규모의 데이터 집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 얻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것을 빅데이터(Big Data)라고 이야기 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더욱 정교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어릴 때 TV 드라마에서 자동차가 말을 하며 주인공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던 장면을 보면서 공상과학영화니까 라며 상상 속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만의 일이 아니었다. 통신망과 빅데이터 분석으로 이제는 사람보다 훨씬 똑똑한 지능을 가진 데이터를 스마트폰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소통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몇 십년 만의 일이라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그리고 그 진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더욱 놀라운 일 아니겠는가.이제 몇 년 안에 스마트하게 통역도 하고 만물박사처럼 척척 내 말을 알아듣고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답해 주는 로보트나 스마트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나의 건강을 체크하고 가이드해 주기도 하고 운전도 해 줄 것이며 심지어는 선생님 역할도 해 줄 것이다. 아마도 로봇이 인간의 감성을 대신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외의 일들은 아마도 상당부분 로봇이 담당하게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노동을 대신할 또 다른 역할이 무엇일지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로봇과 일자리를 놓고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로봇과 차원이 다른 인류의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세상이 뒤집어졌던 그 이상의 혁신이 촘촘한 신경망인 인터넷의 발명으로 인류가 인간처럼 변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갖 난 아기 같을 지 몰라도 인류는 곧 성인의 되어 개개인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인류의 지혜에 모두가 경악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미래사회가 이미 시작되었다.   * 전하진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성남 분당을) ▲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 새누리당 디지털정당위원장  ▲ 국회 미래인재육성포럼 대표 ▲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 간사 ▲ K밸리 포럼대표 ▲ 새누리당 창조경제 일자리창출 특위 부위원장 ▲ 2014 새누리당 지방선거기획위원 ▲ 2014 새누리당 개인정보보호대책 특위 위원  * 블로그 http://blog.naver.com/hajinj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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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5-01-12
  • 우리는 이미지를 구매한다
    우리가 분당에 이사 왔을 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어렸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자잘한 일로 병원에 갈 일이 많다. 주로 내과, 이비인후과 같은 곳이다. 병원이 여기저기 있으니 선택해야 한다. 자연스레 우리가 가는 동네병원이 정해진다. ‘행복한 내과’. 우리가 가까운 곳을 두고 길을 건너서 가는 병원이다. 병원의 결정은 아내 몫. ‘그 병원이 왜 좋은데?’라는 질문에 아내는 스스럼없이 ‘거기가 잘 보는 것 같아, 또 친절하고...’라고 답한다. 나는 대학에서 광고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설득에는 근거를!’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아내의 선택에는 무슨 근거가 있는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소비자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또 선택해야 하는 것이 있다. 카센터이다. 이것 역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바가지 씌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기적으로 가는 엔진오일 정도는 아무데나 가도 된다. 그것은 가격만 보면 되니까. 그러나 문짝이 긁히거나 좀 더 복잡한 수리를 요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고치는 사람의 눈치만 보게 된다. 종종 고치다가 다른 부분도 함께 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중간에 서거나 수리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겁도 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수리비가 얼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금액을 들어봤자 싼지 비싼지 알 수가 없다. 결국은 병원처럼 ‘여기가 괜찮은 것 같애, 사람들도 믿을 만하고...’라는 식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매동 근처의 카센터를 두고 누가 일러준 분당동까지 간다.   우리의 상품구매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결국 판매자의 정보를 구매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정보 불균형(Information Asymmetry)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공급자와 소비자와의 불균형은 심해진다. TV 매장을 보라. 모든 제품이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이 선명한 화면을 보여줄 제품을 우리는 구별할 수 없다. 제품을 뜯어본들 알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곳은 바로 정치시장(선거)이다. 후보자는 공약, 정책, 인품 등을 판매하고 유권자는 투표로 구매한다. 여기는 상품시장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것은 보름도 채 안 되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과 만회가 허용되지 않는 일회성 경쟁, 그리고 2등을 인정하지 않는 승자독식 때문이다. 가히 전쟁(選擧戰)이다. 이 속에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고, 현란한 미사여구, 때로는 비방의 총격전도 이루어진다. 이 전쟁을 더 가열시키는 것이 불안정한 정치시장 시스템이다. 자동차나 보험상품 같은 일반 상품은 구매자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받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선거시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상품내용인 공약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유권자 피해에는 아무런 법적 처벌조항이 없다.     특히 구매자는 제품(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잘 알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 서울시장 선거는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다소의 판단근거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외의 모든 선거는 투표일에 당면해서 보내오는 홍보물 몇 개에 의존해야 한다. 그 홍보물도 학력, 재산 등 몇 가지 신상관련 조항 외에는 사실여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내용은 주로 호감 있게 보일 수 있는 인물촬영, 감각적인 슬로건, 유권자의 이익에 아부하는 선심성 개발 공약 등으로 채워진다. 이런 소비자(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 정치시장 환경은 정치적 무관심층을 양산하고, 보다 넓은 부동층을 만들어낸다. 이름 ‘가, 나, 다’ 순으로 복수 공천한 2006년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이름이 빠른 ‘가’번이 무더기로 당선되었고, 2010년 기호를 없앤 교육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맨 앞의 후보가 많이 당선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얼마나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면 단순한 시장관행에 의존해서 구매가 이루어졌겠는가?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비난받을 이런 규칙을 국가 대사에 만든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일반시장의 규칙은 시장사람들이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시장은 이해관계자가 규칙을 만든다. 여야가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다정한 친구가 된다. 규제받지 않는 독과점 행위이다. 이런 담합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그들의 안녕을 보장한다.    앞에서 말한 의사의 진료, 자동차 정비 외에 우리 동네 설렁탕 재료, 소주 첨가물, 화장품의 성분, 비듬샴푸의 효능 등 우리가 구매하는 것들 중 우리가 그 내용물을 잘 아는 것은 드물다. 대부분 이미지에 의존해 구매한다. 그러므로 판매자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정치인들처럼. 130년이나 된 코카콜라는 여전히 젊고, 에이스침대는 이제 가구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정작 필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내용(정보)이다. 기업이든 정치인이든 소비자를 위한다면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가 된다. 더 이상 ‘사랑해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유권자 여러분!’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같은 눈높이에 있어야 하니까.   새해에는 정치권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정보 통로가 넓어졌으면 한다. 서로를 잘 아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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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9
  • 단풍처럼 아름다운 선거
    탄천의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화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나뭇잎과 나뭇가지와 하늘과 땅의 다양한 색상이 어우러져 저마다 자신의 색깔을 자랑하면서도 함께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선거도 단풍 같은 것이 아닐까? 저마다 다른 자신의 정책과 주장을 펼치는 후보자들과 그들을 공정히 평가하여 선택하는 유권자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선거가 완성되니 말이다.    내년 3월 11일은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된다. 전국의 농협·수협·산림조합이 동시에 같은 날 조합장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그동안은 각각의 조합장의 임기만료일에 맞춰 실시되던 선거인데 공직선거처럼 같은 날에 실시하게 된 것이다. 조합장 선거는 농촌·어촌·산촌 지역경제의 장을 뽑는 선거로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공직선거에 비해 높은 편이다.   역설적으로 지역민들의 높은 관심으로 인해 선거가 지나치게 과열되어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선거인수가 공직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돈으로 표를 사는 금권선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지역 전체가 쑥대밭이 되기도 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조합장선거를 의무위탁 관리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위반행위 건수가 1,400여건에 달하고 그중 약 40%가 금품·음식물제공 관련 위법행위라는 사실이 조합선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합리적인 조합운영으로 조합원의 이익을 창출해야 할 조합장 후보자들이 개인돈을 써서 당선된다면 조합원들만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의 빈 곳간을 채우기 바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위법행위로 만약 당선이 됐다하더라도 반드시 적발되어 당선무효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재·보궐 선거에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손해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조합선거=돈선거’라는 오명을 벗고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성실히 일할 수 있는 지역경제의 장을 뽑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축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내년 3월 11일에는 탄천의 단풍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치러지기를 기대해 본다.     성남시분당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담당 남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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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07
  • 유레카 에세이 : 우리들의 교육투자, 새는 수돗물?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에서 바닥권에 있다. 세계 최고의 학구열,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황당한 결과다. 우리들의 교육투자가 새는 수돗물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글_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김지나 편집인 읽는 능력이 곧 이해하는 능력은 아니다 근래 페이스북에서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실질문맹률’에 관한 것이었다. 글의 출처를 따져보니 2005년 한 일간지 기사로 생각보다 오래전의 조사결과였다. ‘OECD 가입국 국민의 문서해독능력을 비교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꼴찌다’라는 게 내용의 요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문서해독능력이란 영수증,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약 설명서 등 일상적인 문서 내용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비교한 것을 말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늘 첨단정보를 접해야 하는 선진국 사회에서는 단순히 글씨 해독 능력을 보여주는 문맹률보다 ‘문서해독능력’이 바로 ‘실질문맹률’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 OECD에서 지난 1994년~1998년 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IALS)를 실시했고, 우리나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2001년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자체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독해 능력을 지닌(4단계) 사람은 2.4%에 불과해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캐나다 (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일상문서 해독력 한국인 최하위권’, 국민일보 기사 중 교육투자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야  실질문맹률 말고 문맹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제로에 가깝다. 전세계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던 대단한 성과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대학진학률도 월등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캐나다나 독일, 덴마크 같은 선진국 말고 체코(19.6%), 슬로베니아(5.3%)와 비교해도 그들 국가보다도 낮은 2.4%다. 여기서 말하는 4,5단계 문서해독능력이란 당연히 업무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런데 문맹률 제로인 한국이, 고학력 비율이 높은 우리가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결과는 황당함을 넘어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글로벌 인재’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로망이요, 교육계의 최고 목표다. 초연결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보자면 기업으로서는 글로벌 인재는 기업의 가치와 국가경쟁력을 이끌 초석인 셈이다. 당연히 부모들은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등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다른 지출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의 교육비 지출만큼은 최우선적으로 담보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결과를 놓고 보니 우리의 교육투자가 새는 수돗물이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과 진배없다. 한마디로 교육투자의 방향에 대한 회의가 든다.  사실 오래전부터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런 결과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영어를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가 영어 이전에 우리말 독해가 부족해서라고. 사회과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같은 과목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뭘까? 문자해독에 관한 것이니 손쉽게 독서교육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학원과 학교에서 행하는 독서교육을 보면 또 한번 회의가 든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미국 대학생들이 혹은 미국 고교생들의 필독서라고, 고전이라고 아이들에게 내놓은 도서목록을 떠올려보자.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들, 헤세의 명저들, <데미안> 등.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못 읽는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교과서 없이 만일 중세를 공부한다면 중세와 관련된 역사책, 소설책 등을 폭넓게 읽어나가며 학습한다. 이 아이들의 독서수준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 시스템을 당장에 도입할 수 없다면 독서교육의 방법론이 현실적이어야 한다. 고교생이라고 해서 비문학, 문학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어른들이 버려야 한다. 좋은 일본 만화도, 웹툰도, 그림책도, SNS에 회자되는 글도 모두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독서란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이 현재 우리 아이들의 수준과 걸맞아야만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값진 양분을, 깨달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산적한 문제는 보이는데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는 여전히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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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26
  • 독서당에서 온 편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를 듣고 자란 특정 세대들만의 바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앓는 회귀에의 향수병도 아닌 것 같습니다. 글_ 인문놀이터 독서당 최찬규 대표 떠남도 머무름도 모두 내 마음 속의 욕망 현대인을 뒤흔드는 전원생활에의 바람은 어째서일까요. 아마도 도시 속 치열한 경쟁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바람의 결과가 ‘전원생활’이라는 꿈을 꾸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여 현대인의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환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실제 전원에서의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경험담 말이지요. 개중에는 전원에서의 혹독한 삶을 경험하고는 부리나케 다시 도시로의 ‘탈출’을 감행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원의 삶을 꿈꾸도록 만든 사람은 ‘도화원기(桃花源記)’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연명은 짧은 정치 생활에 회의를 느껴 결국 가족이 있는 고향, 전원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지은 글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로 시작하는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입니다. 도연명은 과연 전원생활에 만족했을까요? ‘귀거래사’를 보면 도연명은 도시에서의 삶을 ‘육신의 노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을 더 멀리 가기 전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전원으로 돌아가 차라리 천명을 즐길 뿐, 의심치 않겠다고 글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귀거래사’ 마지막 구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樂夫天命復奚疑).’라는 구절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전원의 삶을 택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뭔가가 걸립니다. 자기 선택에 확신이 있다면 굳이 ‘의심치 않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도연명의 전원생활은 신선들의 삶처럼 유유자적한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자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면 고독감이 밀려왔지요. 도연명은 이러한 감정을 담아 ‘음주(飮酒)’라는 연작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도연명의 전원생활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한 집에서 홀로 고독을 맛보는 것, 그리고 고독을 인내하며 삶의 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옛날에도 세속적인 삶을 벗어난다는 것은 힘겨운 도전이었던 셈이지요. 사실,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개인의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은 삶의 ‘거리 두기’ 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이 어찌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의심 없이 찾아오는 것이 욕망이지요.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환상, 그것은 지친 현대인에게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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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12
  • 유레카 에세이 : 9시 등교
    낮잠도 잘 안 자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법도 거의 없었는데 요즘 주말 중에 하루는 잠에 취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야근이다 마감이다 분주한 일주일을 보낸 탓이겠지만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_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김지나 편집인 아이들의 성장에 보약보다 더 좋은 ‘잠’을 위하여 어느 토요일, 종일 잠에 취해 있다 딸아이한테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얘, 엄마가 늙었나 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잠이 쏟아진다.” 그러자 딸이 대답했다. “엄마, ‘수면빚’이라는 말이 있대.” “응? 그게 뭐야?” 단어의 조합이 낯설어서인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딸아이가 찬찬이 설명을 하는데,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걸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며칠 후 자료를 찾다가 <수면의 약속>이라는 책의 서평을 보았더니 개념을 정확하게 정리해주었다. ‘수면빚’은 수면부족이 계속 되면 마치 빚이 쌓이듯 ‘자야 할 잠’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또 ‘빚’이므로 언젠가 꼭 갚아야 하는 성질도 있다. 뇌는 2주까지 수면빚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주말에 잠에 취해 있던 것은 내가 게을러서거나 나이 탓이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업무가 늘어서 잠이 부족하다는 과학적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요일 11시 무렵에야 일어나 아침 같은 점심을 먹는 우리집 식구들도 모두 ‘수면빚’을 갚느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또 종종 학교에서 돌아와서 자느라 학원을 못가는 딸아이도 이 ‘수면빚’때문일 수도 있다.  내 휴대전화 알람은 몇 단계로 설정돼 있다. 이유는 잠에서 깨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이 몇 단계 알람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학교가 지척이라 8시 등교니 7시쯤 깨서 씻고 먹고 가면 될 것도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라 몸치장에 걸리는 시간이 꽤 길다. 그래서 6시에는 꼭 깨워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막상 깨우러 가면 혼수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야자를 하거나 학원수업을 하고 오면 거의 11시 무렵에야 집에 온다. 늦은 야식을 챙겨 먹고, 씻고, 잠깐 수다 떨면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거기에 수행평가를 비롯한 학교 과제가 겹치는 날에는 두세 시에 자는 경우도 제법 있고,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고 네 시경에 쪽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깨우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른들은 회사를 9시까지 가면서 왜 자기들은  8시까지 학교를 가야 하냐고 투덜거린 적도 많았다.  최근 미국에서 고교생들이 푹 잘 수 있도록 등교 시간을 늦추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등교 시간을 늦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고, 폭력 등 각종 사고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카페인, 알코올 섭취는 물론 마약 사용률 등이 잠을 덜 잔 학생들이 잠을 많이 잔 학생들보다 높게 나왔다고 한다. 수업을 늦게 시작한 미네소타 한 학군에서는 아침 수업의 평균 성취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소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들린다. 아이들의 꿀 같은 아침잠을 위해 경기도는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를 9시로 늦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들 100%가 9시 등교를 원하고 있으며, 제대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해서 9시 등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등교 시간이 늦춰지면 수업태도도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엎어져서 자는 학생이 태반이 교실 풍경도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새롭게 배운 지식이 숙면을 취해야 뇌에 제대로 분류되고 저장되기 때문에 청소년의 학업성취도에 수면의 질과 양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잠이 많아서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이나 학부모님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소탐하다 대실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학교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출근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9시 등교가 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험에서 한 아이가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등교시간에 오지 못해서 결시를 했단 말을 전해들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수면빚’을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9시 등교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시스템을 늦출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시스템일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문제점으로 떠오를 것들도 태반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과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성싶다. 더구나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인체의 놀라운 섭리가 이를 다 받아들여줄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9시 등교,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 찬성한다. 보다 중요한 원칙과 가치들이 더 견고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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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9
  • 그들의 잔치를 지켜만 볼 것인가?
    지난 1일 고양시 인구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도시 가운데 10번째다. 이로써 고양은 서울을 비롯해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수원, 창원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구 100만 10대 도시가 됐다. 고양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한다.   사실 필자는 배가 아프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디사세요?”라고 물어오면 필자는 자랑스럽게 “100만 도시 성남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왔기 때문이다.   고양과 비슷한 개발 여건 가운데에서도, 어쩌면 고양보다 한 발 앞선 도시라는 평가를 받아 온 성남은 현재 1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 97만8,357명(2014.06 통계)에 머물러있다.   오히려 성남의 인구수는 증가가 아닌 감소추세의 징후가 나타난다. 2013년 연말 성남시 인구통계에 따르면 분당구의 경우 2,379명이 늘어났지만, 수정구와 중원구는 3,556명이 감소하면서 총 1,177명이 줄었다.   그런데 성남시장의 담화문부터 성남시의원들이 발언했던 속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100만 도시, 100만 성남시민”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아직 100만 인구의 도시가 되지 않았으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는 성남시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반면, 100만 명의 도시가 되면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나마 공직자들에게 물어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정도라고 말한다. 위례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 성남시의 인구가 100만 명이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유입되는 양만큼 유출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소추세를 보이는 인구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대안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부터라도 시민사회와 공직사회, 정치권 등이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남시가 100만 인구 도시로 도약하려면 준비해야할 사안들이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인구수 감소징후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하고, 실행계획을 수립하면서 즉각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이웃도시 고양에서는 인구 100만 돌파를 자축하며 연일 잔치를 열고 있다고 한다. 성남시를 사랑하는 시민사회와 공직사회, 그리고 정치권에 묻고 싶다. 그들의 잔치를 지켜만 볼 것인가?   한채훈동국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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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04
  • “동일한 보험집단, 동일한 보험료 부과기준 적용해야”
    며칠 전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지역주민의 황당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내용인즉, 자녀 2명을 둔 40대 여성분이 얼마 전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간 생활비는 직장에 근무하는 남편의 월급으로 충당해왔고,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있었기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한다.   이혼 후 이 여성은 일정한 소득원 없이 직장 생활도 하지 않아 앞으로 자녀들과 살길이 막막한 처지인지라 2억 5천만원대의 아파트가 본인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역보험료 고지서가 나왔는데 직장보험료와는 다르게 재산가액이 보험료 부과자료로 책정되는 지역보험료 부과체계로 인하여, 직장보험료 보다 두 배가 넘는 보험료가 고지되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공단 지사에 확인하여 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해서 알아보니,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별로 부과기준이 7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장가입자가 실직하여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때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는 오히려 올라가는 등 납득하기 힘든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며, 이러한 부과체계관련 민원이 연간 5,70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공단에서도 심각함을 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 부과체계는 소득 확보율이 10%에 불과한 25년 전인 89년도의 부과체계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단다. 현재 소득 확보율이 92%대까지 올라갔는데도 아직까지 바꾸지 않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에서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구성되어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추세이고, 소득확보율이 92%대까지 올라간 지금이 바로 부과체계 개편의 적기라고 생각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부러워하고, 외국에서 우수사례로 벤치마킹하고 수출한다는데 이런 불합리한 부과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외국에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전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세밀하고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실직자가 양산되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가 오히려 더 올라간다면 국민의 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급히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고 형평성과 수용성이 확보된 보험료 부과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 전 국민이 동일한 보험내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동일한 보험재정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부과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해야 마땅하다. 모쪼록,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 법의 개정이야 말로 민생법안1호라고 생각한다.   성남시국민건강보험공단 남부지사 자문위원 성남시의회 의원   김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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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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