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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레카 에세이 : 우리들의 교육투자, 새는 수돗물?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에서 바닥권에 있다. 세계 최고의 학구열,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황당한 결과다. 우리들의 교육투자가 새는 수돗물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글_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김지나 편집인 읽는 능력이 곧 이해하는 능력은 아니다 근래 페이스북에서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실질문맹률’에 관한 것이었다. 글의 출처를 따져보니 2005년 한 일간지 기사로 생각보다 오래전의 조사결과였다. ‘OECD 가입국 국민의 문서해독능력을 비교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꼴찌다’라는 게 내용의 요지였다. 여기서 말하는 문서해독능력이란 영수증,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약 설명서 등 일상적인 문서 내용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비교한 것을 말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늘 첨단정보를 접해야 하는 선진국 사회에서는 단순히 글씨 해독 능력을 보여주는 문맹률보다 ‘문서해독능력’이 바로 ‘실질문맹률’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 OECD에서 지난 1994년~1998년 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IALS)를 실시했고, 우리나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2001년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자체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독해 능력을 지닌(4단계) 사람은 2.4%에 불과해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캐나다 (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일상문서 해독력 한국인 최하위권’, 국민일보 기사 중 교육투자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야  실질문맹률 말고 문맹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제로에 가깝다. 전세계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던 대단한 성과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대학진학률도 월등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캐나다나 독일, 덴마크 같은 선진국 말고 체코(19.6%), 슬로베니아(5.3%)와 비교해도 그들 국가보다도 낮은 2.4%다. 여기서 말하는 4,5단계 문서해독능력이란 당연히 업무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런데 문맹률 제로인 한국이, 고학력 비율이 높은 우리가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결과는 황당함을 넘어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글로벌 인재’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로망이요, 교육계의 최고 목표다. 초연결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보자면 기업으로서는 글로벌 인재는 기업의 가치와 국가경쟁력을 이끌 초석인 셈이다. 당연히 부모들은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등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다른 지출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의 교육비 지출만큼은 최우선적으로 담보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결과를 놓고 보니 우리의 교육투자가 새는 수돗물이거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과 진배없다. 한마디로 교육투자의 방향에 대한 회의가 든다.  사실 오래전부터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런 결과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영어를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가 영어 이전에 우리말 독해가 부족해서라고. 사회과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같은 과목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뭘까? 문자해독에 관한 것이니 손쉽게 독서교육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학원과 학교에서 행하는 독서교육을 보면 또 한번 회의가 든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미국 대학생들이 혹은 미국 고교생들의 필독서라고, 고전이라고 아이들에게 내놓은 도서목록을 떠올려보자.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들, 헤세의 명저들, <데미안> 등.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못 읽는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교과서 없이 만일 중세를 공부한다면 중세와 관련된 역사책, 소설책 등을 폭넓게 읽어나가며 학습한다. 이 아이들의 독서수준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 시스템을 당장에 도입할 수 없다면 독서교육의 방법론이 현실적이어야 한다. 고교생이라고 해서 비문학, 문학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어른들이 버려야 한다. 좋은 일본 만화도, 웹툰도, 그림책도, SNS에 회자되는 글도 모두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독서란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이 현재 우리 아이들의 수준과 걸맞아야만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값진 양분을, 깨달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산적한 문제는 보이는데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는 여전히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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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26
  • 독서당에서 온 편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를 듣고 자란 특정 세대들만의 바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앓는 회귀에의 향수병도 아닌 것 같습니다. 글_ 인문놀이터 독서당 최찬규 대표 떠남도 머무름도 모두 내 마음 속의 욕망 현대인을 뒤흔드는 전원생활에의 바람은 어째서일까요. 아마도 도시 속 치열한 경쟁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바람의 결과가 ‘전원생활’이라는 꿈을 꾸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여 현대인의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환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실제 전원에서의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경험담 말이지요. 개중에는 전원에서의 혹독한 삶을 경험하고는 부리나케 다시 도시로의 ‘탈출’을 감행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원의 삶을 꿈꾸도록 만든 사람은 ‘도화원기(桃花源記)’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연명은 짧은 정치 생활에 회의를 느껴 결국 가족이 있는 고향, 전원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지은 글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로 시작하는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입니다. 도연명은 과연 전원생활에 만족했을까요? ‘귀거래사’를 보면 도연명은 도시에서의 삶을 ‘육신의 노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을 더 멀리 가기 전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전원으로 돌아가 차라리 천명을 즐길 뿐, 의심치 않겠다고 글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귀거래사’ 마지막 구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樂夫天命復奚疑).’라는 구절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전원의 삶을 택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뭔가가 걸립니다. 자기 선택에 확신이 있다면 굳이 ‘의심치 않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도연명의 전원생활은 신선들의 삶처럼 유유자적한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자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면 고독감이 밀려왔지요. 도연명은 이러한 감정을 담아 ‘음주(飮酒)’라는 연작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도연명의 전원생활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한 집에서 홀로 고독을 맛보는 것, 그리고 고독을 인내하며 삶의 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옛날에도 세속적인 삶을 벗어난다는 것은 힘겨운 도전이었던 셈이지요. 사실,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개인의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은 삶의 ‘거리 두기’ 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이 어찌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의심 없이 찾아오는 것이 욕망이지요.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환상, 그것은 지친 현대인에게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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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12
  • 유레카 에세이 : 9시 등교
    낮잠도 잘 안 자고,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법도 거의 없었는데 요즘 주말 중에 하루는 잠에 취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야근이다 마감이다 분주한 일주일을 보낸 탓이겠지만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_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 김지나 편집인 아이들의 성장에 보약보다 더 좋은 ‘잠’을 위하여 어느 토요일, 종일 잠에 취해 있다 딸아이한테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얘, 엄마가 늙었나 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잠이 쏟아진다.” 그러자 딸이 대답했다. “엄마, ‘수면빚’이라는 말이 있대.” “응? 그게 뭐야?” 단어의 조합이 낯설어서인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딸아이가 찬찬이 설명을 하는데,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걸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며칠 후 자료를 찾다가 <수면의 약속>이라는 책의 서평을 보았더니 개념을 정확하게 정리해주었다. ‘수면빚’은 수면부족이 계속 되면 마치 빚이 쌓이듯 ‘자야 할 잠’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또 ‘빚’이므로 언젠가 꼭 갚아야 하는 성질도 있다. 뇌는 2주까지 수면빚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주말에 잠에 취해 있던 것은 내가 게을러서거나 나이 탓이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업무가 늘어서 잠이 부족하다는 과학적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요일 11시 무렵에야 일어나 아침 같은 점심을 먹는 우리집 식구들도 모두 ‘수면빚’을 갚느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또 종종 학교에서 돌아와서 자느라 학원을 못가는 딸아이도 이 ‘수면빚’때문일 수도 있다.  내 휴대전화 알람은 몇 단계로 설정돼 있다. 이유는 잠에서 깨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이 몇 단계 알람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이다. 학교가 지척이라 8시 등교니 7시쯤 깨서 씻고 먹고 가면 될 것도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달라 몸치장에 걸리는 시간이 꽤 길다. 그래서 6시에는 꼭 깨워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막상 깨우러 가면 혼수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야자를 하거나 학원수업을 하고 오면 거의 11시 무렵에야 집에 온다. 늦은 야식을 챙겨 먹고, 씻고, 잠깐 수다 떨면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거기에 수행평가를 비롯한 학교 과제가 겹치는 날에는 두세 시에 자는 경우도 제법 있고, 아예 밤을 꼬박 새우고 네 시경에 쪽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깨우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어른들은 회사를 9시까지 가면서 왜 자기들은  8시까지 학교를 가야 하냐고 투덜거린 적도 많았다.  최근 미국에서 고교생들이 푹 잘 수 있도록 등교 시간을 늦추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등교 시간을 늦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고, 폭력 등 각종 사고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카페인, 알코올 섭취는 물론 마약 사용률 등이 잠을 덜 잔 학생들이 잠을 많이 잔 학생들보다 높게 나왔다고 한다. 수업을 늦게 시작한 미네소타 한 학군에서는 아침 수업의 평균 성취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소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들린다. 아이들의 꿀 같은 아침잠을 위해 경기도는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를 9시로 늦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들 100%가 9시 등교를 원하고 있으며, 제대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해서 9시 등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등교 시간이 늦춰지면 수업태도도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엎어져서 자는 학생이 태반이 교실 풍경도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새롭게 배운 지식이 숙면을 취해야 뇌에 제대로 분류되고 저장되기 때문에 청소년의 학업성취도에 수면의 질과 양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잠이 많아서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이나 학부모님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소탐하다 대실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학교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출근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9시 등교가 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험에서 한 아이가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등교시간에 오지 못해서 결시를 했단 말을 전해들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라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수면빚’을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9시 등교가 아니라 과도한 경쟁시스템을 늦출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시스템일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문제점으로 떠오를 것들도 태반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과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성싶다. 더구나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인체의 놀라운 섭리가 이를 다 받아들여줄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9시 등교,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 찬성한다. 보다 중요한 원칙과 가치들이 더 견고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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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9
  • 그들의 잔치를 지켜만 볼 것인가?
    지난 1일 고양시 인구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도시 가운데 10번째다. 이로써 고양은 서울을 비롯해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수원, 창원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구 100만 10대 도시가 됐다. 고양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한다.   사실 필자는 배가 아프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디사세요?”라고 물어오면 필자는 자랑스럽게 “100만 도시 성남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왔기 때문이다.   고양과 비슷한 개발 여건 가운데에서도, 어쩌면 고양보다 한 발 앞선 도시라는 평가를 받아 온 성남은 현재 1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 97만8,357명(2014.06 통계)에 머물러있다.   오히려 성남의 인구수는 증가가 아닌 감소추세의 징후가 나타난다. 2013년 연말 성남시 인구통계에 따르면 분당구의 경우 2,379명이 늘어났지만, 수정구와 중원구는 3,556명이 감소하면서 총 1,177명이 줄었다.   그런데 성남시장의 담화문부터 성남시의원들이 발언했던 속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100만 도시, 100만 성남시민”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아직 100만 인구의 도시가 되지 않았으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는 성남시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반면, 100만 명의 도시가 되면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나마 공직자들에게 물어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정도라고 말한다. 위례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 성남시의 인구가 100만 명이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유입되는 양만큼 유출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소추세를 보이는 인구를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대안논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부터라도 시민사회와 공직사회, 정치권 등이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남시가 100만 인구 도시로 도약하려면 준비해야할 사안들이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인구수 감소징후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하고, 실행계획을 수립하면서 즉각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이웃도시 고양에서는 인구 100만 돌파를 자축하며 연일 잔치를 열고 있다고 한다. 성남시를 사랑하는 시민사회와 공직사회, 그리고 정치권에 묻고 싶다. 그들의 잔치를 지켜만 볼 것인가?   한채훈동국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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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04
  • “동일한 보험집단, 동일한 보험료 부과기준 적용해야”
    며칠 전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지역주민의 황당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내용인즉, 자녀 2명을 둔 40대 여성분이 얼마 전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간 생활비는 직장에 근무하는 남편의 월급으로 충당해왔고,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있었기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한다.   이혼 후 이 여성은 일정한 소득원 없이 직장 생활도 하지 않아 앞으로 자녀들과 살길이 막막한 처지인지라 2억 5천만원대의 아파트가 본인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역보험료 고지서가 나왔는데 직장보험료와는 다르게 재산가액이 보험료 부과자료로 책정되는 지역보험료 부과체계로 인하여, 직장보험료 보다 두 배가 넘는 보험료가 고지되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공단 지사에 확인하여 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해서 알아보니,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별로 부과기준이 7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장가입자가 실직하여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때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는 오히려 올라가는 등 납득하기 힘든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며, 이러한 부과체계관련 민원이 연간 5,70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공단에서도 심각함을 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 부과체계는 소득 확보율이 10%에 불과한 25년 전인 89년도의 부과체계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단다. 현재 소득 확보율이 92%대까지 올라갔는데도 아직까지 바꾸지 않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에서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구성되어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추세이고, 소득확보율이 92%대까지 올라간 지금이 바로 부과체계 개편의 적기라고 생각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부러워하고, 외국에서 우수사례로 벤치마킹하고 수출한다는데 이런 불합리한 부과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외국에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전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세밀하고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실직자가 양산되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소득이 없는데도 보험료가 오히려 더 올라간다면 국민의 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급히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고 형평성과 수용성이 확보된 보험료 부과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 전 국민이 동일한 보험내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동일한 보험재정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부과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해야 마땅하다. 모쪼록,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 법의 개정이야 말로 민생법안1호라고 생각한다.   성남시국민건강보험공단 남부지사 자문위원 성남시의회 의원   김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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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04
  •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학기말 고사가 얼마 전 끝났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다. 지치고 예민한 아이들을 대하는 게 영 편치 않고 참아야 할 것도 많아서 아이들이 느끼는 해방감 못지않게 부모님들이 느끼는 해방감도 크다. 글_유레카논술 김지나 편집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에 있다 고1 딸아이는 중학교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시험기간을 보냈다. 짜증도 덜하고 예민함도 덜하고. 하지만 애초의 목표만큼 매진하는 것 같지 않았고, 시종일관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 역시 시험기간 동안 딸아이에게 주문한 것은 한 가지였다.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멘탈 관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시험이 인생의 전부도 아닌데 과도한 히스테리 보이기 없기. 그리고 며칠 후, 시험을 치른 딸아이가 내게 쿨하게 통보해왔다. “이번 학기말 성적표는 보여주지 않을 거야.” 나는 딸아이의 통보에 역시 ‘쿨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다음 시험 결과만큼은 꼭 보여 달라는 말만 덧붙였다. 아니 오히려 아이의 통보가 마음에 들었다. 이 통보는 중요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시험결과가 제 보기에도 신통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다음 시험에는 더 열심히 해서 내게 성적표를 보여줄 만하게 만들겠다는 본인의 각오가 섞여 있는 것이다. 딸 아이는 자신의 시험결과에 대해 ‘평가’(생각)한 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생각과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에 있다.” 미국의 사상가요 시인인 에머슨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숱한 활동 중에는 사고(생각)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지, 거부할지,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누가 친구이고 적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고,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는지…. 따라서 사고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얼마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며 경희대 명예교수인 도정일 교수가 일간지에 쓴 칼럼을 읽었다. 칼럼 내용은 강의가 끝나고 강의보고서를 요구한 동료 교수에 대한 얘기였다. 이 교수가 요구한 강의보고서는 자신이 한 학기 동안 했던 강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지식)에 대해 쓰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 강의를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었다.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니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했고, ‘생각하기’를 처음 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고 한다. 학생들은 초중고 12년 동안 “우리는 어떤 문제를 우리 머리로 찾아내본 일이 없고,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이나 응답을 우리 머리로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단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새삼 놀랐다. 지식의 지위가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굳이 자기 머릿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을뿐더러 이미 그 양이 무한한 까닭에 숙지하려고 해도 숙지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정보의 숙지만을 강요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점수와 스펙을 따려면 생각 따위는 뒤로 미루고 오로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고의 질이란 주어진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목표,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의 사고를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고의 질을 높이는 것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육체적인 건강을 얻기 위한 단련을 생각해보자. 땀을 흘릴 만큼, 숨이 턱에 찰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오지 않으면 성취도, 단련도 없다. 대부분 육체적 단련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사고기량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고통을 참아낼 의지가 없으면 사고의 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주어진 대로 사고하지 않고 제 힘으로 생각해보는 일은 의외로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생각하기’를 가르치는 교육은,  진보적인 교육도 아니요 보수적인 교육도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힘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학생들의 고백을 들으며 교육의 틀을 바꿔내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일보도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각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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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25
  • 독서당에서 온 편지
    안회는 공자가 가장 총애했던 제자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옹야편’에는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안회의 경지를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공자 자신도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논어>에 공자가 또 다른 제자 자공에게 스스로도 안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너스레 떠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근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글_인문놀이터 독서당 최찬규 대표 안회가 궁핍 속에서도 불행하지 않았던 까닭  그렇다면 안회는 어떻게 궁핍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안회가 도(道)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도는 어떤 초월론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깨닫고 묵묵히 실천해 나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수양론적인 것이다. 즉, 내 삶에 윤리적인 준거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물질적인 것에 생(生)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  사실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삶의 표본들도 이미 역사에서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웠으며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  결국 현대 사회가 자기 삶의 윤리적인 준거를 세우고 실천해 나가기에는 물질적인 욕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적인 욕망을 이겨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비록 안회가 다시 살아오더라도 과연 이 유혹을 이길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대한민국은 지금 고위 공직 후보들을 두고 청문회가 한창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매번 되풀이 되는 도돌이표 같다. 특히, 편법적인 부의 축적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오히려 그러한 비상식적인 부의 축적이 상식이 된 것이 이미 오래 전이다. 심지어는 윤리적인 기준을 낮추어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도덕보다는 능력을 살펴달라고도 호소한다.  “어질다, 안회여!”라고 시작하는 문장이 더욱 애절하게 읽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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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4-07-11
  • 아이들에게 휘두르는 어른의 초라한 권력
    아이들의 입에 교사와 학부모가 얼마나 험하게 오르내리는지 익히 알고 있다. 입에 옮길 수조차 없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어른들은 혀를 찬다.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평하는지 되돌려 생각해보면, 표현의 수위야 다르겠지만 역지사지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글_유레카논술 김지나 편집인 지금,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 전 일이다. 여고 1학년인 딸아이가 비분강개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팀을 이뤄 수행평가를 한 친구들에 대한 얘기였다. 아이의 친구들은 빅데이터가 공공부문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 문항을 만들었는데, 정말로 열심히 논의하고 자료를 모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설문조사를 할 요량으로 질문지를 들고 교무실을 찾았을 때, 한 교사가 대뜸, “이거 너희들이 한 거 맞아?”하고 물었단다. 순간 다른 선생님들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보았고, 당연히 조사에 제대로 응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었다. 담당 교사는 내용이 부실하다며 면박을 주었고, 교사의 면박에도 아이들이 다시 해올 테니 검토해 주십사 청하자, 그걸 내가 왜 하냐며 돌려보냈더란다.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았고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더라고 했다.  나 역시 아들아이가 중학생일 때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학교과제로 제출한 아들아이의 글을 보더니,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라며 아이를 추궁했고, 아이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일로 담임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기억이 난다.  그날 딸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설문에 응해달라며 문제의 질문지를 내밀었다. 설문 내용은 공공부문에서의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찬반과 효과 등에 관한 거였다. 문항 중에는, 환자들의 병력과 관련된 데이터를 병원들이 공유한다면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를 묻는 물음도 있었다. 물론 이 문항의 경우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전제돼 있어야 한다.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인 병력이 노출될 경우 환자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적이고 평범한 질병에 한해야 한다는 조건 같은 게 필요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아이들의 문제의식은 날카로웠고, 전문가의 견해로 보면 불충한 점이 있지만, 충분히 진지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 주제를 다루려고 했는지 기특하기까지 했다.  물론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와 유사한 고약한 ‘정황’들을 숱하게 겪었을 것이고, 이 경험의 축적이 이와 같은 판단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할 때는 판단이 백배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한다. 하물며 중고등학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행동의 성숙은 없지만 사고는 성숙한 시기다. 그 성숙한 사고가 입시의 중압감과 자유롭지 않은 교육과 지나친 부모의 기대 때문에 심연 아래에 숨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자존심과 아이들의 열의를 교사가, 학부모가 무참하게 밟고, 아이들의 모욕에 둔감할 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어른들을 대화의 상대에서 아웃시켜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예닐곱 살 꼬마일 적에 시장을 데려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좁은 시장골목으로는 어른들이 분주히 오갔고,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들의 가방에, 어른들의 팔에 부딪쳐 휘청 넘어질 뻔 했었다. 바쁜 어른들에게는 작은 아이들이 성가신 존재이거나 대수롭게 눈에 뜨이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해서 내가 예닐곱 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고 위압적인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대한 어른들의 숲에서 불안정하게 걷고 있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른들의 작은 행동들이 두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어른들은 신체적으로도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관해서는 경제력과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며칠 동안 마음에 밟혔다. 안산에 사는, 학교는 다르지만 어울려 다니던 절친 스물한 명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세 친구의 영정사진을 들고 찍은 우정의 사진이 그것이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슬픔도, 환함도 아니었다. 그 복잡한 심경들이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게 아이들이며, 이것이 아이들의 힘이다. 이 순수한 힘을 모른 체하고, 교사와 학부모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향해 그 초라한 권력을 휘두를 때 아이의 미래도, 우리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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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6
  • 틈새상품 찾기
    금융기관의 고민 거리 중 하나가 저금리시대에 낮은 이율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에게 조금이라도 만족을 드리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큰 예금보다 작은 예금’에 높은 금리를 제공해서 많은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역발상의 대표주자가 하나은행의 ‘하나리틀빅 정기예금’이다. 이 상품은 기본금리 연 2.65%에 체크카드 발급, 신용카드 사용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우대금리를 포함해 최고 연 3.45%의 높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1인당 최고가입금액이 50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스마트폰이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모바일 금융 비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뱅킹은 아직도 예금잔액 확인, 자금이체 등에 주로 이용되고 있지만 금융상품 가입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모바일뱅킹 이용이 점차 중장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맞춰서 은행들은 스마트폰 뱅킹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창구에서 가입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가입시 좀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의 ‘KB스마트폰적금’은 기본금리가 연 2.80%이고 각종 조건을 충족하면 최고 연 0.2%포인트를 추가로 적용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의 ‘우리 스마트폰 적금’의 기본금리는 연 3.1%이고 ‘우리 꿈통장’과 연결해 가입하면 연 0.2%포인트를 더할 수 있다.   신한은행의 ‘북21지식 적금’은 기본금리 연 2.7%에 조건 충족시 우대금리 연 0.4%포인트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하나은행의 ‘N플러스 정기예금’은 스마트뱅킹 전용 정기예금 상품으로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내로 1인당 1계좌만 가입이 가능하다. 가입기간별 예금금리는 6개월~23개월은 연 2.8%, 24개월~35개월은 연 2.85%, 36개월은 연 2.90%이다.   김성엽 하나은행 분당중앙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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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3
  • 독서당에서 온 편지
    공자를 실패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공자가 이상주의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패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주의 사상, 즉, 유토피아 사상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실현불가능성과 지속성이 그것이다. 유토피아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실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세계가 언젠가는 실현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지속성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유지되는 이상 유토피아 사상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유토피아 사상의 핵심은 실현불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에 있다.  글_인문놀이터 독서당 최찬규 대표 공자가 꿈꾸었던 ‘인(仁)’의 나라 그렇다면 공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일까? 공자는 인(仁)의 나라를 꿈꾸었다. 하지만 동양 역사 어디에도 인의 나라가 완성되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시도는 있었다. 조선(朝鮮)이 바로 그 나라이다. 하지만 조선은 실패한 이상 국가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동북아의 4나라, 중국, 일본, 한국, 북한은 유가의 이데올로기를 통치 수단으로 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는 헌법에 민주제와 공화제를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수사에 불과한 것 같다. 세습과 선양(禪讓), 현실 권력에 의한 정치의 독점이 현실이다. 여전히 공자의 인의 정치가 실현될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결코 실패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유령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상주의자 공자는 대체 어떤 나라를 꿈꾸었을까? 알려진 것처럼 공자는 자기 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그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공자와 그 제자들이 주고받은 문답의 기록인 <논어>의 문장들을 통해 짐작해 볼 뿐이다. <논어> 공야장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핵심 제자 안회와 자로와 더불어 문답을 나누는 중에 자로가 공자에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 장면이다. 이에 공자는 이런 답을 한다.  “老者安之, 朋友信之, 小子懷之.”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 <논어>, 공야장편 풀이하면 이렇다.  “노인은 편안하고, 장년(뜻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는 연령대)은 서로 믿으며, 어린이들은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좋은 문장이다. 상상해 보면, 충분히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공자가 원하는 세계는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그렇다. 우선 한국의 노인들은 편안하지 못하다. 노인 인구 60%가 빈곤층이라는 조사도 있다. 기초연금 1~2만원을 더 받자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늙음의 상징인 너그러움과 성숙한 인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인세대는 정치적 갈등의 중요한 축이 되어버렸고, 해소되지 않은 불만을 방화라는 사회적 폭력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어느덧 한국은 노인이 되는 것이 두려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장년층의 삶도 팍팍하다. 실업의 공포와 주택문제, 자녀들의 교육비 문제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40대는 몸이 아파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다.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우리 아이들은 충분한 보살핌을 받고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그렇지 못하다는 아픈 증거가 되었다. 얼마 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은 저마다 아이들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충분히 지쳐 있다.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얼마나 더 많은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아이들이 물려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을 교육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오히려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탐욕을 채워주는 역할로서의 교육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공자가 꿈꾸는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 나라는 아직도 공자를 그리워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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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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