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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기행 - 운남성 여강 2
▶라히고악을 연주하는 모습라히에게 차는 평화의 약속이며 음악은 평화를 노래하는 역사이다.중국 운남성 서북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 여강(麗江)은 태양의 무리라는 이름을 가진 라히족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라히족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평화로우며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낯선 이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친구를 반기는 양 기쁘게 맞아줍니다. 해질녘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광장 사방가(四方街)에서는 라히족 사람들과 각국의 이방인들이 같이 어울려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반가움과 서로 만난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라히족에게는 과거 큰 아픔이 있었으며, 그 아픔을 겪게 된 원인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의미로 평화를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옛날 여강에 라히족이 정착할 무렵, 이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검은 물(黑水)에 기대어 살던 ‘검은 라히’와 흰 물(白水)에 기대어 살던 ‘흰 라히’가 일으킨 흑백대전이 그것입니다.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피는 바다를 이루는 문자 그대로 시산혈해를 이루었습니다. 마침내 검은 라히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참혹한 전쟁의 결과 라히족은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많았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이들은 전쟁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하게 되었으며 라히의 문화와 역사는 이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 피어낸 결과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전쟁이든지 모든 싸움을 가장 큰 죄악으로 간주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대지에서 가장 평화로운 문화를 가꾸어 왔던 것이지요. 의복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말이 달라도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의 마음은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역사상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수십만 대군이 여강을 쳐들어왔을 때에 이들은 무기 대신에 악기를 들고 몽골의 대군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평화의 노래는 마침내 몽골군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그들의 땅을 빼앗되 감히 그들의 목숨을 다치게 하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검은 라히와 흰 라히의 큰 전쟁을 치루고 나서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함께 평화를 약속하던 자리에 약속의 신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차’였습니다. 이들에게 차는 평화의 약속이며 공존과 희망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겨울 찬바람이 매서운 새벽 보이차 따뜻하게 우려마시다가 불현듯 제갈공명과 운남의 지도자 맹획이 의형제를 맺은 증표(石鼓)가 있는 여강 석고진을 방문했을 때 가녀린 손으로 금(琴)을 연주하며 가냘픈 목소리로 산파양(山坡羊) 등의 노래를 들려주던 여인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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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차호(紫砂茶壺)
보이차를 우려내는 도구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단연 자사차호입니다. 자사차호는 자사(紫砂)라는 일종의 특수한 도토(陶土)를 재료로 하고 유약을 바르지 않아 통기성이 뛰어납니다. 자사는 중국의 동남부에 위치한 장쑤성 이싱시에서 출토되고, 수운모와 고령토, 석영, 운모편, 철성분 등 광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띄고 있는 색깔은 주요하게 자니(紫泥), 녹니(綠泥), 홍니(紅泥) 등 3종이 있습니다. 이를 통칭해서 ‘자사니’라고 부르고 소성해서 차호를 비롯한 여러 도기를 만들게 됩니다. 자사차호는 중국 당송시대에 시작해서 명나라 이후 차를 달여 마시는 문화에서 우려 마시는 문화로 바뀌면서 중국 차문화의 주류로 등장하게 됩니다. 실용성면에서 자사차호는 이중으로 된 기공이 있어서 통기성이 뛰어나게 되며 차가 지닌 본래의 맛과 향을 뺏지 않고 보온력이 뛰어나 최고의 차도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사차호는 실용품이면서도 동시에 예술품으로서 2006년 중국 비물질문화유산 1호로 등재되었고, 2009년 세계문화유산후보로도 등록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사가 출토되는 이싱시는 7천여년의 도자역사를 지닌 중국의 도자중심이자 우관중(吳冠中), 쉬페이홍(徐飛鴻) 등 대화가를 배출한 중국서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이러한 자사차호와 관련해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장쑤성이싱자사공예창이 주최하고 한중도자문화교류기지에서 주관하며 이싱시인민정부, 이싱도자행업협회, (사)한국도자문화협회 등이 후원하는 중국 장쑤성이싱자사공예창(이하 이싱자사창) 한국전이 ‘자사예술 : 전통과 창신’이라는 주제로 국내에서 열린다는 소식입니다. 금번 한국전시전에는 근대 자사공예의 발상지로 불리는 이싱자사창 소속 작가 60인의 작품이 전시되고 바오즈창(鮑志强) 중국공예미술대사를 비롯 28명의 고급공예미술사와 이싱시 정부관계자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는 중국 단일 예술종목으로는 제일 큰 해외행사라고 하니 사뭇 기대가 됩니다. 이싱자사창은 일명 ‘자사1창’으로 불리며 근대 자사차호의 태두인 꾸징저우 대사를 비롯 중국공예미술대사의 요람이기도 합니다.2011년 12월 21일(수)부터 27일(화)까지 7일 동안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전시가 되니 보이차 동호인 뿐만 아니라 도자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참관하기를 권합니다. 지유명차 분당서현점 031-708-5634 여러 작품의 자사차호 모습-동매호(冬梅壺) 조완분(장쑤성공예미술대사)-석표호(石瓢壺) 범건군(장쑤성공예미술명인)-천년홍(千年紅) 범위군(고급공예미술사)-권호(權壺) 오숙영(고급공예미술사)-신곡호(晨曲壺) 오용(공예미술사)-서시호(西施壺) 서영비(공예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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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보이차 기행 - 운남성 여강 1
세계문화유산, 리쟝(여강)의 여러 모습들 중국은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입니다. 그 가운데 운남성에만 26개의 소수민족이 모여살고 있으니 보이차의 고향, 운남은 민족박물관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운남의 서북쪽에는 나시족(納西族, 해당민족의 발음으로는 ‘라히’족)이 많이 모여 사는 리쟝(여강)이 있습니다. 리쟝은 우리나라의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곳으로 해발 2,400미터 이상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보존가치가 높고 외지인에게는 판타지를 불러 일으킬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들의 말은 옛 우리말과도 유사한 것이 많아 더더욱 관심이 갑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자신의 민족 이름을 한족의 발음인 ‘나시’보다는 ‘라히’로 부르는데 이는 태양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옛 우리말에 ‘라’는 해를 뜻하고, ‘히’(또는 희)는 우리말 ‘저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복수(둘 이상의 수)를 뜻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펴보면 비슷한 예가 많이 있는데 이는 그들이 과거 우리와 같은 북방아시아계의 하나의 민족인 ‘강족’의 후손이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따름입니다.리쟝마을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정도로 문화적으로 매우 유서 깊고 보존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옛 건축물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으며 특히, 마을전체를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을북쪽의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세갈래로 갈라져서 마을 전체를 돌아 흘러들어가고 이는 대부분의 집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물줄기의 가장 윗줄기는 마시는 물로, 가운데 줄기는 밥하는 물로, 가장 아래의 줄기는 빨래하는 물로 사용했다고 하니 과거 라히족의 수리(水利)시설 축조능력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마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 시팡지에)는 차 상업무역의 중심이었으며, 모든 정상적인 거래는 이곳 사방가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사방가의 길바닥은 오화석(五花石)이라고 불리는 붉은색 돌로 되어있어 비가 와도 흙이 묻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오늘날 사방가는 현지 주민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어울려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는 한마당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리쟝의 밤거리는 낮의 모습과는 다른 환상적인 모습을 그려냅니다. 가게마다 식당마다 거리에 붉은빛의 등들이 켜지는데 이 모습이 낯설지 않아 기억을 떠올려보니 미야자키하야오감독의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유명한 일본 만화영화의 배경이 이와 유사합니다. 실제로 감독이 리쟝의 모습을 보고 만화영화에 반영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쟝은 장이모우감독의 ‘천리주단기’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리쟝의 고대마을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물길과 오래된 건물, 옛 거리, 고풍스런 돌다리, 늘어진 가지의 나무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어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리며 세계의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용주선생은?보이차와 건강을 주제로 한 칼럼 및 강좌를 통해 보이차의 보건효능과 즐거운 차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으며 현재 국내최대 보이차 명가인 지유명차 분당서현점을 운영하고 있다.지유명차 분당서현점 031-708-5634 블로그 http://os03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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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선생의 보이차이야기-보이차의 제차(製茶)과정
- 보이차는 제조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하나는 생차(生茶)이고, 다른 하나는 숙차(熟茶)로 생차의 경우 전통적인 제조기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보이차이고, 숙차는 속성발효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보이차를 일러 부르는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생차는 만든 지 1년, 2년 지나서 마셔도 무방은 하지만 적어도 7~8년 이상은 잘 보관되어야 보이차 특유의 맛과 향 등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7~8년 이상을 묵힌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속성으로 발효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내게 되는데 이를 일러‘악퇴(渥堆)’방식이라 하고 이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차가 숙차입니다. 숙차도 또한 만든 지 1년, 2년 지나서 마셔도 무방합니다만 적어도 3~5년 이상은 묵혀야 잘 익은 숙차의 맛과 향을 내게 됩니다. 그래도 생차에 비하면 빠른 시간 내에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셈이지요. 생차이든지 숙차이든지 보이차를 음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보이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와 녹차의 제조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는데 금번 지면에서는 생차를 중심으로 한 제조과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찻잎을 따야 하겠지요. 찻잎은 봄, 여름, 가을에 걸쳐서 따게 되는데 봄에 딴 찻잎을 최고로 치는 녹차와 달리 내림의 기운을 주로 하는 보이차의 경우에는 오히려 너무 어린 잎의 춘차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어 채엽한 찻잎을‘시들이기’를 하는데 이를 ‘위조(萎凋)’라고도 합니다. 다음으로 녹차의 경우에서처럼 ‘살청(殺靑)’ 과정을 거치는데 전통적인 보이차의 경우 살청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살청을 하더라도 찻잎에 미치는 온도가 70~80℃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이보다 높은 온도는 미생물 발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에 조심하여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살청을 끝내고 찻잎을 비비는 과정을 거쳐 찻잎속 성분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이후 수분을 건조하기 위해 반드시 햇빛에 널어 말리는 ‘쇄청건조’를 하게 됩니다. 쇄청건조는 보이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므로 기계를 통해 수분을 건조하는 등의 방식은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쇄청건조를 끝낸 차를 일러‘모차(毛茶)’라고 하는데 모차상태로 적어도 6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이상을 잘 보관해야 미생물발효가 제대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후 이러한 모차를 가지고 여러 모양 즉, 둥그런 모양의 병차, 네모난 모양의 전차, 사발 엎어놓은 모양의 타차 등으로 덩어리 지어서 포장을 한다음 시장에 내놓게 됩니다. 보이차의 여러 모양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이와 관련하여서는 기회가 되는 때에 따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유명차분당서현점문의 031-708-5634블로그 http://os031.blog.me중국 운남성 대엽종 찻잎보이차는 춘차, 하차, 추차 등의 다양한 찻잎으로 만들어지며, 녹차와 달리 너무 어린 봄잎은 적합하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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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선생의 보이차이야기-보이차의 제차(製茶)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