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7(일)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10.10 14:51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dcdd82f5498e239a848d4ce9b4a6b159_9nMjVhcNt3zmhB.jpg


[아이디위클리]지금으로부터 49년 전 성남초등학교 뒤편 공터에 5만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양택식 서울시장으로부터 단지문제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단지문제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는 극한의 생존상황(전성천의 회고록에는 1주일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과 정부-서울시가 부과한 무리한 땅값과 세금문제 두 가지와 관련된다. 이런 문제 상황은 정부-서울시의 신도시 건설정책에서 비롯된다. “선입주 후건설”이라는 카피가 그 정책의 전략을 요약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먼저 입주시키고 개발지의 땅값을 올려 그 수익금으로 도시기반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기막힌 기획인 것이다. 요컨대 정부가 땅장사해서 번 돈으로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넘쳐나는 사람들이 필요했었다. 그러면 입주와 건설 사이의 기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10만 명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뜯어 먹고 산다.”라는 시장에나 떠돌아다니는 말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철학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서울시에 해결책을 요구했고 그 시장은 직접 얘기를 나눠보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됐든 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게는 1년 반 이상을 목숨 걸고 참아왔던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한계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상대가 무지막지한 군사정권이었다는 사실은 폭발의 정도가 무시무시했다는 사실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관공서와 관용차를 불태우고 청와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나아가는 사진들은 폭력의 정치학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다. 청와대는 이들의 요구들을 들어줄 것을 서둘러 명령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이 사건의 맥락이다.


이 사건이 한국 최근세사에서 차지하는 장소는 빈민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측면과 박정희 ‘조국근대화’ 담론의 텅 빈 공간을 여실히 드러내는 곳에 위치한다. 절대 권력에 대들 수 있는 빈틈을 보임으로 사당동 등의 빈민운동을 촉발시켰다는 의미를 가지며, 또한 박정희 정치의 핵심 담론인 조국 근대화의 이면이 가지고 있던 실체를 드러내 버린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빨리 덮어 감춰져야 할 역사적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지시하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광주대단지 난동사건”이라는 정부와 법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성남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 호명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남주체의 시선은 무시되었다. 둘째 사건의 양상이 강조되고 사건의 원인은 무시되었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당시 치안국장이었다. 그는 ‘주동자의 질’을 난동이 될 수 있는 근거로 내세웠다. 셋째 사건의 우연성이 강조된다. 사건(event)이라기보다는 사고(accident)에 가깝다. 넷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원인)를 감추는 효과를 가져 온다. 정부-서울시의 치명적 오류가 숨겨질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이름 짓기 싸움일 수 있다. ‘난동’이라는 이름은 당사자 주체들을 부끄럽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실제로 왜곡된 호명의 효과는 실질적으로 작동했고 주체들 스스로 이 역사를 감추게 만들어 왔다. 이것이 이름이 갖는 효과이다. 라캉 식으로 얘기하면 이름은 ‘주인기표’라고 할 수 있다. 주인기표는 의미를 새롭게 조직한다. ‘난동’이라는 주인기표는 정부-서울시의 오류를 감추고 사건 주체들에 대한 난폭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의미를 생산한다. 그래서 사건의 주체인 성남은 주체의 시선이 반영된 주인기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8.10 광주대단지 사건”이라는 가치중립적 이름을 정식 이름이 확정될 때까지 쓰자고 했다. 그래서 ‘성남시사’ 등에는 이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30년이 넘도록 이름 ‘찾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써왔다. 그래서 사건의 성격을 분석했다. 그 성격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찾아 헤매온 셈이다. 그러나 사건의 의미는 “발견되거나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제들(machineries)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진경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186쪽). 이때 새로운 기제란 ‘계열화와 배치’를 의미한다. ‘난동’은 주동자의 성격을 전면에 배치하고 폭력의 양상을 계열화했다면 주체의 시선에서는 폭력적 생존권 상황을 배치하고 정부-서울시의 선입주 후건설의 땅장사 양상을 계열화할 것이다.


어제(10월 8일) 성남시와 성남시 광주대단지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 사건의 이름을 짓는 토론회를 열었다. 공식적으로 이름을 지어보자는 취지이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름 붙이기의 보편적 시스템과 유의점을 객관적이고 학문적 시각에서 정리했다. 다양한 참조지점들이 망라된 발제로 호평을 받았다. 패널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진상규명이나 기념사업을 조사, 기획하고 있는 안종철 박사, 『기업시민과 시민공동체』 등 6권의 시리즈를 통해 성남이라는 도시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자인 한중연의 한도현 교수, 대단지 사건 학술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이고 이 사건에 대한 논문을 썼던 김원 한중연 교수, 이 사건을 최초로 분석했고 성남 지역운동을 이끌어 온 김준기 교수, 자치행정과장이자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그래서 사건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정인목 과장이 있고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인 하동근이 좌장을 맡았다.


토론이 지은 이름은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이다. 이름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절충 과정이 필요하다. 이 이름소에서 ‘성남’과 ‘항쟁’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면 ‘8.10’과 ‘광주대단지’는 특수성을 대변한다. ‘항쟁’은 사건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때 ‘맞서 싸움’(struggle or resistance)은 국가폭력과 주민들의 자위적 폭력의 성격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성남’은 광주대단지가 성남시 탄생의 원인임에도 대단지에 대한 이해가 이뤄지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광주대단지)’는 당대가 배제된 역사현실이 불가능하다는 측면과 ‘항쟁’의 서술적 기능을 한다는 측면이 고려되었다. 괄호는 성남과 광주대단지의 묶음이 갖는 생소함을 줄여주는 효과와 유보적 측면이 고려되었다. 즉 일정 정도의 시민이해도가 충족된다면 괄호를 없앨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예정된 시간을 1시간 반을 초과하는 열띤 토론의 과정을 거쳐 빚어낸 소중한 이름이다. 이제 이 이름은 사건의 새로운 의미들을 생산할 것이다. 이 의미들은 성남의 모든 교육과정들을 통하여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고, 궁극적으로는 성남만의 특수한 시민성, 즉 성남의 시민주체를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토론에 참여한 발제자, 패널들 그리고 자치행정과장, 그리고 사회를 담당한 팀장, 주무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20.10.9.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하동근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5321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8.10 성남(광주대단지)항쟁”을 호명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