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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1.08.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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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기의 선승(禪僧)인 조주선사가 남긴 많은 일화가운데 ‘끽다거’라는 차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조주선사가 살고 있는 절에는 많은 스님들이 타지로부터 새로 오고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조주선사는 그 중에 한 스님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자네 여기 온 적이 있는가?” “네” 그러자 조주선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끽다거(차 한잔 들게)” 그리고 다른 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아니요. 스님, 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자 조주선사는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끽다거(차 한잔 들게)” 그 때 후원의 원주(院主)스님이 이 모든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조주선사에게 여쭈었습니다. “온 적이 있는 스님에게 ‘차 한 잔 들게’라 말씀하시고, 온 적이 없는 스님에게도 ‘차 한 잔 들게’라고 말씀하시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에 조주선사는 원주스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원주(院主)!”하고 크게 불렀습니다. 겁먹은 원주스님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조주선사는 온화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끽다거(차 한잔 들게).”


이 일화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이야기하는 것은 글을 쓰는 이가 감히 이야기할 바가 되지는 않으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함을 설파한 조주선사는 차 한잔하라는 이야기로서 세 사람의 스님에게 큰 가르침을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차는 형이상학의 소재로써 자주 다루어져 왔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다도(茶道)’니 ‘차선일미(茶禪一味)’와 같은 말이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차에는 도대체 어떤 신비로운 것이 담겨있기에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자주 등장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 신비로운 것이 담겨있기나 한 것일까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대답은 물음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또 다른 선승들의 일화를 살펴봄으로써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따름입니다.


조주선사와 마찬가지로 중국 당나라 시기의 선승인 운암담성선사가 차를 달이고 있는데 천황도오선사(운암담성선사의 사숙)가 물었습니다. “누구에게 주려고 차를 달이는가?” 운암이 대답했습니다. “마시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천황이 다시 물었습니다. “왜 그 사람 스스로 달이라고 하지 않는가?” 운암이 다시 답하기를 “다행히 내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낮에는 매미가 치열하게 울고 밤에는 어느 새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나 싶은데 벌써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따뜻한 차 한 잔 어떠신지요?


지유명차 분당서현점 031-708-5634


一傾玉花風生腋 身輕已涉上淸境
옥화차 한잔을 기울이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고 몸은 가벼워져 하늘을 거니는 것 같네
<동다송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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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다거(喫茶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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