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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와 ‘위대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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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12.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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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와 ‘위대한 패배’
 
 
“정의는 승리한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이다. 거의 세뇌 당하듯 주입받은 느낌이다. 세뇌 당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정의는 승리한다.’고 믿는다.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 삶의 상황들이 끊임없이 나를 회의에 빠지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놓칠 수 없고 또 놓치고 싶지 않은 최후의 보루이다. 이 신념이 무너지는 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을 지탱할 정당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정의의 승리를 반드시 현세적 삶 안에서, 현세적 기준에서 규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정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후 세계에서의 보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를 초월적 진리의 범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정의는 초월적 진리처럼 현세적 가치와 질서를 넘어서는 것, 현세적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변화를 넘어서 그 의미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초월적 진리는 온전히 그에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로 가치와 의미를 존중받는다. 비록 현세적 방식과 기준에서 어긋나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드러나도 초월적 진리에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결코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초월적 진리가 아닌 현세적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바보’ 혹은 ‘패배자’라는 평가를 받을지라도, 초월적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변함없이 당당하고 의연하다. 초월적 진리는 현세적 가치를 넘어서는 무한하고 궁극적인 진리임을 믿기 때문이다.
정의 역시 초월적 진리처럼 언제나 마땅히 그러해야만 하는 절대적 당위성을 지닌다.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이루어졌다. 동서양의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 정치철학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관한 다양한 의미가 논의되었다. 이 모든 논의를 고려한다면 ‘정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의가 확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절대 기준일 수 있을지 회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의는 초월적 진리와 같은 절대적 당위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는 판단이 정의에 관한 나의 생각의 출발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명확히 정의는 이런 것이라고 의미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정의가 절대적 당위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때의 모순과 문제를 더 심각하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분명 일시적 시대 상황이나 주도권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변형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의의 의미를 색다른 측면에서 성찰해볼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을유문화사, 2005년, 399쪽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 임채영 지음, 경덕출판사, 2008년, 263쪽
 
사실 이 책들의 저작 의도는 현대 사회의 승자 독식주의 혹은 승자 만능 풍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승리를 꿈꾸며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들고...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늘 승리자이고…. 패자는 비록 능력이 승자에 뒤지지 않더라도 항상 뒷전이고…. 승리자가 야비한 술수를 써서 승리를 따냈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은 일시적이거나 ‘결국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고’라는 식의 결과론적 논리에 묻혀 버리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고, ‘승자는 좋은 사람, 패자는 나쁜 사람’의 전형적인 틀이 만들어진다.”
이 책들은 승자 위주의 풍조에서 한동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패배자들에 주목한다. 골리앗, 롬멜, 체 게바라, 앨 고어, 정도전, 조광조, 광해군, 김종서, 사육신…. 그동안 우리에게 이들 이름보다, 이들을 물리치고 승리자가 된 상대방의 이름들이 더 주목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의 주역 자리도 물론 승리자의 몫이었다. 이 책들은 이들 패배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진면목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비참한 낙오자에서 ‘위대한 패배자’로 재조명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정신과 실천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확고한 소신과 사상으로 무장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때로는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나 신념을 현실 세계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비록 그들이 그 때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나 주도권을 거머쥔 사람들에 의해서는 패배자로 내몰려야 했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의 기준에서는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초월적 진리 혹은 정의에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신념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다시 다잡을 수 있다. ‘위대한 패배자들’은 그들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에 따르는 삶을 산 사람들이다. 이들이 비록 그 때 당시 쓰라린 패배자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결국 오늘날 위대한 패배자로 그 가치와 의미를 존중받는다는 사실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분명히 입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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