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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12.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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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 키우기나 아이 키우기나
 
김다나 [글 짓는 이]
 
1.jpg

한 해가 지납니다.
이런저런 인연들이 한 켜씩 그 두께를 더해 갑니다.
그 가운데 하나,
오래 전부터 함께했던 관음죽과의 인연을 얘기해 볼게요.
처음 저와 함께한 게 1988년 12월이었으니, 옴마야 사반세기(?)나 되었네요.
한 삼십 센티미터 쯤 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쑥쑥 자라더니 언제부턴가는 새끼를 치더군요. 하여 이집 저집으로 많이 분양되어 갔습니다.
그러고도 우리 집 베란다 푸름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이 아이들의 몫입니다.
터주 대감인 셈이지요.
얘들은 해를 바꿔가며 붉은 수수를 닮은 꽃을 피워내기도 합니다.
처음에 두 뿌리였는데, 한 뿌리는 아주 많은 새끼들을 남기고 재작년에 떠났고, 남은 한 뿌리는 많은 후손을 두고도 아직 건재하답니다. 올핸 열매까지 맺더군요. 첨 봤습니다.
 
얘들 키우는 게 그렇더군요.
지나치게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 죽고, 나 몰라라 잊고 있으면 잎이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죽고….
겨울이 다가오면 같은 베란다라도 거실 쪽 가까운 안쪽으로 옮겨 줘야 하고, 봄가을엔 바깥 창 가까이, 그리고 볕 뜨거운 여름엔 그 중간쯤에 자리를 잡아 줘야 하더란 말씀입니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자주 이 아이들과 얘길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외에도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기분일까요? 제가 좋을 때는 얘들도 싱싱 푸릇푸릇하고, 아플 때면 얘들도 축축 늘어진 모양샙니다.
간혹 가지치기를 해 줄 때면 꼭 먼저 말을 겁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여러 번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처럼 얘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진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끼고 살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아이 키우는 것과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은 아이 키울 때나 화초 키울 때나 똑같이 필요하다는….
그렇다면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는 어디일까?
제 경험으로는 말 한 마디만 덜 하는 거였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보다, 말을 해서 후회할 때가 훨씬 많았거든요, 저는.
 
‘선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자꾸만 그 선을 넘어가는 통에 관심이 간섭으로 여겨지게 되는구나.’
‘말도 거기까지만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꼭 한 마디 더하는 통에 에이…’
‘더러는 무관심이 관심보다 좋은 약이 될 때도 있는데….’
‘관음죽은 계속 끼고 살 테지만, 대체 아이는 언제까지 끼고 살 건가?’
 
단언컨대, 엄마와 아이는 한 손씩만 잡고 있는 게 최선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한 손만 잡고 남은 한 손으로 딴 것도 만지고 딴청도 부리고 해야 한다는 거죠.
아이뿐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들도 자아를 되찾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올인 하고 나서는 훗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뭐 이런 얘기 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얘깁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엄마나 아이나 서로 한 손씩만 잡고 걸어보세요.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풀도 뜯어보시고, 나비도 건드려 보시고, 엄지와 검지로 아랫입술 모아 휘파람도 불어보시면서 자유를 느껴 보세요. 그러다 아이가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질 양이면 휘익 낚아채 주시고, 길 가운데 물웅덩이가 있어 텀벙 할 것 같으면 얼른 팔을 쭈욱 뻗어 밀어 주세요. 그러다가 지나치게 멀리 가고 싶어 잡은 손을 뺄라 치면 얼른 아이 쪽으로 돌아서 두 팔로 꼬옥 안아주시고요.
아이도 다른 한 손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하세요.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근데 그거 다 알면 무슨 재미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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