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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6.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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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지역의 문화코드,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③
생활문화의 대두
 
필자가 문화NGO에서 활동하면서 시작한 일본과의 국제음악교류로, 1998년도 일본 うたごえ(노래소리)전국협의회 50주년 기념제전에 초청받아 동경에 갔을 때의 일이다. 5천명을 수용하는 동경국제포럼홀을 대관해서 행사를 치루고 있었다. 홀을 거의 다 채운 회원들의 열기는 아침 9시부터 입장하는 모습에서부터 달랐다. 모든 회원들이 다 유료입장권을 구매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뿐인가. 홀에 진열된 각종 음반과 책자, 자료집, 기념품과 티셔츠 등을 각자 주머니 사정대로 다 구입하고 있었다. 반세기의 역사를 기념하는 자리 어디에도 요란한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행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말 그대로 스스로 좋아서 즐기고 만들어 가는 생활문화 그 자체인 것이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기념제전 무대는 민간합창운동조직에 걸맞게 2곡을 부르는 합창팀이 팀당 적게는 150여명에서 많게는 300여명에 이르는데 끊임없이 출연팀들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역, 직종, 계층, 부문, 성별, 연령을 씨줄과 날줄로 망라한 합창조직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였다. 침대와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중증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래는 한 장애인의 ‘많은 사람과 이렇게 함께 어울릴 수 있어 너무 좋다’는 인터뷰에 더해져 감동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합창운동에 참여한 회원들 스스로가 모든 비용을 분담하는 활동내용으로 이 거대한 규모의 전국행사가 성대하게 그러나 불필요한 과장과 홍보를 위한 치장 없이도 담백하게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진행되는 모습은 사뭇 아름다웠다. 향유자 스스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 자신의 삶의 일부로 문화예술을 받아들여 즐기는 것이 바로 생활문화인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생활문화 수도 성남의 현재 모습 속에 잘 잉태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환경이 늘어남에 따라 ‘좋은 인력과 프로그램 그리고 창의적인 운영능력’의 삼박자가 조화로울 때 비로소 그러한 공간을 축으로 풀뿌리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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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문화예술분야 인력의 현황을 말할 때 단지 관련분야의 통계적 숫자가 많고 적음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오랜 기간 지역활동을 꾸준히 펴온 개인이나 단체의 존재 유무가 풀뿌리네트워크의 첫 걸음을 시작하는 기본조건이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 어느 지역이나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예술활동이나 문화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개인이나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다.1)  자신의 지역에서 지역문화 활성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바로 이런 자발적인 지역역량을 묶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자발적 지역역량이 대부분의 지역마다 자생하지만 저절로 그들이 지역의 문화일꾼으로 역할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다. 어느 지역이나 필요한 전문인력의 절대부족 현상이 있는데, 기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준 높은 재교육 환경을 지역실정에 맞게 구축할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지역전문인력개발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는 범용형 교육체제(Universal-Access System)2) 환경이 다가온 현실에서 ‘문화적 리터러시’를 매개로 하는 문화교육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비학교 교육기관(Non-School Education Institute)의 역할은 보다 중요해지고, 또 문화교육의 원리에 대한 설명에서는 ‘어떻게’라는 방법론보다는 ‘무엇을, 왜’ 가르치는가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철학이 있는 프로그램’에는 [살사춤 강좌]가 있다. 단순 춤강좌라면 철학프로그램에 소개될 리가 없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을 포함하는 통합사회 건설, 이슬람이 대다수인 이주민과 덴마크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해소와 같은 사회적, 정치적 주제가 녹아들 수 있도록 장치된 춤 강좌인 것이다.
 
평생교육의 시대가 된 지금, 원하는 누구나 배울 수 있듯이 원하는 누구라도 가르칠 수 있는 학습의 소통과 통섭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의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마다 고학력 젊은 엄마들의 자조 모임, 중년 및 어르신들의 지역문화 나눔활동 참여 등을 조직하는 일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거단위 또는 생활단위로 문화동아리를 조직하는 것이 활동의 지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비결이다. 문화는 곧 삶의 한 부분이고 공동으로 추구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공동추구의 기본 형태는 주거단위 또는 생활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된다. 성남문화재단의 ‘우리동네 문화공동체 만들기’ 등이 바로 생활문화와 지역나눔활동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성과일 수 있다.
 
1)‘문화도시 만들기’ 정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인정받는 부천시의 경우, 부천문화재단 설립 이전 단계에서부터 계량화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이 바로 지역의 숨어있는 인재풀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이라고 할 수 있다.(필자 주)
 
2)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Martin Trow 교수의 고등교육체제 단계이행론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Trow는 고등교육의 최초단계는 대학(전문대 포함) 취학률 15% 이내로, 그 사회의 지배계층이나 전문직의 양성이 주요 기능인 단계로 본다. 대학취학률이 15%를 넘어 50%에 이르면 고등교육체계의 기본 성격은 엘리트형에서 대중형으로 변화되고, 대학의 주요기능도 사회의 다채로운 요구에 따라 지도층 육성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화이트칼라의 직업준비에 두게 된다고 본다. 고등교육의 전체규모가 50%를 넘게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는 Universal-Access System으로 변화해야 하며 이 단계의 고등교육을 향유할 권리는 곧 모든 국민의 의무로 인식되어 고도 산업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전체 시민 육성에 대학의 기능을 두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5년까지만 해도 취학률이 9.3%대였으나, 불과 5년 후인 1980년에는 15.9%로 증가하여 대중형으로 이행하여 급속한 증가양상이 지속되면서 1995년에는 55.1%에 이르러 범용형 교육체제(Universal-Access System)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 운영형태는 아직도 엘리트형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02). 전문대학과 대학교에서의 평생직업교육체제 구축 및 운영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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